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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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잔상들서재를쌓다 2019. 1. 13. 21:29
12월 15일 토요일이었다. 일찍 일어났고 상암 메가박스 상영시간표를 검색해봤다. 조조 가 있었다. 망설이다 일어났고 세수를 하고 커피를 내렸다. 상암 메가박스에는 맛난 라떼를 파는 커피집이 있는데 조조 시간대에는 문을 열지 않더라. 겉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영화 시작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극장 한 켠에 앉았다. 12월 어느 날,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다정한 추천 메일을 받았더랬다. 작고 단단한 책을 펼치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문장이 있었다. "야근중인 사무실 책상에서, 극장 안에서, 밤거리에서, 새벽녘의 작은 방 안에서 나는 발표할 기약 없는 이 글들을 십 년간 조금씩 써나갔다. 그러면서 차츰 투명한 응시가 과거를 미래로부터 발견해내는 일임을, 다가올 이미지를 기다리며 무언가를 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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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집생활서재를쌓다 2019. 1. 5. 06:39
작년에 읽은 마지막 책이다. 마지막 장까지 마치긴 했지만 읽는 내내 의문이었다. 이렇게 소설가가 고심해서 쓴 문장을 어순 정도만 달리해서 카피로 써도 되는 걸까. 그걸 이렇게 이용했다고 책으로까지 만들어 놓아도 되는걸까.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래도 되는건가.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카피라기보다 소설을 그대로 가져다 쓴 카피였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나갔고, 어제 가격 때문에 고심했던 국어사전을 주문했다. 종이 국어사전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구입하지 않았을 거였다. 이 책을 읽은 후 최대의 성과이다.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나는 가급적이면 인터넷으로 빨리 찾을 수 있는 검색사전이 아닌 종이사전을 권한다. 검색을 하면 내가 찾고자 하는 것밖에 알 수 없지만, 종이사전을 뒤적이다 보면 못 보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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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서재를쌓다 2018. 12. 5. 22:55
퇴근 길이었나. 약속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던 길이었나. 몇 주 전이었고, 합정역이었다. 망원방향의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는데, 갑자기 울부짖는 소리가 나서 모두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여자분과 남자분이 있었다. 아주머니, 아저씨 보다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가까웠다. 여자분이 어찌보면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며 남자분의 가슴과 등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있었다.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끊겼다 들렸다 끊겼다 했다. 주위를 의식한 게 아니라 너무 서러워 소리가 끊기는 거였다. 그 순간 남자분의 표정과 소리를 보고 듣지 않았더라면 그냥 여자분이 만취 상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비틀거리며 울부짖는 여자분을 부축하는 남자의 얼굴에 울음이 섞인 절망이 보였다. 그런 절망의 표정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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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서재를쌓다 2018. 10. 18. 22:59
이번 책은 유럽기차여행 이야기라고 했다. 여름의 홋카이도를 보통열차를 타고 여행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읽었던 지라 이번 책도 기대했더랬다. 내게 오지은은 전과 후로 나뉘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새빨간 마릴린 먼로 원피스를 입고 널 보고 있으면 널 갈아 먹고 싶다고 노래하던 오지은이 전의 오지은이고, 완연한 봄을 앞에 두고 자꾸만 무기력해지는 자신을 마주하는 오지은이 후의 오지은이다. 이 책도 후의 오지은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깊은 밤, 오지은은 우물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싫어 검색을 한다. 유럽, 베스트, 기차, 경치. 기차덕후 오지은은 비수기 겨울에 론리플래닛이 선정한 유럽 최고의 기차 풍경 베스트에 속하는 몇몇 구간들을 혼자 여행해 보기로 한다. 잘 쉬고 싶고, 신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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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지는 중입니다서재를쌓다 2018. 9. 3. 22:09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스웨덴은 어쩌다 겨울이 늦게 온다고 해도 좋아할 거 하나 없다. 언젠가 오게 되어 있다." 표지와 제목이 좋아서 찜해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독자평을 보고 주문해버렸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북유럽의 겨울을 상상하며 추운 날씨에 따뜻한 온기를 깔고 읽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여름 이야기도 나오니 초록초록한 여름에 읽어도 좋았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겨울성애자로써 첫 문장은 정말로 겨울에 읽었으면 더 좋을 뻔 했다. 작가는 스웨덴에 살고 있다.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전남편이랑은 이혼을 했고, 아이는 자폐 판정을 받았다.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남편과 이혼을 하고, 곁에 있는 친구들에게 힘을 얻고, 또다른 사랑이 찾아오고, 그 사랑을 또 떠나보내고. 이런 커다랗고도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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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취향서재를쌓다 2018. 8. 26. 23:07
어제는 시옷의 모임이 있었다. 이 책은 출간하자마자 읽었는데, 어제 을지로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던 구절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이런 문장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마주앉아야 한다.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술이 아니라면 차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아야 한다. 그리고 별 거 아닌 오늘 하루를 말해야 한다. 당장은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쌓이면 견고한 '우리'가 되니까. '우리'는 함께 즐거울 것이다. 함께 어려움을 넘을 것이다. 오해가 쌓일 틈은 없을 것이다. 서운함이 쌓일 겨를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마주앉아 오늘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이상." 어제 우리는 을지로 노가리 골목 만선호프의 야외자리에 앉아 생맥주와 노가리, 닭똥집 튀김, 두부김치, 오징어 숙회, 김 안주를 차례대로 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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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없이 살자서재를쌓다 2018. 8. 25. 16:20
의 한고은 편을 챙겨 보고 있는데, 이번주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포장마차에서 골뱅이탕에 레몬소주를 마시며 더위 때문인지 취기 때문인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한고은이 말했다. 여보, 나랑 결혼해줘서 정말 고마워. 이 말을 세 번쯤 한 것 같다. 그날의 대화에 의하면 평소에도 남편에게 자주 했던 말이었다. 한고은은 여보가 없었으면, 이라고 말하더니 울컥해져서 술잔을 놓았다. 이를 본 남편이 한고은의 등을 토닥여줬고, 한고은은 울 것같은 표정으로 남편을 안았다. 그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결혼하기 전에는 나한테 가장 쉬운 일은 죽는 거였어. 여보랑 결혼하고나서 가장 달라진 건 세상에서 죽는 게 제일 무서워. 한고은은 지난 날이 너무 힘들었고,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 남편이 그동안 고생한 자기에게 수고했다며 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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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돼가? 무엇이든서재를쌓다 2018. 8. 21. 21:42
책을 살 생각은 없었는데, 동생이 출근길에 이 책의 첫 글인 '눈물병'이 실린 페이지를 보내줬다. 서른 여섯살 여동생이 결혼을 했다. 가족 모두 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경미 감독 혼자서만 울었단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여동생네와 식사를 하고 동생네는 돌아가고 엄마와 함께 뒷산을 실렁실렁 올랐던 시간에 대해 쓴 글이다. 감독은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정말 다 짝이 있을까?" 그리고 말한다. "내 짝은 왔다가 갔어, 이미." (그런데 책을 끝까지 읽으면 이 말은 당연하게도 사실이 아니다. 흐흐-) 그리고 이 구절이 있다. "사랑을 잃었다고 무너지면, 나는 끝난다. 나한테는 나밖에 없다. 매일 매시간 매초, 나를 때리며 악으로 버텨왔는데, 창피한 줄 모르고 아무 때나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그렇게 매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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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른스러운 산책서재를쌓다 2018. 8. 15. 18:21
을 읽고 한수희 작가의 책은 챙겨 읽어야지 다짐했었다. 그녀의 글에는 시원시원한 면이 있었다. 솔직했고. 이번에 교토 여행 책이 출간되었다기에 바로 주문을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제목을 잘 지었다는 걸 알겠더라. . 여행지가 사람의 기운을 달리 만드는 걸까. 그녀의 말대로 나이가 들어서 이전의 여행과는 달라진 걸까. 차분하고 고요하다. 30대가 된 후 작가는 해마다 교토를 찾는다고 한다. 교토를 위해 한달에 얼마씩 저축을 하고, 예정했던 돈이 다 모이면 1년 동안 고생한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난다고. 교토로. 책은 교토라는 장소보다 교토를 거니는 작가 자신에 집중한다. 두 아이를 키우는 고단함에 대해, 카페를 열었다 접을 수 밖에 없었던 사연에 대해, 밥벌이의 어려움에 대해, 글쓰기의 즐거움에 대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