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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여름, 영화
    극장에가다 2011. 9. 20. 21:23

        오랜만에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려왔다. 여전히 사람들이 많더라. 예전에는 커피 자판기랑 캔음료 자판기만 있었는데, 이제 우유 자판기가 생겼다. 들여다보니 흰우유, 커피우유, 초코우유 다 있고, 플라스틱 커피 음료도 들어있다. 신기하다. 유통기한을 잘 맞출 수 있을까. 하긴 여긴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 많으니 우유 많이들 사 먹을 것 같다. 4층에서 대출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서 시장 초입에 있는 만두집에서 고기랑 김치랑 반반 섞어 만두 1인분을 샀다. 다시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 집에 들어와 밥 먹고, 씻고, 창문 활짝 열어놓고 설겆이 하고 가스렌지 때도 간만에 문질러주고. 아, 정말 가을이다. 이렇게 추워지다니. 긴팔 추리닝을 꺼내 입으면서 이건 반칙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가버리는 건. 이런 식의 이별은.

        이번 주는 가을. 지난 주는 여름. 늦여름에 내가 본 영화들 정리. 다시 다이어리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를 어디서 누구랑 썼는지 기록하고, 읽은 책 제목도 써 둔다. 영화를 본 날은 제목이랑 영화관이랑 몇 시에 봤는지, 누구랑 봤는지 적어둔다. 오늘 같은 날은, '간만에 도서관에 가다', '시장에서 벌써 군밤을 판다', 'UV 새노래가 나왔다' 정도.
     
      

        이제야 봤다. 역시 여러 사람에게 들은 바대로 인도 편에서는 조금 지루해서 나도 자 주었다. 책은 어떤가 궁금했고, 이탈리아 음식은 내가 더 맛있게 먹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하는 생각, 줄리아 로버츠는 뭘 입어도 예쁘구나 하는 생각과, 하비에르 바르뎀은 역시 너무 느끼하게 생겼다는 결론을. 줄리아 로버츠는 뭘 먹길래 나이 들어도 이렇게 예쁘지. 나이 드니까 더 예뻐지는 것 같다! 흠.



        이건 박해일 때문에 본 영화. 박해일은 점점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저 포스터는 꼭 다른 사람 같네. 영화는 그냥 볼 만 했다. 김무열도 멋지고, 박기웅도 연기 잘 하더라.



        <북촌방향>도 보았지. 여전한 감독님. 하지만 점점 여유로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재밌었다. 영화를 보고 집에 와서 다이어리에 이런 문구들을 오려 붙였다. '홍상수의 겨울영화', '그해 겨울이 품었던 사람냄새', '키스를 나눈 밤이 지나고 작별인사와 함께 북촌을 떠나려는 성준. 그날 아침 북촌에는 눈이 내리고 그 길 위에서 과거에 알았던 사람, 이젠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 낯선 사람들과 계속 마주친다.' 이건 씨네21 <북촌방향> 프리뷰에 있었던 글귀들이다. 이 문구들은 오려서 북촌방향 포스터 옆에 붙여뒀다. 그 날 감독님이 내게 당부하신 세 가지. 세상 살아가면서 이것 세 개만은 꼭 지키라 했던 그것. 첫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라. 둘째, 술 마실 때 취하지 마라. 셋째, 일기를 써라.

    *

        그리고 seyo님 덕분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도 챙겨봤다. 디지털 TV VOD 목록 뒤져보니 있었다. 더군다나 무료. 8부작인데 길쭉길쭉한 모델같은 아이들이 나오고, 김상경도 나오고. 대본도 훌륭하다. 수재들만 다니는 강원도 어딘가의 고등학교. 산 속 깊숙이 있는 학교. 일곱 명의 아이들, 아니 일곱 명이 8일 간의 방학을 앞두고 발신인을 알 수 없는 편지를 받는다. 편지를 받은 일곱 명과 편지를 보낸 한 명만이 모두 떠나버린 학교에 남는다. 누가 편지를 보낸걸까. 눈은 끊임없이 내리고, 고립된 학교. 그리고 누군가가 학교로 찾아온다. 시 같은 편지 문구들과 산 속 깊이 있는 학교의 분위기와 내리는 눈, 쌓인 눈. 으스스하고 쓸쓸한 드라마 초반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아, 그리고 흐른의 '그렇습니까'라는 노래도.

    계속해서 생각해 봤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너는 나를 비참하게 물들였고,
    너는 나를 구석괴물로 만들었고,
    너는 내가 아는 것을 침묵했어.
    너는 내 가망 없는 희망을 비웃었고,
    너는 내가 가진 단 하나를 빼앗아 목에 걸었고,
    너는 내가 내민 손을 잡았다가 놓아버렸고,
    그리고 너는 눈 앞에 나를 지워버렸고,
    마지막으로 너는 나를 가로챘어.

    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
    8일간의 휴일이 지나고
    느티나무 언덕길을 올라와
    시계탑 아래에 서면
    죽어있는 누군가가 보일거야.
    아기 예수가 태어난 밤에
    나는 너를 저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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