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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 당신의 노래
    극장에가다 2010. 5. 16. 22:05




       <시>를 보면서 어떤 게임을 생각했다. 한때 연예인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자주했던 그 게임. 조그만 종이를 펼쳐놓고 그 위에 올라가서 버티는 게임. 그 종이가 반으로 줄어들고, 또 반으로 줄어들고. 종이 위에 선 두 사람은 넉넉한 거리를 유지하다가, 부둥켜 안고, 결국 남자가 여자를 들어 올리고. 그런데 그 위에 짝짓기 프로그램에서처럼 남녀 두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한 사람, 윤정희만 존재한다. 그 종이는 처음에는 넉넉했다. 그 위에서 뛰어다닐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러다 그 종이가 반으로 접히고, 또 반으로 접히고. 환갑이 넘으면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태가 되었다. 여기서 반으로 접히면 더이상 버틸 수가 없다. 윤정희도 그걸 안다. 어느 날, 윤정희는 그 종이 위에 쪼그려 앉아 꺼이꺼이 운다. 커다란 치마를 무릎 사이에 끼우고 꺼이꺼이 운다. 그녀는 꾸미고 다니는 할머니다. 예쁘다는 말을 좋아하는 할머니다. 단 한 편의 시를 쓰고 싶어하는 할머니. 오백만원이 필요한 할머니.

        영화의 처음과 끝에 냇물 소리가 흐른다. 새소리도 지저귄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그 소리가 이어진다. 그 소리를 뒤로 하고 극장을 나섰다. 그리고 좀 걸었다. 영화에서처럼 바람 소리가 들리고, 나뭇잎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자동차 소리도 들리고, 사람 소리도 들렸다. 내 곁으로 김희라를 닮은 할아버지가 지나가고, 안내상을 닮은 아저씨도 지나가고, 욱이를 닮은 아이도 지나갔다. 그런데 윤정희를 닮은 할머니는 없었다. 윤정희는 어디에 있는 걸까. 내 종이는 어느 만큼 줄어든 걸까.


        영화에 김용택 시인이 나온다. 그것도 아주 자주. 그것도 자연스러운 연기로. 그리고, 황병승 시인도 나온다. 김용택 시인이 나온다는 건 잡지를 봐서 알았는데, 황병승 시인은 몰랐다. 놀랍고, 웃겼다. 황병승 시인도 자연스러운 취객 연기를 펼쳤다. 진짜 취해있었던 건 아닐까. 죽은 지 한 달이 지난 고양이 같은 하늘. 정말 멋진 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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