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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모퉁이다방 2017. 2. 9. 23:12
그녀는 실리의 책상으로 다가가 첫번째 서랍에서 그것을 찾아냈다. 납작한 가죽 필통에 만년필이 들어 있었고 그게 언제나 거기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끈으로 묶인 가죽 필통을 열 때 허둥댔다. 실리의 만년필이 거기 있었고 그녀는 만족스러워 그것을 손에 쥐었다. 종이에 글을 적을 때는 만년필로. 그건 그녀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실리의 생각이었다. 실리는 자주 그렇게 말하곤 했고 평생 두 자루의 만년필을 가졌는데 어쩌면 그녀가 모르는 만년필을 한 자루쯤 더 가졌는지도 몰랐다. 누가 알겠나. 그녀는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누가 알겠나...... 그녀는 서랍에 든 잉크병을 쥐고 뚜껑을 비틀어보았다. 검푸른 가루가 떨어졌다. 잉크는 고체가 되어서 병을 뒤집어도 흐르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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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모퉁이다방 2017. 2. 6. 22:34
지난 금요일에는 엄마의 검진으로 아버지와 엄마가 올라오셨는데, 시간을 잘 보내다 마지막에 성질을 내버렸다. 내가 울먹였는데, 아버지는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마음이 내내 아팠다고 했다. 나는 아무 것도 듣지 않고, 읽지 않은 채 전철을 타고 집에 와 핸드폰을 꺼두고 자려고 노력했다. 초저녁부터 내내 누워 있었다. 아버지는 동생에게 내가 마음이 너무 약해서 걱정이라고 했단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는 날들이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하다 먹먹해졌다. 나는 나이를 어디로 먹고 있는 걸까. 언제쯤 굳건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버지는 '오늘 애썼다'로 시작하는 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 동네 커피집에 들러 아침에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오십 페이지의 책을 읽었고, 몇 정거장을 걸었다. 내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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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일들모퉁이다방 2017. 2. 5. 20:38
추워지면 몽글몽글 라떼가 진리. 요즘엔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그것이 탄생하게 된 역사가 제일 궁금하다.그리하여 맥주의 역사에 대해 읽어보았다. 동생이랑 평일 저녁 산낙지. 다이어트 한다고 산낙지만 주문했는데, 결국 낙지전도 추가 주문. 황작가 커피. 퇴근을 하고 셔틀버스 타러 내려갔는데, 차장님과 H씨가 서 있었다. 금령아, 브루어리 갈래? 그렇게 가게 된 플레이 그라운드.교통이 불편한 곳에 있는데도 사람들로 복작거렸다. 안주들도 맛있었다.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버스를 타고 제일 뒷자리에 앉아 쓸쓸한 음악을 듣는 일. 집에서 마시려고, 캔도 사왔다. 다이어트 시도는 계속 되었지만, 합정점에서 시옷의 책 득템. 책을 사고 단톡방에 이 사진을 올리니, 몇 시간 전에 하진이가 다녀갔다고.재고 두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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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모퉁이다방 2017. 2. 3. 08:10
장유에서 고성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면서 엄마가 누군가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고성에서 내려 보니 키가 아담하고 선하게 생긴 젊은 캄보디아 남자였다. 이전에 엄마는 이 캄보디아 남자와 같이 일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엄마는 숙모가 싸준 가방에서 커다란 사과 하나를 찾아 건넸다. 이거 집에 가서 묵어라. 남자는 괜찮다고 거절을 하다 엄마가 계속 사과를 내밀자 고맙다고 받아서 자기 가방에 넣었다. 터미널을 나가면서 엄마와 남자는 요즘에는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느냐 등의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사투리 가득한 엄마의 말을 남자는 용케 다 알아듣고 대답을 했다. 엄마는 남자와 헤어지자마자 말했다. 참 성실하고 착하다고. 여기서 일한 돈을 모아 집에 보낸다고. 언젠가 캄보디아 집 사진을 보여줬는데, 참 근사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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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동화음악을듣다 2017. 1. 17. 23:28
오늘 이 노래만 스무 번 넘게 들었다. 지금의 나는 완전히 이 앨범에 빠져들어, 듣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 가사와 음을 생각하고 있다. '평정심'에 빠져 있었는데, '언니'를 듣다 어느 순간 가슴이 저려왔다. 그러다 이번에는 '전래동화'이다. 드럼이 쿵쿵 소리를 내고 '고인들'이라는 가사가 시작되면 왠일인지 나는 고등학교 때 가슴 졸이며 보았던 소설책이 생각난다. 지금은 제목도 정확하게 기억나질 않는데, 그 책을 참 좋아했었다. 야한 부분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 장면만 나오면 방 구석에서 가슴을 쿵쾅거리며 책장을 넘겼다. 배경은 선사시대였다. 사냥을 하고, 무리를 지어 생활을 하던 시대. 이 노래를 들으면 이유 없이, 아주 넓은 들판 위에 고인돌이 드문드문 서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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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일들모퉁이다방 2017. 1. 15. 22:20
2016년은 내게는 좀 특별한 해여서 미뤄두었던 기록들을 남겨본다.2016년 10월의 일들. 하진이는 9월의 모임에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했다. 세심한 하진이. 언제나 옳은 치맥. 언제나 옳은 거품. 김연수의 문장을 읽는 가을. 서울 구석구석을 오래된 사람의 시선으로 산책하고 싶어졌다. "이제 서울 시내에서 답교할 다리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나는 명절이면 집집마다 수박들, 붕어등과 풍경을 내다걸고 부녀자들이 소원을 빌며 다리를 걸어다니는 광경을 그리워한다. 백 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우리가 가졌던 가장 아름다운 광경들이 모두 사라졌다. 내가 세태소설을 유난히 좋아하는 까닭은, 박태원의 천변풍경을 두고두고 읽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마트에서 구입한 가을. 상암의 저렴하고 맛난 커피집도 발견했다. 늘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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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맛서재를쌓다 2017. 1. 15. 21:11
예전부터 궁금했던 책이었는데, 지난 늦여름 노홍철의 책방에 가서 뭔가를 구입하기 위해 두리번거리다 발견했다. 벽면에 전시되어 있던 책 딱 한 권이었는데, 계산을 하려고 할 때 노홍철이 이 책을 왜 사느냐고 물었다. 궁금했던 책이라고 말했고, 자기는 이 책을 다 읽고나니 '그래서 어쩌라구?'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읽고나면 어떤 느낌인지 꼭 알려달라고도 했다. 책을 사고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버스 정류장에서 읽었는데, 그때의 빛에 담긴 표지의 빛깔이 참 좋았다. 참 이쁜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백하건데 나는 제목의 '염소'를 동물로 알았다. 수영장 그림이 있는데도 염소를 그 염소로 생각하지 못했다. 아쿠- 책을 다 읽고 나니 노홍철의 말이 이해가 됐다. 잔잔한 이야기에 미스테리한 결말이다. 여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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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티비를보다 2017. 1. 12. 23:24
선생님, 오랜만에 편지 드립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회사를 그만둔 후 전혀 예상도 못했던 가게를 시작하고 시간은 어느새 물 흐르듯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새로운 만남도 조금은 쓸쓸했던 헤어짐도 있었습니다. 오래전 몇 번이나 이 마을에서 벗어나려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태어난 후 줄곧 집에만 머물렀던 자신이 답답하고 화가 나서 풀죽어 있던 적도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랬던 저에게서 갑작스레 어머니가 떠나시며 내치듯 혼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살아왔던 장소에서 시작된 새로운 시간 가운데 저는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날 묶어두었던 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선생님, 저는 너무 진지하기만 했습니다. 이제부터 조금 불량해지렵니다.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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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서재쌓기기억의기억 2017. 1. 11. 13:06
베를린 일기.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남편의 아름다움. 시옷13월에 만나요. 침묵의 소리. 마음. 시옷 골목 바이 골목. 가고싶다 바르셀로나. 7박 8일 바르셀로나. 수학자의 아침.사랑한다면 스페인. 깊은 강.힘 빼기의 기술.사랑과 순례 : 바닷마을 다이어리 8.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 시옷 오후를 찾아요.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한밤중에 잼을 졸이다.애도 일기. 시옷 혼자서 완전하게. 밤의 피크닉.산다는 건 잘 먹는 것.20킬로그램의 삶.교토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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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씨모퉁이다방 2017. 1. 10. 23:01
두 명이 나갔고, 두 명이 들어왔다. 이번주로 야근이 끝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야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야근이 확정되는 오후가 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대로 괜찮을까. 그러다 퇴근할 무렵이 되면, 또 생각한다. 그래, 이대로도 괜찮겠지. 아직까지는. 월급을 받고, 좋아하는 책을 사 읽고, 좋아하는 영화를 사 보고, 좋아하는 맥주를 사 마시는 일. 어제까지는 최민석 작가의 를 읽었다. 올해 베를린에 갈 수 있을까. 2주 휴가 동안 베를린에 가 있는 상상을 한다. 에 포르투갈의 포르투 이야기가 나왔는데, 최민석 작가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은 곳이었다. 오늘 아침에는 새로 읽을 책을 골라야 했는데, 소설이었으면 했다. 맞다, 지난 달에 황정은의 신간을 사 놓았다. 출근길에 두 장 정도 읽었는데,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