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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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다운티비를보다 2021. 7. 21. 06:00
조리원 입성 첫날 울었다. 의지했던 남편을 2주동안 만날 수 없고 낯선 곳에서 생애 처음 해보는 일을 혼자 해야 한다는 사실이 턱 밑까지 부담으로 다가왔다. 조리원 일정은 간단했다. 코로나 때문에 프로그램은 진행되지 않았다. 수유와 아침, 점심, 저녁식사. 마사지가 있는 날이 있고 없는 날이 있었다. 수시로 수유를 해야했고 아침과 저녁에 모자동실 시간이 있었다. 아침식사 뒤에는 생과일주스가 점심식사 뒤에는 두유를 곁들인 간식이 나왔다. 야식으로는 호박죽. 수유는 각자 방에서 했고 식사는 칸막이가 설치된 식당에서 다같이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겠는데 당시에는 이유를 몰라 답답했다. 배고프다고 울어대며 방으로 들어온 아이는 젖을 물리자마자 잠들어버렸다. 이번엔 제대로야, 양껏 먹여 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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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모퉁이다방 2021. 7. 20. 10:31
창밖이 뿌예지더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두 차례. 어제 오후의 일이다. 막 쏟아지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금새 환해졌다. 지금 나가서 동네 한바퀴를 산책하면 얼마나 좋을까. 비가 내려 공기는 서늘하거나 시원할테고 풀들은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을 거고 하늘도 깨끗할테고 초여름같은 선선한 바람이 살짝 불 수도 있을텐데. 책을 가지고 나가 걷다가 커피집이나 빵집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도 있을테고 일찍 문을 연 술집이나 편의점에 들러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이나 맥주 한 캔을 야외 테라스에서 의자 물기만 살짝 털어내고 마실 수 있을텐데. 돌아오는 길에 궁금했던 동네 작은 책방에 들러 책을 한 권 살 수 있을테고 좋아하는 꽃집에 들러 작은 꽃 한다발을 사가지고 올 수도 있을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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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거트모퉁이다방 2021. 7. 16. 11:13
요즘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요거트. 시판 요거트는 너무 달고 그리 달지 않은 건 비싸고 해서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예전에 그릭요거트를 만들어 본 적 있는데 면보 걸러내고 냉장고에 숙성시키는 시간도 있고 해서 매번 해 먹기는 번거로웠었다. 요거트 만드는 법을 다시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리고 꽤 맛있어서 계속 만들고 있다. 넉넉한 밀폐용기에 1리터 우유를 붓고 마시는 요구르트도 붓는다. 닥터캡슐로 해봤는데 잘되더라. 나무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준 뒤 예열해놓은 전자렌지 겸 오븐에 넣어둔다. 잠들기 전에 넣어두고 아침에 꺼낸다. 밀폐용기를 흔들어 내용물이 단단해진 걸 확인한 후 냉장고에 넣어둔다. 아침밥을 허겁지겁 먹고 아침수유를 하고 아기가 잠이 들면 밀폐용기를 꺼낸다. 손잡이가 없어 잘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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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페인모퉁이다방 2021. 7. 14. 16:15
점심으로 샌드위치 세트를 시켰다. 닭가슴살 샌드위치와 디카페인 커피. 출산하고 커피는 두 번째다. 조리원에서 원장 선생님이 작은 종이컵에 따라준 걸 아껴 마셨더랬다. 수유를 끝내고 잠든 아이를 보듬어 트림을 시키려 노력한 뒤 침대에 눕혔다. 밤낮을 구별하게 하려고 낮에는 아기침대가 거실에 있다. 문밖으로 옅게 부스럭 소리가 났고 연이어 노크 소리가 들렸다. 주문할 때 이렇게 남겼다. 아기가 있어 문앞에 두고 노크해주세요. 오늘은 커피가 간절했다. 샌드위치를 한 입 물고 그동안 참았던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창 밖을 보니 그제서야 구름이 보였다. 초록으로 물든 산 위에 짙고 풍성한 구름이 가득 차 있었다. 근사한 구름이었다. 여행지에서 이런 구름을 만났더라면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겠지 생각했다. 요즘 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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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할머니서재를쌓다 2021. 7. 8. 17:47
오늘 새벽에도 백수린을 읽었다. 이번엔 '중국인 할머니'였다. 환하고 둥그런 달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어제는 새벽 두시와 다섯시에 수유를 했다. 남편은 외근까지 한터라 피곤해 두번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고, 나는 두시에 수유를 하다 다리랑 팔이 저릿저릿했다. 전날 밤에도 다리가 저릿했는데 혈액순환이 잘 안되고 있었나보다. 족욕을 자주 해주라는 이모님 조언이 있어 수유를 끝내고 세탁실에 있는 아이보리색 세수대야를 가져와 뜨거운 물을 가득 담았다. 금방 식을까봐 뜨거운 물로 받았는데 발을 담그니 너무 뜨겁더라. 찬물을 조금 섞었다. 그사이 재워놓은 아이가 울어 방으로 들어가 조금 더 안아줬다. 이번에는 깨지 않고 잘 잤다. 다시 욕실로 돌아와 그새 식은 물에 뜨거운 물을 좀더 부어 뜨끈하게 만들었다. 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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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모퉁이다방 2021. 7. 6. 05:27
이번주 목요일이면 산후도우미 이모님의 도움도 끝난다. 처음 이모님이 오셨을 때 모든 게 서툴었고 3주 뒤에 혼자서 어찌하나 싶었는데 걱정할 때마다 이모님이 응원해주셨다. 산모님, 다 하실 수 있어요. 분명 다음주가 다르고 다다음주가 다를 거예요. 정말이었다. 1주차가 다르고, 2주차가 달랐다. 그리고 지금 3주차. 낮시간 동안 혼자서 할 수 있을 거라는 조금의 자신감이 몽글몽글 솟아오르고 있다. 지안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매일 얼굴이 변하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 3.04키로로 태어난 아기가 영유아1차검진 때 벌써 4.4키로. 또래보다 약간 빠르게 건강하게 성장 중이라고 했다. 막막하고 아득한 순간들이 있었다. 모유수유를 하러 처음으로 병원 수유실에 갔을 때. 수유 하는 방법을 누구도 알려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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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서재를쌓다 2021. 7. 3. 08:45
불금. 남편에게 약속이 있었고,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아기를 맡기고 잠들었다. 다행이 모유양이 많아 밤에 한 번을 제외하곤 모유를 먹이고 있다. 모유가 소화가 잘돼 자주 배고파하는 것 같아 밤에는 푹 자게 분유를 한 번 먹인다. 남편이 혼자 저녁시간을 즐긴 게 미안하다고 제때 분유를 먹이고 재운단다. 덕분에 3시 반까지 푹 잤다. 3시 반에 모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는데 트림은 나오지 않는 시간을 보내다 침대에 눕혔다. 새벽 4시가 지나고 아가도 남편도 자는데 이상하게 정신이 또렷해졌다. 육아만 온종일 하기보다 아기 자는 시간 틈틈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엄마도 살 수 있다고 낮에 이모님이 말씀하셨다. 마침 오늘부터 단편 하나씩을 읽어보자 결심을 했더랬다. 거실 소파에 앉아 낮에 읽다만 백수린 작가의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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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과 오산모퉁이다방 2021. 7. 2. 15:06
이천이십일년 오월 마지막 날에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는 건 한 순간이었다. 수술 두 시간 전에 병원에 갔고, 진료실에서 마지막 진료를 봤다. 분만실 침대에 누워 대기하고 있다 시간이 되자 수술실에 걸어 들어갔다. 수술대에 누워 이것저것 시키는 대로 했더니 주치의 선생님이 들어와 걱정말라고 손을 잡아 주셨다. 마취가 시작되었다. 아기가 나올 때까지 하반신 마취만 하는 줄 알았는데 물어볼 새도 없이 수면마취가 시작됐다. 눈을 떠보니 숨이 막혔다. 옆에 남편이 있어 여기가 어딘지 지금이 언제인지도 모른채 숨 막혀, 라고 말했다. 남편이 간호사를 불렀고 간호사가 호흡기를 떼어주고 마스크를 벗겨줬다. 수술이 끝났다고 했다. 회복실에 온지 몇시간이 지났다고. 아기는 잘 태어났다. 남편이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