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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로드 - 아저씨 마음에도 불씨가 있나요?
    극장에가다 2010. 1. 18. 22:27

        
        오래간만의 극장 나들이. <더 로드>를 봤다. 한 1시간 정도 제대로 봤나. 앞부분은 거의 다 자버렸다. 왜냐면, 전날 늦게까지 빼갈과 맥주를 마셨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택시를 타고 새벽에 집에 왔고, 아침 일찍 출근했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영화보기 전에 포테이토와 콜라가 아니라 찐-한 커피를 마셨어야 했는데. 

        영화의 처음. 아버지와 아들이 걷고 있었다. 황량한 길이 펼쳐졌고, 누추한 차림의 두 사람이 그 길 위를 걷고 있었다. 세상은 온통 잿빛이고, 백 년은 넘게 자랐을 것 같은 나무들이 여기저기서 쿵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쿵쿵. 그리고 잠이 들었다. 달게 자고 깨어나 보니, 두 사람은 어떤 지하창고를 발견했는데 거기가 천국이다. 따뜻하고, 먹을 것 천지다.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를 하고, 목욕을 하고, 수염을 깎고, 책을 읽는다. 행복한 나날도 잠시, 또 다시 어디선가 들리기 시작하는 위험신호. 아버지와 아들은 다시 길을 나선다. 처음의 길이다. 황량하고, 잿빛이고, 쿵쿵 쓰러지는 나무 소리만 울려 퍼지는 곳. 남쪽으로 가면 정말 괜찮을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말했다. 소설 <로드>가 자신의 2009년 최고의 책이라고. 세상은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멸망했고, 멸망한 세상의 어떤 길을 끊임없이 걸어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했다. 영화에서처럼 백 년은 넘게 자랐을 것 같은 커다랗고 튼튼한 나무들이 쿵쿵 쓰러지는 그런 세상이 아니더라도, 백 년은 넘게 자랐을 것 같은 그런 나무들이 여전히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이런 세상에도 해당되는 아버지와 아들,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이라고. 한 세대가 끝나고, 한 세대가 시작되는 이야기라고.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이야기. 어떤 희망에 대한 이야기. 마음 속에 불씨를 가지고 살자는 이야기. 착한 사람이 되자는 이야기.

        친구 말이 내가 잔 시간 동안 영화에서는 끔찍한 일만 펼쳐졌다고 한다. 내가 잠든 동안 아버지와 아들은 죽은 사람들을 보았고, 갇힌 사람들을 보았고, 사람을 먹는 사람들을 보았다고 한다. 내가 본 건 희망이 시작되는 부분. 어쩌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마음 속에 불씨를 간직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영화를 보면서 당연한 이야기지만, 엄마 아빠 생각이 많이 났다. 내게 불씨를 심어준 사람. 오늘 몇 페이지 읽다 덮어 주었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 영화, 내겐 2010년 첫 영화. 아버지의 대사를 되새긴다. 올 한 해, 마음 속에 불씨를 간직한 사람이 되기를. 착한 사람이 되기를.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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