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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사평, S모퉁이다방 2016. 3. 19. 07:00
원래 일요일에 수제맥주 만드는 강의를 들으려고 했다. 이태원의 탈이라는 맥주공방에서 맥주를 함께 만들어보고, 맥주도 4잔이나 마셔보고, 그날 만든 맥주는 일주일 후에 찾아갈 수 있는 수업이라고 했다. 내게는 그야말로 대박 강의. S랑 신청을 했는데, 인원 미달로 폐강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맙소사. 우리는 잠시 절망했지만, 변함없이 일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만나서 탈에서 맥주를 함께 마시기로 했다. S는 맨들맨들한 까만색 애나멜 구두를 신고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의 연갈색 가방을 메고 왔다. 밝고 긍정적이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심과 배려심이 많은 S는 맥주 강의는 취소되었지만, 언니랑 만나 맥주를 마실 수 있어서 좋다며 웃었다. 탈은 문이 닫혀 있어서 녹사평에서 이태원까지 한적한 골목길에 있는 술집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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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늦여름 혹은 가을모퉁이다방 2016. 3. 15. 18:40
2015년 늦여름 혹은 가을 동안의 기록. 순서는 뒤죽박죽. 서른 다섯이 넘은 언니에게 서른 다섯이 코앞인 동생이 보내준 구절. 시옷에 동생을 초대했다. 연남동의 시옷. 화양연화와 소라닌. 가을에는 출근 전에 스타벅스에 자주 갔었다. 가을에 읽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걷는 듯 천천히. 어느 날의 도시락. 아마도, 퇴근. 친구에게 작가의 약력을 적어 엽서로 보냈다. 트럭 운전수를 하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아침, 오늘의 커피, 스콘, 그리고 나를 보내지 마. 아침, 메세나폴리스 스타벅스. 아마도, 퇴근. 이제는 배가 제법 나온 임신 중인 친구와 먹었던 그리스 음식. 아침, 커피, 앤드루 포터, 어떤 날들. 예전에 알고 지내던 분에게 얼마 전에 메일을 보냈었다. 앤드루 포터의 새 책을 읽고 어떻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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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보리모퉁이다방 2016. 3. 10. 23:48
1월부터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대견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다. 이 운동의 처음은 동생 회사에서 선물해준 1개월 무료 이용권 덕분이었는데, 당시에는 등록만 하고 열심히 하고 있지 않다가 올해가 시작되고 이런저런 소소한 시련들을 맛본 후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다. 땀을 흘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느낌이 꽤 괜찮았다. 내일도 나가볼까, 하고 나갔고. 내일은 나가지 말아보자, 하면 그 다음날 아침 몸 컨디션이 영- 엉망이었다. 그러니 다음에는 꼭 나가자, 가 되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고, 인바디를 쟀는데 모든 몸이 '적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트레이너도 지표를 보더니 놀라면서 칭찬해줬다. 이렇게 딱 5월까지 열심히 하면 몸이 엄청 좋아질 거라고 했다. 이번주 월요일에도 운동을 했고, 화요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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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의 시옷모퉁이다방 2016. 3. 8. 23:02
2월의 시옷의 책은 로베르트 무질의 였다. 기석이가 선정한 책이었다. 나는 거의 읽질 못하고 모임에 갔다. 다들 많이 읽지 못했노라고 고백했다. 소윤이만 다 읽었다. 소윤이는 힘들게 읽었는데, 무질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바로 하지 않고 빙빙 둘러서 이야기를 하더라고, 그런데 그런 무질의 이야기를 빙빙 둘러 따라가보면 그곳에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있더라고 이야기했다. 무질이 일부러 그렇게 쓴 것 같다고. 그러니 그렇게 읽어야 했다고. 그게 무질이 원한 거였다고. (소윤이의 말을 적어두질 않아서 내 멋대로 해석했다) 봄이는 성격 없는 인간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의 자신의 성격이 정확하게 무언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시옷에서 이렇지만, 회사에서는 또 전혀 다른 모습이야. 또 다른 곳에서는 다른 모습이고.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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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극장에가다 2016. 3. 7. 23:34
영화를 보고 나오니 밤이 되어 있었다. 극 중의 여자아이가 동주와 함께 걷다가 이야기 했던 것처럼 보고나니 조금 쓸쓸해졌다. 여자아이는 동주에게 시들이 좋다고, 읽고나니 쓸쓸해졌다고 했다. 그래서 좋았다고 했다. 영화가 개봉할 때는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 한 마디씩 해 줬다. S는 엄청나게 울었는데, 울음소리가 새어나올까봐 입을 손으로 틀어 막았다고 했다. 몽규가 강렬해서 몽규의 영화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영화제목이 왜 동주인지 알겠더라고 했다. B는 눈물 세 방울이 동시에 흘러내렸다고 했다. OST도 좋았다고 했다. 곡예사 언니는 크레딧에 대해 이야기했다. 동주와 몽규 두 사람의 일생이 나란히 올라가는데, 두 사람은 태어나서, 함께 자랐고, 항상 함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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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서재를쌓다 2016. 2. 28. 22:38
이렇게 남쪽 나라에서 보낸 나의 겨울은 따뜻했다. 그 200일 동안 긴장을 풀고, 서두르지 않고, 마치 현지인이라도 된 듯 슬렁슬렁 돌아다녔다. 매일 산책을 했고, 책도 많이 읽었고, 제법 글을 쓰기도 했다. 만날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적다 보니 나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고요히 호흡을 고름으로써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필요한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울에서보다 생활비가 훨씬 적게 든 건 물론이다. 일상보다 설레고, 여행보다 편안한 날들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겨울이 오면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가는 삶의 방식을 고수하게 될 것 같다. 여행과 일상의 중간지대에 머물며 덜 쓰고 덜 갖되 더 충만한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은 모두가 같은 곳을 찾아가 같은 것을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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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동, E모퉁이다방 2016. 2. 23. 22:33
세어보니 거의 일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E와 나는 작년 이맘 때쯤 전주 여행을 갔었다. 오직 가맥집을 가기 위해. 금요일 퇴근을 하고 만나 고속도로를 달려 한밤에 전주의 복작복작한 가맥집에 마침내 앉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설레였었나. 그때의 즐거움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서울에 괜찮은 가맥집이 있다고 해서 간만에 E와 만났다. 우리는 클라우드 맥주병으로 테이블 한 면을 가득 채웠다. 먹태도 먹고, 과자도 먹고, 사발면도 먹었다. E는 역시 맥주는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마셔야 한다고 말했다. 맥주는 어떻게 이렇게 질리지 않을까. 맥주를 마시다보니 비가 왔다. 술맛이 더 났다. 우리의 목표는 잔뜩 마시고 취하지 않기였다. 익선동은 처음 듣는 지명이었다. 언니, 요즘 이 골목길이 뜨고 있대요.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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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포크무대를보다 2016. 2. 10. 19:10
언니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 S가 그랬다. 우리는 강아솔과 이영훈의 공연을 보고, 금룡통닭으로 맥주를 마시러 갔다. 맥주를 마시다 S가 말했다. 언니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언니가 좋은 사람 만날 수 있게 내가 기도하고 있어. 언닌 정말 좋은 사람 만날 거야. S는 내가 빌려준 책을 돌려주며 퇴근길에 먹으라며 말랑카우도 여러 개 넣어주고, 내가 좋아하는 맥주도 귀엽게 리본을 묶어 넣어줬다. 이런 다정한 아이가 다 있나. S를 위해 나는 올해 꼭!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강아솔과 이영훈은 우리에게 여러 노래들을 들려줬다. 그 중 몇몇 곡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마음에 남아 여러 날 반복해서 듣고 다녔다. 출근길에, 퇴근길에, 일할 때에, 이유없이 길을 걸을 때에. 강아솔은 농담을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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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실티비를보다 2016. 2. 3. 23:11
지난 12월의 메시지. - 언니 72초티비 오구실 알아? - 엉 보는데 언니 생각나. - 귀엽고 몽글몽글한 드라마임. M 덕분에 알게 된 드라마. 12월에 한번 보고, 1월에도 또 한 번 봤다. 2월이 되었으니 한 번 더 봐야지. 몽글몽글한 드라마를 보고 내 생각을 해 준 사람도 고맙고, 오구실도 고맙네. 오구실도 나처럼 연애고자네. 그렇지만 몽글몽글한 연애고자인 것이다. 연어덮밥과 우동을 나눠 먹는 야근, 술이 잘도 들어가서 조심해야 되는 날 잠깐 밖에 나와 바람 쐬는데 따라나오는 두근거림, 무심하게 내일의 약속을 잡는 쫀득쫀득함, 해장국을 먹고 를 보는 휴일 아침. 아, 오구실. 어떻게 그걸 까먹었어. 보고 있으면 마구마구 설레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2월에는 연애고자짓을 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