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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라, 후에베스
    여행을가다 2017. 6. 23. 07:23


        가지고 온 책에 의하면 스페인 사람들은 총 다섯 번의 식사와 간식 타임을 가진단다. 오전 7시에 시작해 밤 10시가 넘어 끝난다. 정말 이렇게 먹으면 살이 찌지 않는 게 맞는 걸까. 나는 오늘 넘치는 두 끼를 먹고, 너무나 피곤하고 더이상 무얼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아 저녁 6시부터 누워 있었다. 가고 싶었던 라이브 바가 있었는데, 오늘 쿠바음악을 공연한다고 했는데, 결국 가질 못했다. 오늘의 키워드는 조식, 헤맴, 유심, 람블라스 거리, 크루즈, 예약하지 못했던 숙소의 레스토랑이다.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5시 즈음이었다. 바로 창문의 커튼을 걷었다. 아직 어두웠다. 잠도 오지 않고, 오늘의 일정도 정하지 못해 책과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첫 시작인데 어디가 좋을까. 이동진 라디오의 여행코너의 여행잡지 편집장은 언제나 여행을 가면 처음과 끝은 전망대를 간다고 했다. 몬주익 언덕을 가볼까. 왠지 강행군이 될 것 같아 땡기지 않았다. 일단 유심을 사고, 시인과 소설가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극찬한 람블라스 거리에 가보기로 했다. 일단 씻고 조식시간을 기다렸다. 문밖의 부엌에서 달그락 그릇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9시가 되어 나가보니 각방의 바구니에 각방의 조식이 담겨 있었다. 처음엔 식탁에 앉아 먹었는데, 혼자 먹으니 영 어색하고 인사를 하며 나온 옆방사람이 방에서 접시를 가지고 나오길래 나도 치즈와 하몽을 챙겨 방으로 들어가 먹었다. 보온병이 두 개라 2인분인 줄 알았는데, 하나는 우유였다. 빵은 바게트와 크로와상이었는데, 맛있었는데 너무 양이 많아 결국 남겼다. 나중에 먹으려고 싸뒀는데 결국 먹질 못했네.

       간밤에 바르셀로나에서 쓸 현금들을 정리해뒀는데, 1이라고 씌여진 첫번째 봉투에서 돈을 꺼냈다. 유심을 사야해서 여권도 챙겼다. 한껏 치장했지만 곧 더위에 온몸이 눅눅해지겠지. 동생이 준 핸드폰 도난방지용 줄도 챙겼고, 소매치기 방지용으로 옷핀도 가방에 꽂았다. 막내가 말한대로 크로스백의 지퍼부분에 손을 얹고 다녔다. 어제 숙소 언니가 카탈루냐 광장까지 걸어갈 수 있다고 해서 걸어가보려고 했는데, 너무나 소매치기를 의식해서인지 핸드폰을 절대 꺼내보지 않아서 이 방향이 맞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말 전혀 맞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정 반대방향으로 걸어왔다. 땡볕에 한 시간 넘게 헤매다 보니 너무나 지쳤다. 물을 사려 들어가서 가까운 지하철 역이 어디냐고 물어봤다. 그 친절하지 않았던 수퍼마켓 직원은 결국 거스름돈 받는 걸 잊어버린 나를 이용했다. 하지만 지하철 역은 맞게 가르쳐줘 헤매지 않고 도착했다. 옷핀을 빼서 지갑을 재빨리 꺼내고, T-10 티켓을 사고, 지갑을 넣고 옷핀을 꽂고, 표를 쓰고, 다시 옷핀을 빼서 가방에 티켓을 넣고, 다시 옷핀을 꽂고, 손은 가방 지퍼 위에. 지하철에서 소매치기가 많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곁으로 다가오는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웠다. 사실 생각해보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첫날 돈을 잃어버리면 너무나 속상할 것 같아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여권도 있고 해서.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카탈루냐 광장 도착. 보다폰 매장을 발견하고 들어갔는데, 대기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런데 지켜보니 번호표를 뽑지 않고 중간중간 끼어드는 사람들을 제지하지 않고 다 처리해주고 있더라. 40여 분 기다려 내 차례가 왔고, 3.5기가 유심을 샀다. 이제 바깥에서도 구글지도를 쓸 수 있게 됐다.

       람블라스 거리를 걷는데, (손을 가방지퍼 위에 얹고) 나무들이 굉장히 커다랬다. 올려다보면 나뭇잎 사이로 뜨거운 빛이 통과하고 있었는데 그게 참 아름다웠다. 그런데 시인과 소설가들이 극찬한 거리는 흠, 내게는 그냥 그랬다. 거리의 양옆으로 아이스크림 가게, 기념품 가게, 꽃 가게 등이 즐비해 있었다. 나무만 기억에 남는다. 보케리아 시장에도 들렀는데, 여기서도 계속 소매치기 생각을 했다. 여기도 많다고 했지, 소매치기가. 그러니 제대로 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도 워낙 많고. 바르셀로나에 오기 전 책을 볼 때마다 무척 먹고 싶었던 생선튀김이 있었는데, 작은 생선을 통째로 튀긴 페스카도 프리토였다. 열빙어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 생선 튀김이 얼마나 고소할까 궁금했다. 보케리아 시장에서 페스카도 프리토를 팔고 있었는데, 아침을 많이 먹어 도저히 들어갈 배가 없었다. 맥주 한잔이랑 같이 먹으면 딱일 것 같은데. 작은 수박주스를 하나 사 마시고 시장을 나왔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지나치고, 행위예술을 하시는 두 사람에게 2유로씩 주고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읔, 내가 못 나왔다. 한 사람은 총을 든 카우보이였고, 한 사람은 날아다니는 공룡 비슷한 분장이었다.

       콜럼버스 기념탑을 지나 바다에 도착했다. 콜럼버스 기념판은 무척이나 높았고, 새겨져 있는 조각들이 흥미로웠다. 동그란 탑을 빙 둘러 보았다. 제일 처음 읽은 바르셀로나 관련 여행책이 <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였는데 바르셀로나의 문화재들에 대한 역사적인 세세한 설명이 있어 좋았다. 오늘은 람블란스 거리와 콜럼버스 기념탑 편을 다시 읽어보고 잠들어야 겠다.

       그리고 지중해 바다에 펼쳐진 벨 항구를 구경하다가 아침에 찾아두었던 선박회사 매표소를 찾았다. 배를 타고 40분 도는 코스와 1시간 반을 도는 코스가 있는데, 20분 후에 40분 코스가 출발을 했다. 이것으로 표를 달라고 하니 나무 보트예요, 괜찮나요? 라고 물었다. 내가 이해를 잘 못하자 팜플렛의 배 사진을 찾아줬다. 아, 좋아요! 7유로를 지불했는데, 직원이 환하게 웃어줘서 좋았다. 2시부터 3번홈에서 승선이 가능하다고 했다. 시간이 조금 남아 항구를 둘러보는데, 나무 그늘에 서니 어떤 남자가 옆에 와서 철퍼덕 앉았다. 이어서 여자가 왔다. 아, 이건 소매치기가 분명해, 라고 확신하며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승선시간이 되어서 냉큼 배에 올랐다. 배는 예정시간보다 좀더 늦게 출발했는데, 배에 타서는 엠피쓰리 플레이어를 작동시켰다. 이번에 산 플레이어는 랜덤으로 노래가 나오는데, 김윤아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배는 물결에 조금씩 출렁거리고, 그늘에 앉아본 햇볕은 어여쁘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너무나 좋고. 좋고, 좋고, 좋다, 라고 생각했다. 2층에 승객이 1/3쯤 차자 배가 출발했다. 배 안에서 사진을 찍고 노래를 내내 들었는데, 배가 그늘에 있을 때는 바람이 서늘했고, 뱃머리를 돌려 돌아오는 방향에서는 배가 햇볕에 있어 바람이 따스했다. 그러니 두 방향 모두 좋았다. 이어폰을 들으면서 모두 배 안의 사람들도 모두 행복해보였고.

       배 안에서 구글 지도를 찾아보니 벨 항구 근처에 페스카도 프리토 맛집이 있었다. 여긴 메뉴가 단 네 종류 뿐이고 현지인이 자주 찾는 곳이라고 했다. 그게 여길 가서 생선 튀김에 맥주를 마시자. 배에서 내려서 10분 정도 걸어서 도착했는데, 두 사람의 어여쁜 세뇨리따가 인사를 하며 떠나가고 있었고, 가게 안에서는 흥이 잔뜩 오른 세뇨르 무리들이 차우! 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들어가도 될까, 걱정하면 들어갔는데, 직원이 영업이 끝났다는 손짓을 했다. 나와서 구글지도 정보를 검색해보니 브레이크 타임이 3시 15분부터였다. 그때가 딱 3시 15분이었다.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다시 오리라. 배가 고파져서 어딜 갈지 궁리하다, 원래 예약하려 했는데 하지 못한 호텔의 1층 레스토랑이 떠올랐다. 검색을 해보니 조금 걸어가 H14번 버스를 타면 4정거장이었다. 가보자. 정류장에 내리니 내가 창밖 풍경으로 원했던 시우따델라 공원이 펼쳐졌다. 아, 그냥 지도로 보기만 했는데 넉넉한 부지에 단번에 마음에 들었던 곳. 역시 나의 예감은 맞았다. 좋더라. 아쉬울 정도로.

       레스토랑에 들어가자마자 물과 맥주를 달라고 했다. 아쿠아 앤(그리고는 스페인어로 찾아놔야겠다!) 세르베사 뽀르 빠뽀르. 맥주가 빅과 스몰이 있다고 해서 당연히 빅을 주문했다. 아, 시원한 것이 몸에 들어가니 살 것 같았다. 주문판을 한참 보다가 메뉴 델 디아를 주문했다. 스타터와 메인메뉴도 선택해야 되는 건지 몰랐는데, 사실 뭐가 뭔지 몰라 둘다 추천을 받았다. 결과는 둘다 대만족. 생선요리를 먹고 싶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다만 맥주를 빅으로 먹어서 그런지 배가 금새 차서 빵은 손도 못댔다. 후식으로 과일 샐러드를 주문했는데, 멜론만 있다고 했다. 오케이. 아, 그런데 멜론이 정말이지 너무나 맛있었다. 구글지도로 검색해보니 숙소까지 도보로 18분이어서 힘을 내기 위해 에스프레소도 주문해 마셨다. 맥주랑 커피까지 마셨더니 예상했던 것보다 돈이 많이 나왔지만, 맛있는 점저였다. 내 담당 서버는 좀 무뚝뚝했는데, 중간중간 와서 맛있냐고 물어봐준 나이드신 분이 정말 친절했다. 

       전망대고 나발이고 너무 힘들어 숙소로 돌아가자 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눕고 싶었다. 걸어가는 길에 제법 큰 마트가 있어 물 세병과 맥주 네 캔, 과자 하나를 샀다. 숙소는 역시 나답게 단번에 찾지 못하고 한 바퀴 돌아 찾았다. 열쇠가 세개 있는데, 하나는 건물 대문 열쇠, 하나는 현관 열쇠, 하나는 방문 열쇠이다. 어제는 건물 대문이 늦은 시간이라 닫혀 있었는데 오늘은 나갈 때도 들어올 때도 열려 있었다. 들여다 보니 건물 전체가 숙소는 아니었다. 2층까지 올라가 현관문을 여는데 이리 돌려도, 저리 돌려도 열리지가 않는 거다. 땀이 나기 시작했다. 마트 봉지를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오른쪽 왼쪽으로 열쇠를 돌려보는 데도 열리지가 않았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도 없는지 기척도 없었다. 어쩌나. 어쩌나. 어제의 긴장이 되풀이되고 있네. 이게 뭐라고 안 열리나. 열쇠가 안 열린다고 매니저한테 또 전화를 해야 하나. 어제는 벨을 제대로 못 눌러서 전화하고. 그러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사람이 나왔다. 익스큐즈 미. 익스큐즈 미. 그 분은 내 말이 아예 안 들리는 듯 했다. 다시 오른쪽, 왼쪽, 진땀. 아래층 분이 다시 돌아왔다. 익스큐즈 미. 익스큐즈 미. 아래층 사람은 그냥 들어가고 잠시 뒤 어떤 아저씨가 나타나 올라다봤다. 문이 안 열려요. 열쇠가 있는데, 문이 안 열려요. 아저씨는 올라다 보며 뭐라고 했는데, 내가 라이트? 라고 하니까 오케이라고 했다. 오른쪽으로 돌려봤지만 열리지가 않는 문. 안 열려요, 다시 말하자 아저씨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2층으로 올라와줬다. 쏘리, 쏘리를 연발하는 나의 열쇠를 받아들고 왼쪽으로 두번을 돌리니 문이 열렸다. 맙소사. 아저씨는 스페인어로 왼쪽인 게 분명한 단어와 두번인게 분명한 단어를 말했다. 땡큐 쏘머치, 그라시아스 그라시아스. 아저씨가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씩 웃으며 내려갔다. 아, 살았다.

       나의 101호 냉장고에 사가지고 온 물 세 병과 맥주 네 캔을 채워넣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속옷과 오늘 입은 티셔츠를 빨아 널었다. 테라스로 나가봤다. 아직 6시인데 누워도 될까. 부지런한 여행자가 되지 않아도 될까 고민했지만, 너무나 피곤한 것. 내일도 모레도 돌아다녀야 하니 일단 눕자했다. 피곤하면 아픈 부위가 있는데, 거기가 아프기 시작해서 걱정이 됐다. 냉장고에서 물을 가져와 발포 비타민을 넣었다. 오마이갓. 물이 탄산수였어. 그것도 엄청 달달한 탄산수였어. 실수 연발이구만. 그렇게 누워 자다 깼다 자다 깼다를 반복했다. 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지만 마음에 드는 티비채널을 발견했다. 12시가 다 되어서야 잠이 깼는데, 완전히 깨어버렸다. 시차 적응이 안되고 있는 건가. 맥주 한 캔을 땄고, 오늘밤에는 헤밍웨이 소설을 시작 할 거다.


    바르셀로나, 둘째날. - 오늘의 행복했던 일 : 유람선에서 바르셀로나 바람과 햇살을 느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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