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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셋째날 밤, 오키나와
    여행을가다 2016. 8. 3. 22:02


    이제 뭘 하지?

    내 물음에, C가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글쎄, 어디 카페나 갈까?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땀이 마구 흘러내렸다. 흙마당에서 뛰어놀던 동네 소년들이 우리를 보고 씩 웃었다. 수줍고 맑은 웃음이었다. 가도가도 쉴 만한 곳은 나오지 않았다. 옆에서 걷는 C는 미안한 표정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아마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여기 좀 재미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 정이현, '두고온 것', <그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중에서




      

       버스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옛 미군기지였던 아메리칸 빌리지였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도시형 리조트 지대'. 우린 나머지 일정을 여기서 묵기로 했다. 중부 바다도 보고, 쉬엄쉬엄 쉬면서 이틀을 보내기로 했다. 아메리칸 빌리지에 도착하고, 가이드에게 여기서 내리겠다고 했다. 짐을 건네받고 인사를 했다. 감사했습니다! 사요나라- 동생은 길을 절대 헤매지 않았다.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이 되면 무작정 출발하지 않고 정확한 길을 찾아본다. 잘 헤매곤 하는 나는 그런 동생이 놀라웠다. 길 짱 잘 찾는다이- 우리는 서로 칭찬해주기로 했다. 선셋 비치 앞에 위치한 좋은 숙소에서 묵고 싶었지만, 너무 비쌌기에 조금 멀리 떨어진 숙소로 예약을 했다. 캐리어를 끌고 20여 분 걸었다. 운동장도 지나고, 마트도 지났다. 찾는 건물이 맞나 건물 앞으로 갔다가 다시 뒤로 왔다. 맞았다! 무사히 체크인을 하고, 방 번호와 비밀번호를 적은 종이를 받았다. 401호였다.




     

       문을 여니 뭔지 알 수 없는 큼큼한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었고, 결국 마지막 날까지 그 냄새는 났다. 방이 넓었다. 나하 숙소에 비하면 여긴 대궐이다. 커튼을 치니, 와와, 바다가 보였다. 바로 앞이 아라하 비치. 아래에는 (지금은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수영장도 있었다. 베란다에는 월풀 욕조도 있었다. 옆 건물을 보니 수영복을 입고 욕조에 들어가 와인을 마시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밤에 시도해볼까 했지만, 비가 왔다는. 세탁기도 있고, 건조기도 있고, 취사도 할 수 있는 숙소였다. 제일 마음에 든 것은 눈앞의 바다. 아침부터 밤까지 볼 수 있는 바다. 그리고 구름을 볼 수 있는 테라스.

     




       짐을 풀었다. 저녁을 먹어야 했다. 뭘 먹을까. 맛집 검색은 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냥 나섰다. 지나가다 괜찮은 가게가 있으면 들어가 먹기로 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번화가로 가보자.








       맛집을 알려주는 팜플렛이 1층에 있어 챙겨들고 나왔다. 캐리어를 끌고 왔던 거리는 도로 쪽이었고, 이번에는 바다 쪽으로 걸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아 더웠지만, 바닷바람이 조금씩 불어 걷기에 괜찮았다. 금방이라도 비를 뿜을 것 같은 구름이 우리를 따라왔다. 바다 좋다, 동네가 시끄럽지 않아서 좋다, 번화가에서 좀 떨어진 숙소로 잡길 잘했다. 우리는 금새 기분이 좋아졌다.





       타려고 했으나, 결국 타지 못한 관람차의 불빛도 처음으로 마주하고.





       팜플렛의 스시집이 마음에 들어 그곳을 찾아갔다. 팜플렛에는 저렴하다고 되어 있었는데, 메뉴판의 금액이 너무 비싸 어쩌나 망설이고 있는데, 또 다른 메뉴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메뉴판에 저렴한 세트 메뉴가 적혀 있었다. 고레 후타쯔 또 나마비루 후타쯔 구다사이- 아, 맥주 타임이 돌아왔다. 곱디 고운 오리온 나마비루.





        건배- 나쁜 일들은 잊어버리자.





       다행이도 스시집은 한가했다. 커다란 ㅁ자 바 형식이었는데, 한 면에는 우리가 있었고, 한 면에는 외국인이 있었다. 다른 한면에는 현지인이 있었다. 맥주도 맛있었고, 스시도 맛있었다. 요리사가 스시를 쥐고 있다가 우리를 쳐다보길래, 맛있다고 말했다. 그 분은 씨익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세상에, 별 것 없지만 이런 대화를 이런 음식을 먹으며, 그것도 맥주까지 마시며 이국의 땅에서 내가 하고 있다니. 드라마를 보면서 상상만 했던 일을. 나는 감개가 무량했다. 동생은 초밥을 추가했고, 나는 맥주를 추가했다.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금액을 치르고 가게를 나왔다.






       따뜻한 밤길을 걷다, 중국인과 한국인들로 북적대는 백엔샵도 구경하고, 이온몰에 들러 남은 일정동안 마실 맥주와 내일 아침 먹을 삼각김밥과 유통기한이 다가와서 세일을 하는 과일과 물, 커피와 우유도 샀다. 마트에 다코야끼 가게가 있었다. 동생이 어제부터 오코모노야끼를 먹고 싶어했다. 오코모노야끼는 아니지만 같은 야끼니까. 제일 작은 갯수로 포장을 했다. 금방 구워 바삭바삭 맛있어 보였다. 마트에서 나오니 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했다. 반쯤 왔나 싶었을 때, 비가 막 쏟아지기 시작했다. 짐을 들고 있어 뛰지도 못하고 서둘러 걸으면서 그 비를 그대로 다 맞았다. 왠지 시원했다. 기분이 괜찮았다.





        숙소에 들어오니 특유의 큼큼한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돌아왔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저녁, 도쿄의 한적한 주택가를 걷고 있을 때, 다다이마-라고 말하며 문을 열고 들어가던 아저씨 생각이 났다. 아저씨가 문을 여는 순간 집 안의 불빛이 새어나왔는데, 그 불빛이 부러웠더랬다. 그때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거든. 그래서 그런지 큼큼한 냄새가 묘하게 안심이 됐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에어컨을 켰다. 마트에서 사온 음식들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었다. 아, 뿌듯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동생은 샤워를 하고 피곤하다며 누웠다. 나는 맥주캔을 땄다. 음악을 작게 틀고, 맥주를 마시며 타코야끼를 먹었다. 책을 읽으며 맥주를 마셨다. 동생이 가만히 누워 있다 일어났다. 다코야끼 한 알을 집어 먹고 맥주 한 모금을 마시더니 다시 누웠다. 아, 오늘은 새벽부터 움직였지. 다섯 곳을 구경했지. 동생과 싸우기도 했지. 화해하기도 했지. 비를 맞기도 했지. 긴 하루였다. 내일은 숙소에서 뒹굴거리다 바다에 나가보기로 했다. 동생은 늦게 일어날 거라고 했다. 깨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어디를 꼭 가야한다는 부담감 없이, 기대감도 없이, 쉬엄쉬엄 느릿느릿, 오키나와 사람처럼 하루를 보내보자. 오키나와의 밤은 깊어갔고, 나는 맥주 한 캔을 더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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