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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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의 썸머 - 그러니까, 488일의 톰극장에가다 2010. 1. 25. 22:41
금요일, 홍대에 있었다. B를 기다리는 동안 브뤼트라는 잡지에 김연수가 쓴 글을 읽었다. 그건 체 게바라에 관한 글이기도 했고, 파블로 네루다에 관한 글이기도 했다. 나도 언젠가 보고 울컥 했던 시. 파블로 네루다 시의 어떤 구절에 대해서 김연수는 이야기한다. 바로 이런 구절.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 그녀는 가끔 나를 사랑했다." 우리 모두는 썸머와 사귄 적이 있다. 어딘가에서 본 영화 카피.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언젠가의 톰이다. 영화는 연애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500일동안. 연애를 하는 남자 이름은 톰. 그리고 연애를 하는 여자 이름은 썸머. 톰은 어여쁜 썸머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그리고 뜻밖에도, 혹은 당연하게도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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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드 - 아저씨 마음에도 불씨가 있나요?극장에가다 2010. 1. 18. 22:27
오래간만의 극장 나들이. 를 봤다. 한 1시간 정도 제대로 봤나. 앞부분은 거의 다 자버렸다. 왜냐면, 전날 늦게까지 빼갈과 맥주를 마셨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택시를 타고 새벽에 집에 왔고, 아침 일찍 출근했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영화보기 전에 포테이토와 콜라가 아니라 찐-한 커피를 마셨어야 했는데. 영화의 처음. 아버지와 아들이 걷고 있었다. 황량한 길이 펼쳐졌고, 누추한 차림의 두 사람이 그 길 위를 걷고 있었다. 세상은 온통 잿빛이고, 백 년은 넘게 자랐을 것 같은 나무들이 여기저기서 쿵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쿵쿵. 그리고 잠이 들었다. 달게 자고 깨어나 보니, 두 사람은 어떤 지하창고를 발견했는데 거기가 천국이다. 따뜻하고, 먹을 것 천지다.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를 하고, 목욕을 하고, 수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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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 그 때 왜 그랬어요?극장에가다 2009. 11. 10. 00:57
변기 위에 앉아 지난주 영화잡지를 펼쳤다. 이야기. 역시 내가 고민한 그 질문이 한 평론가의 글 중심에 놓여 있었다. "왜 그랬니?" 이선균이 서우에게 묻는다. "근데 그 때 왜 그랬니?" 누구는 를 보고 1마리 어린양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고, 누구는 속 이선균이 연기한 중식의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다섯 정거장 되는 거리에 메가박스가 생겼다. 그 날은 영화가 고팠던 날이라,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데도 걸어서 그 곳에 갔다. 새로 생긴 극장의 복작거리는 분위기를 상상했었는데, 건물 주위에도 건물 안에도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함께 영화를 봤다. 역시 평론 속 표현처럼 나는 이선균의 그 대사가 너무 갑작스러웠던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이다. 곱씹어봐도 그건 갑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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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바 - 쇼팽이 폴란드를 떠날 때극장에가다 2009. 11. 3. 23:12
이 영화를 보기 전이라면, 이 영화가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쇼팽의 이별곡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엠피쓰리플레이어에 이 곡을 집어넣었다. 에서는 커다란 두 개의 사건이 발생한다. 하나는 콜린 퍼스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 또 하나는 슬픔에 빠진 아이들을 위해 콜린 퍼스가 제노바로 이사를 한 것. 이 외에는 별다른 사건이랄 건 없다. 그저 무덤덤하게 시간이 흘러간다. 막내가 한 번 길을 잃는 일이 있긴 했다. 바닷가 근처 수도원이 있는 산에서였다. 아이는 엄마가 보인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건 정말 사실일 지도 모른다. 엄마는 막내가 걱정돼 이승을 계속 떠돌고 있는 걸 수도.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막내의 깊은 그리움이겠지. 그 일을 제외하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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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 9 - 비커스가 크리스토퍼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극장에가다 2009. 10. 25. 21:32
을 보러 극장에 갔을 때만 해도 이 영화가 무슨 영환지도 몰랐다. B씨가 기다리고 있는 영화라고 했고, 그날 마침 극장에서 예고편이 나왔다. 씨네21에 대대적인 특집기사가 실렸고, 피터 잭슨이 제작한 영화란다. 그냥 그런 정보만 가지고 지난 주 월요일, 내가 좋아하는 왕십리 CGV에 가서 영화를 봤다. 맛난 아메리카노까지 챙겨 마시고 들어가서 본 영화는 그야말로 충격. 첫 장면부터 바짝 집중해서 봤다. 모큐멘터리 형식인데, 2시간 가까이 정말 목에 힘을 잔뜩 주고 봤다. 재밌더라. 그리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건 SF지만,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이 스쳐가는 영화다. SF의 탈을 쓰고 있는 정치 영화. 팜플렛을 보니 '디스트릭트 9'라는 제목은 실제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백인들만 거주했던 지역명에서 따온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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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그레이스 - 당신을 온전히 그리워 할 수 있는 시간극장에가다 2009. 10. 23. 23:00
그게 정확히 몇 시쯤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게 궁금했다. 스탠리(존 쿠삭)의 부인은 직업 군인이다. 현재 그녀는 부재 중이다. 이라크로 파병 간 상태. 스탠리에게는 사랑스런 두 딸이 있다. 착한 첫째 딸과 귀여운 둘째 딸. 엄마가 이라크에 가 있으니 불안한 건 말할 것도 없다. 아빠는 큰 딸 하이디에서 이라크 관련 뉴스를 보지 못하게 하고, 막내 던은 엄마와 약속을 했다. 시계에 같은 시각으로 알람을 맞추고 알람이 울리면 눈을 감고 서로를 생각하기로. 그게 정확히 몇 시쯤일까. 그게 궁금했다. 오후 네 시쯤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가 끝난 뒤였고, 오후였고, 해가 지기 전이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안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지는 내내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엄마를 잃은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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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시절 - 비, 봄, 바람, 구름, 불빛, 꽃의 영화극장에가다 2009. 10. 10. 01:53
때를 알고 내리는 비. 때를 알고 스치는 바람. 싱그러운 연두빛 나뭇잎들이 바람에 사르르 사르르 흔들리면, 꿈만 같이, 믿을 수 없게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마치 의 대나무 숲의 바람의 소리와 같아요. 사르르 사르르. 나뭇잎들의 소리가 한 차례 밀려나면 그 뒤로 한 때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던 그 때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꿈결처럼. 비 내리는 봄날의 밤, 불빛만 비치는 강 위에 배처럼. 그녀가 나타납니다. 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얼마나 기다렸던지요. 어느날 잡지에서 허진호 감독이 영화를 찍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정우성이 나온다 했고, 중국 여자배우가 나온다 했지요. 두보의 시 한 구절을 딴 제목이라 했지요. 나는 그의 영화라면 다 좋으니까, (은 조금 실망스러웠지만요) 기다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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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샤인 클리닝 - 피칸파이를 추천해드려요극장에가다 2009. 9. 18. 00:06
이 날, 영화를 보고 맥주를 마시러 투다리에 들어갔는데, 우리가 세 번째 안주 (내가 다 먹었으니 나의 안주구나) 시샤모를 시키기 전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니 우리는 그 비를 맞으며 지하철 역까지 걸었고, 나는 (이건 온전한 나) 집에 오는 길에 분홍색 타자기가 그려진 주간지를 샀다. 그 날, 우리는 첫 번째, 두 번째 안주, 그러니까 감자베이컨말이와 육포를 먹으면서 어쩐지 이 영화는 뭔가 아쉽다고 이야기했다. 더 깊이, 더 멀리 나갔어야 했는데, 영화는 그러지 못했다고. 그렇게 끝나 버린 게 못내 아쉽다고. 그래도 좋은 영화였다고. 그 날, 나는 영화를 보면서 울어버렸는데, 영화 속 자매가 어느 날 밤에 우연히 티비에서 엄마가 출연했던 (그렇게 보고싶어했던) 영화의 '피칸파이를 추천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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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포즈 - 산드라 언니는 여전히 멋지군요!극장에가다 2009. 9. 6. 22:04
Y언니의 표현에 따르면, 나는 로코 마니아. 나는 우울한 밤이면, DVD로 로코를 틀어놓고 볼만큼 보다 잔다. 그러면 뭔가 내일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안심이 된다. 얼마 전, 중고로 구입한 DVD도 몇 번을 되풀이해서 보다 잠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끝까지 보기도 했지. 로코는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으니까, 늘 나를 꿈꾸게 해주니까, 때론 나를 위로해주니까, 나이값 못한다고 욕할지 몰라도, 로코를 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단, 잘 만들어진 로코의 경우에 그렇다. 혹 잘 만들어지지 못했더라도, 뭔가 나랑 통하는 한 장면이라도 있으면 좋다. 여기서 로코는 로맨틱 코미디. Y언니의 표현이다. 저번주 씨네21 특집이 바로 로코였다. 와 개봉 기념 특집이랄까. '씨네21이 선정한 현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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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 - 오두리 토투'만' 보아요!극장에가다 2009. 9. 2. 22:31
요즘 몸을 좀 가볍게 하려고 먹는 걸 줄이고, 예전보다 좀 더 걷고 있다. 집으로 오는 길이면, 또 저녁을 못 먹는다는 사실과 내일 점심 때 뭘 먹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책이고 음악이고 읽고 들을 틈이 없다. 이틀 전부터 한 정거장 일찍 내려서 동네에서 가장 큰 홈플러스 매장에 가서 이것저것 사고 있는데, 거긴 넓으니깐 구경도 하고 걸을 수도 있다. 그제랑 어제는 샐러드를 먹었으니, 내일은 야채랑 닭고기, 새우를 듬뿍 넣은 월남쌈을 싸가자고 왕십리 역을 지나며 생각했다. 월남쌈 재료를 사러 갔는데, 그 매장은 들어서는 순간 제일 먼저 화장품 코너, 다음이 맥주 코너다. 홈플러스 매장에는 얼마나 많은 세계 맥주가 있는지. 며칠 전에는 그냥 와 버렸지만, 오늘은 프랑스 맥주를 한 병 샀다. 아주 작고 귀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