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의 파스타

from 모퉁이다방 2010. 3. 1. 15:35


    삼월이다. 뭔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지? 지난 주에는 버스 안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내 나이가 떠올랐다. 이런 숫자의 나이를 갖게 되다니. 그 날은 조금 서글펐다. 나이 드는 게 싫진 않은데, 가끔 그렇게 서글퍼지는 순간들이 있다. 어제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후배의 전화를 받았는데, 혼자가 편하다는 내 말에 그건 자기합리화라고 했다. 빨리 남자를 만나야 한다면서. 난 정말 혼자 있는 게 편한데. 그 후배의 말을 곱씹어보고 있는데, 기분이 좀 그렇다. 정말 내가 그런걸까.

    이건 보통날의 파스타가 아니라, 월요일의 파스타. 늦잠 자고 일어나서 뒹굴거리면서 케이블 파스타 재방송을 봤다. 동생이 스파게티가 급 땡긴다고 해서 시장가서 모시조개 삼천어치랑 스파게티 면을 사 왔다. 집에 올리브유랑 화이트 와인이 있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박찬일 쉐프의 레시피대로 만들어 본 봉골레 스파게티. 

   일단 마늘을 박찬일 쉐프의 방식대로 한번에 힘을 확 줘서 뽀개고,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볶는다. 그 다음엔 모시조개를 넣고 살짝 볶는다. 그리고 화이트 와인 한 컵 넣는다. 뚜껑을 닫고 조개가 입을 벌릴 때까지 기다렸다 불을 끈다. 냄비에 물을 끓이고 꽃소금을 넣는다. 팬의 불을 꺼 두고, 끓는 냄비물에 스파게티 면을 넣고 익힌다. 다 익고 나면 팬의 불을 켜고 면을 넣는다. 그리고 올리브 유를 더 넣고, 후추랑 파슬리(요건 없었으니까 패스)를 넣는다. 그리고 맛있게 먹어주면 끝. 아, 내가 만들었지만 진짜 맛있었다. 종종 해 먹어야겠지. :)

   봄비도 오고. (이거 봄비 맞지?) 오늘도 연휴도 끝나고. 커피나 마셔야겠다. 그리고 이불 깔고 누워있어야지. 모두들, 삼월에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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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름, <메리 대구 공방전> 기다리는 재미로 여름을 견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푹 빠져있었습니다. 힘이 나는 캐릭터들을 무더운 여름 붙잡고 있으면서 얼마나 웃고 울었던지. 우리의 씩씩하고 활달한 메리 메리는 무엇이든 겁나게 잘 먹었지요. 먹을 것만 앞에 있으면 새초롬하게 '굿-'이라면서 엄지손가락을 살짝 치켜 올리고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냠냠. 엄마 몰래 먹는 고깃국도, 엄마가 아끼는 인삼주도, 대구의 공짜 피자도 잘 맛나게도 먹어치웠지요. 하지만 메리가 제일 좋아했던 것, 그녀가 환장했던 것은 다름아닌 고기 고기!

  
고찾사의 열혈 멤버이기도 한 메리처럼 고기를 좋아라 하는 저. 돼지갈비로 포식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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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파크 마트에서 번쩍 눈에 띄이는 양념 돼지고기 발견. 돼지갈비 매운맛과 순한맛이 각각 1kg씩해서 만원이 안 되는 상품을 발견했어요. 2kg에 9,900원이고 상품평도 꽤 좋아서 망설임없이 바로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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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분 티비에서 가끔 뵈었는데 이렇게 만나니 반가웠어요. 꽁꽁 냉동된 상태에서 배송되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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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지글 불판에 올립니다. 양이 꽤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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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 좋게 가위로 쓱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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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늘을 잘게 썰어서 깻잎과 함께. 매운맛은 정말 입 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데 맛있어요. 원래 매운 게 중독성이 강하잖아요. 순한 맛도 맛있구요. 양념이 싱겁거나 짜지 않고 딱 적당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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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국물에 밥과 다진 파를 넣어 볶아 먹는 센스.


   정말 굿. 메리처럼 엄지손가락 새초롬하게 뜨면서. 저렴한 가격에 배부르게 먹었어요. 고기는 정말 끊을 수 없어요. 이렇게 많이 먹고도 메리처럼 살이 찌기는 커녕 마르기까지 한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아, 현실과 드라마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크도다. 뭐 맛있게 먹으면 그게 최고지요. 그렇지, 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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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에 친구에게서 온 문자 한 통. 오래간만에 <슬로우 댄스>를 꺼내서 보고 있다는. 여전히 좋다는. 친구의 문자를 받고 저도 오래간만에 <슬로우 댄스>를 꺼내서 다시 봤어요. 재작년 여름에 한창 이 드라마에 빠져 있었어요. 매 회마다 저렇게 건배를 외치면서 술을 마셔대는데 어찌나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는지 몰라요. 대낮이였는데도 당장 친구들을 불러모아 동네 조그만 술집에서 한 잔 땡기고 싶어서 혼났어요. 대신 친구에게 이 드라마 참 좋다, 우리 조만간 술 마시자고 문자를 보냈던 것 같아요. 연말 친구의 문자처럼요. 


   <슬로우 댄스>는 꿈에 대한 이야기예요. 서른이 넘고 점점 하고 싶은 일에서 멀어지고 있는 사람, 꿈을 포기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늘 그 꿈을 잊지 않은 사람, 사시에 붙는 날 만나 결혼을 약속하자는 사람을 기다리지만 정작 그 날이 두려운 사람, 잘 나가는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바를 운영하는 오래된 꿈을 이룬 사람.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있어요. 우리,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현재를 빛내자고. 그래서 이 드라마 끝에는 반짝반짝 현재를 빛내는 사람들만이 남았죠. 비록 지금 당장은 그 현재가 비루하더라도요.

   드라마에 같은 동네에 주인공들이 살아요. 그래서 그리 크지 않지만 친절한 주인 아저씨가 있어 늘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술집이 매 회 등장해요. 이 술집에서 때로는 혼자 간단히 마시려고 들렀다가 둘이 만나 흥건하게 취하기도 하고, 때로는 퇴근 길에 셋이서 반주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여럿이서 어울려서 끝도 없이 알딸딸하게 취하기도 해요. 그러면서 어떤 이는 잊고 있던 꿈을 이야기 하고, 어떤 이는 그 꿈을 응원해주고, 그러는 사이 어느새 자신의 꿈도 찾게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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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정다운 술집. 취할 때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배부르지 않는 그런 안주. 열빙어를 주문했어요. 일어로는 시샤모라고. 주로 술집에서 시샤모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술집에서 이 조그만 생선이 어찌나 비싼지 바짝 구운 요 녀석 여섯마리에 오천원을 받아요. 그래서 늘 감칠맛나게 아껴 먹었는데. 인터마크 마트에서 싼 가격에 열빙어 25마리를 구입했어요.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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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열빙어의 비린맛을 없애기 위해서 소주에 담겨서 해동을 시킵니다. 찍어먹을 간장 소스에 와사비 약간 넣고 레몬도 띄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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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 집에 오븐이 없어서 버너를 가져다 팬 위에 구웠어요. 그런데 시샤모는 오븐에 굽는 게 제일 맛있는 거 같아요. 제가 원하는 바삭바삭한 스타일이 잘 안 나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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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바짝 구우려고 하다가 이렇게 좀 태워버렸지만 맛있었습니다. 알이 꽉 찼어요. <슬로우 댄스>의 그들처럼 우리도 꿈을 찾아 시원하게 맥주 한 잔. 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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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알이라면 사죽을 못 쓰거든요. 알탕, 알밥. 열빙어는 생선 전체가 알이니. 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너무 맛나요. 아, 레몬을 열빙어 위에 살짝 뿌려주는 센스. 25마리 엄청 많더라구요. 여럿이서 오랫동안 이야기 나누면서 술잔을 짠하고 비워가며 마시기 딱인 안주예요. 배도 부르지 않구요.


    예전에 고등학교 때 사전이나 책 귀퉁이에 항상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그 꿈은 꼭 이루어집니다' 류의 문구를 매번 적어놓곤 했어요. 새 책에 그 문구를 적어넣을 때 꾹꾹 눌러썼던 글자들만큼 비장했던 제 마음이 아련해요. 사토시가 <슬로우 댄스> 내내 망설였던 영화에 대한 꿈, 그걸 일깨워주고 부추겨주고 응원해줬던 이 사람, 정말 맛있게 맥주 마시지 않습니까? 제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요. 그리고 그 친구에게도 제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꿈이 아련해지는 날, 친구와 함께 땡겨주세요. 맥주랑 열빙어. 예전의 풋풋하고 몽글몽글했던 꿈들이 모락모락 되살아날 거예요. 그러면 우리 그 꿈을 쫓아가는 거예요. 사토시랑 에리상이 그랬던 것 처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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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이 장면을 제일 좋아해요. 깔끔한 치아키 선배 집에 나베요리를 같이 해 먹자고 온 노다메. 뭔가 부족하다고 코타츠를 가지고 오잖아요. 심지어 코타츠에도 귀여운 음표들이 날라 다닌다는. 따땃한 코타츠 속에 다리를 넣고 맛있는 나베 요리를 먹는 치아키 선배는 긴장이 풀리면서 노곤해지면서 편안한 잠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구요. 그리고 다음날에도 이어지는 코타츠와 맥주의 향연. 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서 이 장면은 몇 번을 반복해서 봤어요.


   그래서 만들어 먹어 본 샤브샤브. 화려한 나베요리는 아니지만, 그리고 비싼 소고기 샤브샤브는 아니지만 기대 이상이였던 '맥주 돼지고기 샤브샤브' 요리예요. 샤브샤브가 먹고 싶은데 국물내기도 부담스럽고, 넉넉하게 먹고 싶은데 쇠고기도 부담스러워서 검색을 해보다가 맥주 샤브샤브를 발견했어요. 주로 MT에서 남은 맥주와 돼지고기로 많이 만들어서 먹는다는데. 도전해보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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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재료예요. 인터마크 마트로 구입한 것들이예요. '꽃 삼겹살'이라고 얇게 썬 돼지고기를 구입했어요. 돼지고기니 잘 익혀 먹어야 하니. 얇고 샤브샤브용으로 딱이더라구요. 그리고 야채들. 양파, 청경채, 팽이버섯 등등. 야채가 조금 부족한 듯 해서 마트 가서 모듬쌈 종류로 좀 더 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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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주 먹다가 남은 거 따로 챙겨둔 게 있었어요. 그걸로 국물 준비 끝. 맥주 샤브샤브에서 소스가 중요해요. 저는 간장소스를 만들었어요. 간장 3스푼, 마늘 다진 것 1스푼, 참기름 1스푼, 식초 1.5스푼, 설탕 1.5스푼을 넣었어요. 레몬도 살짝 뿌렸구요. 돼지고기랑 야채를 소스에 찍어먹으면 짭짤한 것이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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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브샤브는 재료 준비만 하면 거의 끝이잖아요. 맥주를 팔팔 끊여서 거기에 야채랑 고기를 풍덩 빠뜨려서는 익었다 싶을 때 건져서 소스랑 찍어 먹었어요. 정말 맛있었어요. 저희 가족 모두 대만족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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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렴하고 요리법도 간단한데, 맥주 샤브샤브의 단점은 밥을 못 말아먹는다는 거예요. 죽처럼 만들어서 마무리 입가심을 해 줘야 하는데 말이예요. 다 먹고 나면 돼지고기 기름이 둥둥 뜨는 노란 맥주물만 남으니깐. 그 대신 넉넉하게 고기로 배 채우면 되니까요. 처음 해 먹어 봤는데, 맛나요. 한번 해 먹어 보세요.


   노다메 같은 귀여운 후배가 맥주도 짜짠 대령해주면 좋을텐데요. 목 마르죠, 쭉 들이켜요, 라면서. 흐흐. 맥주 샤브샤브에 곁들일 맛난 새 맥주까지 여럿이서 즐기다보면 깔끔쟁이 치아키 선배처럼 힘들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저는 깔끔떠는 치아키 선배보다 좋다고 모자란 술 더 사러 나가는 잠옷 바람의 노다메의 입장을 백 번 만 번 더 이해하지만요. 좋잖아요. 즐겁고.

   하지만 누울 자리를 봐가면서 다리를 뻗어야 하는 법. 치아키 선배같은 집에서 과하게 놀다가는 이렇게 쫓겨날 수도 있다는 거. 다음엔 노다메같은 화려한 나베요리도 먹어 볼래요. 그렇지만 맥주 샤브샤브도 그에 못지 않게 맛있었다는 말씀. 그리웠던 노다메. 유럽편 보러갑니다. 여전히 귀엽겠죠? 더럽고 덜렁되지만 누구보다 귀여운 노다메, 언니가 간다. 기다려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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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 앤 더 시티> 3시즌 마지막 이야기예요. 캐리와 미란다는 길을 가다 자신들의 옛 남자친구들을 만나면서 허우덕거리고, 샬롯은 트레이와 별거를 시작하고, 사만다는 밤마다 나타나서 잠을 설치게 만드는 여장남자들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이 되요. 캐리와 미란다는 빅때문에 싸우고, 샬롯은 34살의 이혼녀가 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상상해요. 물과 계란을 총동원한 야밤의 결투를 벌인 끝에 사만다는 여장남자들과 화합하면 지낼 수 밖에 없다고 깨달게 됩니다. 

   그리고 옥상에서 화끈한 화해의 파티를 여는 거죠. 소시지를 굽고, 보드카와 파인애플, 샴페인으로 만든 칵테일을 나눠마시며 화끈하게 엉덩이를 흔들면서 이 평화의 시간을 즐기는 거예요. 우리의 멋쟁이 아가씨들 모두 혼자가 되었고 그 문제가 무엇이였는지 끙끙대는 달콤한 시간들을 즐기는 거죠. 걱정할 것 없이. 우리들은 모두 나름대로 행복하니까요.
 

   이런 맛있는 소시지는 바베큐로 먹어야 하는데 말이죠. 팬션 같은데 놀러가서 삼겹살이랑 철판 위에 놓고 지글지글하게 익혀가면서요. 다음에 놀러가서 꼭 시도해보겠어요. 인터파크 마트에서 장 본 것 중에서 드디어 소시지 시식입니다. 짜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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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종류예요. 불고기맛 돈장롤, 매콤한 청양고추 그릴 소시지, 제가 제일 좋아하는 톡톡 터지는 날치알 그릴 소시지, 그리고 콩으로 만튼 쏘이야채 소시지까지. 사실 쏘이야채 소시지는 좀 맛이 없었어요. 저는 역시 고기체질인가봐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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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름 바베큐하는 기분을 낸다고 휴대용 버너에 삼겹살 굽는 판에 올려서 먹었어요. 가위로 먹음직스럽게 자르고요. 기름은 따로 뿌려주지 않아도 타지 않고 잘 익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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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렵한 가위질이 필수예요. 싸삭. 싸삭. 이건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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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릇노릇 잘 익혀서 시원한 맥주 한 잔과 함께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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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 맛있던 맛은 날치알 그릴 소시지였어요. 제가 날치알을 좀 좋아해서요. 톡톡 터지는 맛이 끝내줘요. 매콤한 청양고추도 맛있구요. 술집에서 안주로 시키던 소시지랑 똑같았어요. 두툼하고. 보통 이 정도 가격이면 2만원정도 하는데 세일해서 거의 9천원에 샀으니깐 정말 싼 거 같아요. 그만큼 맛있구요. 강추 맥주 안주예요! 저는 또 사 먹어볼 예정이예요. 이번에는 낱개로 날치알이랑 청양고추로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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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시지가 2차였던지라 좀 남겼어요. 그래서 다음날 나들이갔을 때 담아서 갔어요. 다시 굽는다고 약간 타긴 했지만 냠냠 맛있게 해치웠답니다. 저도 <섹스 앤 더 시티>처럼 지금 혼자여서 끙끙대고 있지만 뭐 어때요. 캐리의 건너편 옥상 수탉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저도 저 나름대로 행복하니까요. 우리들 모두가 그렇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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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햄 수제 소시지 4종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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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몇 년 전이네요. 자주 가는 블로그가 있었어요. 글을 맛깔나게 잘 쓰셔서 몰래, 흔적없이 다녔던 블로그인데요. '실연 당한 후 먹은 돈까스'에 관한 글이 있었어요. 그 글이 너무 좋아서 블로그에 들어갈 때마다 찾아서 읽고 또 읽고 그랬죠. 그러면서 내 실연에 관해서 생각하고, 내 실연 후에 선배가 사주었던  복분자 술에 대해서 생각하곤 했어요. 그 블로그도 없어져 버리고, 저도 쭉 그 글을 잊고 지냈었는데 작년 겨울, 친구 결혼식 즈음해서 후배에게서 메일이 왔어요. 이 메일 기억하느냐고. 예전에 제가 후배에게 썼던 메일에 답장을 써서 보냈는데. 그 때 저는 그 글이 너무 좋아서 복사를 해서는 후배에게 보내는 메일에 함께 보낸 거예요. 그렇게 그 글이 살아서 제게 돌아왔죠. 그 때 제가 미니홈피에 흔적을 남겨두었던 글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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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스물 한 살때, 지금 생각해보니 사소하지만 그때는 심중했던 실연의 상처에 잠시 몸부림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내 방에 찾아왔던 5살 연상의 선배 언니가 있었다. 삼박사일동안 소주와 담배만 조져댄 내 몰골을 본 언니, 말없이 나를 질질 끌고 집 근처의 기사식당에 데려갔다. 안 먹겠다고 앙탈을 부리는 나를 앉혀두고 대왕만한 돈까스 두 접시를 시켜 손수 먹기좋게 잘라준 그녀. 난 여전히 안먹겠다고 버둥대는데 억지로 포크에 꽂힌 돈까스를 입에 밀어넣었다. 오오! 그런데 이게 웬 천상의 음식이냐. 한입 먹는 순간 너무 맛이 있어서 그만 쉬지않고 돈까스 두 접시와 밥과 수프를 해치워 버렸다. 그런 다음 식당 밖으로 나와 샐렘 담배를 한대 피워물고 차가운 콜라 한 캔을 들이키는데 그만 마음의 상처 따위 어디론가 모두 사라져 버려서...

   예전에 자주 가보곤 했던 블로그에 이 글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이 글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얼마전 후배에게 메일이 왔다. 2년 전에 내가 썼던 메일에 답장버튼을 눌러 보낸 거였는데, 그 때 후배에게 이 글이 너무너무 좋다며 복사해서 보냈었다.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
얼마나 쿨하고 맛깔스럽게 실연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느낌인지. 눈을 감고 그려봐도 그 맛있는 느낌이 생생했다. 여전히 식도를 타고도는 전 날의 역한 소주 냄새. 모락모락 맛있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기사식당 왕돈까스. 탄산방울들이 식도에 탁 걸리는 시원한 콜라 한 모금. 슬리퍼에 쭈그리고 앉아 피는 담배 한 개피. 그리고 사라지는 실연의 상처'따위'

   2년 전 그 때 나는 돈까스'따위' 뿌리치는 심각한 몰골의 후배에게 감정이입이 됐었는데 지금 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실연'따위'로 기사식당 왕돈까스를 뿌리치는 후배 등짝을 한 대 세게 때려주고 심각한 몰골의 입에 돈까스 한 입을 넣어주는 선배가 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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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식당 돈까스는 아직까지 먹어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또 실연을 당하게 된다면 꼭 혼자서라도 기사식당에 가서 그 크고 맛난 돈까스를 꾸역꾸역 먹고, 콜라를 한 모금 마신 후 실연의 아픔따위는 쿨하게 삼켜버리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어요.

    기사식당 돈까스는 아니지만, 정성이 들어간 함박 스테이크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의 상처에 고소한 빵가루와 신선한 다진 야채들을 넣고 조물조물 치대고 지글지글 맛나게 구워내어서 칼로 쓱삭쓱삭 잘라서 아픔따위 한 입에 먹어치울 수 있는 그런 함박 스테이크요. 어릴 때 먹었던 동네 조그만 레스토랑의 그 맛도 생각이 나기도 하는. 그리고 가까운 누군가가 실연을 당한다면 정성들여서 스테이크를 만들어서 꼭 몰골의 입 속으로 한 입 넣어주고, 이 세상이 그 사람이 없어도 얼마나 맛있는 세상인지를 단번에 깨달게 해주고 싶어요.


   자, 요리 시작합니다. 처음이라서 실수 연발이였지만 제법 맛난 녀석이 완성되었어요. 사진을 잘 못 찍어서 맛나게 보일지는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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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 마트에서 구입한 재료들 중에서 함박 스테이크에 넣은 것들이예요.

재료
돼지고기 간 것 300g
소고리 간 것 300g
양파 하나  
계란 하나
새송이 버섯
파프리카
대파 하나
치즈

당근 하나
빵가루 조금
굴소스 2스푼
소금, 후추 약간
(요건 집에 남아 있는 걸로 해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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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양파랑 당근은 잘게 다집니다. 대파도 다져서 준비합니다.
스테이크에 곁들일 야채는 길게 채썰어줍니다.
저는 색깔이 다른 파프리카 반쪽씩이랑, 새송이 버섯, 팽이 버섯, 양파를 준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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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진 돼지고기, 소고기랑 다진 당근, 다진 양파, 다진 파랑 빵가루 약간과
짭짤하게 간을 해줄 굴소스 2스푼을 넣습니다.
아, 계란 하나도 깨서 넣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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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치댑니다. 끈적끈적할 정도로요.
많이 치댈수록 좋다고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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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크기로 빚어줍니다. 큰 마요네즈 뚜껑을 이용하면 딱 맞는다고 하던데
저희 집에는 없어서요. 대충 손으로 빚었어요. 너무 크게 만들어서 배 불러 죽는줄 알았어요.
당장 해 먹을 것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잘 싸서 냉동실에 보관하면 나중에 해동해서 드시면 되요.
저는 크게 만들어서 여섯 덩어리 정도 나온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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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라이팬에 기름 살짝 두르고 구워요.
딱 한번만 뒤집는 게 육즙도 안 빠져나가고 좋다고 해서 안 뒤집고 있다가 좀 태웠어요.
적당히 익어가는 색깔을 보시면서 뒤집으세요.
구우면서 고기 모양이 흐트러지면서 틈이 생기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럴 경우에는 치즈를 올리면 된다고 해요.
그래서 하나씩 올렸어요.

체다 치즈를 주문했는데, 덤으로 하얀색 칼슘 치즈까지 왔어요. 흐흐-
남은 거는 하얀 칼슘 치즈 올려서 먹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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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을 얇게 썰어서 기름 약간 둘러서 향을 내고 준비한 버섯과 야채를 넣고 살짝 볶았어요.
야채를 깔고 그 위에 스테이크를 올리고 바베큐 소스를 뿌려서 먹었는데요.
너무 잔뜩 뿌리는 바람에 소스맛이 강했다는.
나중에 먹을 때는 집에 스테이크 소스가 있는 걸 발견하고
바베큐 소스랑 스테이크 소스를 반씩 섞고, 핫소스 조금이랑 물도 반 컵쯤 넣고요.
다진 마늘도 넣고 끓여서 만들어 먹었는데 그게 훨씬 낫더라구요.

감자도 두, 세개 삶아서 마요네즈랑 다진 당근을 약간 넣어서 감자 샐러드도 만들었어요.
조그만 커피잔 같은데에 넣어서 모양을 잡아서 접시 위에 올려주면 좋아요.
밥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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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입니다. 쩝쩝거리면서 맛있게 먹었답니다.
맥주도 한 병 사와서 요리하는 동안 차갑게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꺼내 먹구요.
맛있었어요. 실연의 상처따위는 쿨하게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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