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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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라이드모퉁이다방 2022. 1. 28. 23:16
남편이 성대 낭종제거수술을 받고 왔다. 수술 전에 긴장되지 않냐고 하면 전혀- 라고 말했던 사람인데, 전신마취가 기계호흡인 줄 몰랐다고 알았으면 엄청 쫄았을 거라고 띄어쓰기 발음이 어색한 음성앱으로 말했다. 1-2주는 말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전신마취는 원래 이렇게 머리가 띵한 거냐며 이상한 거 아니지? 라고 메모장에 써서 보여줬다. 나는 호흡을 길게 하고 누워서 쉬라고 했는데, 왠지 아이를 보는 나를 두고 방에 들어가 버리는 게 미안한지 소파에 누워 일어나질 않더라. 남편이 기진맥진해 소파에 누워있는 동안 나는 아이 이유식을 먹이고, 분유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입속을 닦아주고, 침독이 가득한 입가에 로션도 발라줬다. 이제 자기만 하면 되는데 오래 칭얼대더라. 힘든 감정이 울컥하고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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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모퉁이다방 2022. 1. 26. 00:40
저녁밥을 먹으며 남편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는데 평소 같으면 그리 생각하지 말아라로 시작하는 말을 분명히 했을텐데 오늘은 왠일인지 그러지 않고 묵묵히 들어줬다. 정말 고마웠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오늘은 정말 그런 사람이 내게 필요했거든. 오후에는 지난 일요일에 보지 못한 을 봤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나왔던 비포 시리즈 마지막편 의 한 장면에 손미나 작가가 말했다. 줄리 델피가 산 너머 지는 석양을 보고 아직 있다, 아직 있어, 졌다, 라고 읊조리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해는 졌지만 원래 그뒤부터 하늘은 더 아름다운 법이라고. 그러니 로 시작한 이들의 사랑은 변했다기보다 농익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그 표현이 너무 좋아 휴대폰 메모장을 켜놓고 메모를 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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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굴비모퉁이다방 2022. 1. 7. 13:41
지난주에는 몸과 마음이 피폐했다. 결국 남편에게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발악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밤에는 그 모습을 보인 걸 후회하지 않았으나 다음 날 바로 후회했다. 조금만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아무튼 그렇게 한 번 대대적으로 폭발을 하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그 뒤로 내가 한 건 열심히 요리를 한 것. 이상하게 그렇게 되었다. 냉장고에 있는 돼지고기와 고수를 꺼내 굴소스를 넣고 볶아봤다. 상암 양꼬치집의 좋아하는 메뉴를 최대한 간소화한 것. 밑반찬 하나에 김치 하나를 내어놓고 밥 한 그릇씩 뚝딱했다. 섭섭한 마음이 남아 있던 남편도 맛있다고 했다. 다음날 점심에는 베이컨을 꺼내 잘게 썰고 계란을 추가해 볶음밥을 만들었다. 지난주에 만들어둔 유자향 피클을 곁들여 먹었다. 간단한 요리였는데 맛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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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가는 길극장에가다 2022. 1. 5. 01:16
(스포일러가 있어요) 이라는 책을 식탁에 두고 야금야금 읽고 있다. 영화 속 와인을 마시는 장면들, 그 와인에 대한 정보 등에 대한 책인데 짤막한 글들이라 조금씩 읽기 좋다. 읽고 있으면 별로일 것 같아 보지 않았던 몇몇 영화가 보고 싶어진다. 은 그 중 한 편. 엘레노어 코폴라 감독의 실제 경험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주인공 앤이 유명 영화감독인 남편 마이클의 칸느 출장에 동행했다가 컨디션 난조로 먼저 파리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시작한다. 이때 마이클의 사업 동료인 중년의 프랑스 남자 자크가 앤을 파리에 데려다 주겠다고 자처한다. 칸느에서 파리까지 자동차로 7시간. 하루 종일 자동차 여행을 하게 될 거라고 짐작했지만, 여행은 그 이상으로 길어진다. 자크는 파리에 가려는 마음이 있는 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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