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기온신바시 거리를 걷다 발을 조금 삐었다. 길가에 앉아서 오늘 얼마나 걸었나 더듬어 봤더니 정말 쉴틈없이 많이 걸었다. 동생에게 이제 그만 걷자고 말했다. 내일 일정으로 계획했던 아라시야마도 가지 말자고 했다. 아침 일찍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교토라 숙소랑 멀기도 멀고 또 많이 걷는 길이었다. 내일은 그냥 한적하게 공원에 가서 초밥 도시락이나 먹으면서 보내다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기온은 옛 모습을 간직한 기념품집, 음식점, 골동품집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니 외국인들이 어느 건물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잔뜩 상기된 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얼 기다리는지 궁금해서 옆에서 함께 기다렸다. 기모노 차림의 정식 화장을 한 게이샤가 지나갔다. 외국인들이 뷰티풀을 연발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기온 거리 뒤쪽으로 기온신바시 거리가 있다. 가이드북에 '교토의 옛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전통 건축물 보존 지구'라고 설명되어 있는 곳. 작은 개천이 있고, 2층의 목조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고, 길을 걷는 내내 개울 소리가 들려왔다. 꽃이 남아 있는 나무들과 등이 켜지기 시작한 가게들 풍경을 보며 걸었다. 맥주 한 잔을 하려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결국 또 꼬치구이를 먹었다. 둘다 꼬치구이 이제 지겹다, 라고 말하며 맛있게 먹었다.

 

 

 

 

 

 

 

 

 

 

    난바행 밤차를 탔다. 급행 열차였지만, 천천히 가주길 바랬다. 마지막 밤이니까. 이상하게 같은 거리인데 가는 거리보다 돌아오는 거리는 짧게 느껴진다. 항상 그렇다. 고요하다. 열차 안도 고요하고, 내 마음도 고요하고. 동생이 아쉽다며 도톤보리에서 한 잔 더 하자고 했다. 들어간 술집은 한국 배우 누군가가 다녀간 곳이었는데 무척 비쌌다. 간단하게 먹고 나와 걷다 동생이 가고 싶어했지만 계속 찾지 못했던 안주 한 접시의 가격이 모두 같은 술집을 발견하고 신나서 들어갔는데, 거긴 우리나라의 준코 같은 곳이었다. 굉장히 시끄럽고 안주의 맛도 맥주의 맛도 그냥 그랬다. 메뉴에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보았던 츠쿠네가 있길래 시켜봤는데, 드라마 보면서 상상했던 그 맛은 아니었다. 피망이 익혀져 나와서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맛나게 먹던 드라마 느낌이 안 났다. 거기서 조금 더 마시고 들어와서 동생은 바로 쓰러져 자고, 나는 티비를 틀어놓고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드라마를 봤다. 어제 사놓은 마시지 못한 맥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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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 첫째날 두번째 이야기.

 

 

 

 

 

   커피집을 나서서 난바역으로 걷는데, 걷는 길이 금방 걸은 길 같기도 하고, 처음 보는 길 같기도 하다. 쭉 걷다보니 처음보는 길이었다. 난바역으로 가서 짐을 찾아야 하는데, 걷다보니 니뽄바시역에 도착. 난바역과 니뽄바시역은 한 정거장이고, 니뽄바시역에 숙소가 있다. 벌써부터 삭신이 쑤셔서 체크인하고 잠시 쉬다가 짐을 찾으러 가기로 했다. 숙소는 작고 오래된 비즈니스 호텔. 13층인데, 도톤보리 강이 내려다 보였다. 너무 피곤해 이 닦고 둘이 침대에 쓰러졌다. 잠깐만 누웠다 나가기로 했는데 동생이 잠들어 버렸다. 잠시 혼자 나가서 짐을 찾아올까 생각했다. 혼자 일본거리를 걸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나도 금새 잠들어버렸다는 사실. 한시간 반을 자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해가 지기 전에 난바역에 가서 짐을 찾아왔다. 

 

  

 

 

 

    도톤보리는 서울의 명동 같은 느낌이다. 쇼핑할 데도 많고, 먹을 데도 많다. 복작복작하다. 사람 많은 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도톤보리에서도 고즈넉한 공간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호젠지요코쵸. 복작복작한 도톤보리 안에 거짓말처럼 고즈넉한 골목길이다. 골목길에 조그마한 주점들과 식당들이 있다. 홍등이 빠알갛게 밝혀져 있는 이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다. 골목길 한가운데 호젠지라는 아주 조그마한 절이 있는데, 바로 앞의 누각에 초록색 이끼로 뒤덮인 불상같은 것이 있다. 사람들이 골목을 지나다 이 불상 앞에 줄을 서고 자기 차례가 되면 물을 끼얹고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커다란 향로가 있었다. 향내음새가 좋았다. 술집들 사이에 절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호젠지요코쵸의 술집들은 너무 비싸보였고, 조금 허름한 술집에는 일본 아저씨들이 꽉 차 있어 결국에는 도톤보리의 번화가로 나와 술집에 들어갔다. 남자 직원들은 다소 불친절했는데, 맥주를 마시니 금새 기분이 좋아졌다. 야심차게 준비한 말, 나마비루 구다사이. 여러 번 말했다. 동생은 하이볼을 이 가게에서 처음 시켰는데, 맥주는 배불러서 못 먹겠다며 한 잔만 마시고는 그 뒤로 계속 하이볼을 시켰다. 안주는 잘 모르겠어서 꼬치 세트를 시켰다. 옆에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아저씨가 있었다. 일본 드라마에 보면 일과를 마치고 혼자 바에서 병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아저씨, 딱 그런 아저씨였다. 하이볼과 꼬치를 먹고 있었는데, 안주를 하나 더 시켰다. 메뉴에 치즈가 있었는데, 아저씨의 안주가 꼭 치즈같았다. 그래서 우리도 그걸 시키려고 치즈데스까, 라고 용기내어 물었는데, 이에 모찌데쓰,란다. 아, 떡. 그런데 아저씨가 두 개 중 하나를 건네주신다. 괜찮다고 해도 먹어보란다. 그런데 정말 맛있었다. 우리 안주를 하나 권했는데, 괜찮다고 거절하신다. 이후 그 아저씨가 시키는 안주를 유심히 봤는데 다 맛있어 보였다. 가이드북에 '저 사람과 같은 것을 주세요'가 있었는데, 왠지 민망한 기분이 들어 써 보지 못했다.

 

 

 

 

 

 

    알딸딸한 기분에 헵파이브를 타는 것이 첫째 날의 마지막 목표였다. 햅파이브는 우메다 역에 있는데, 대형 쇼핑몰 옥상에 설치되어 있는 대관람차다. 오사카 야경을 멋지게 볼 수 있다고 해서 난바역에서 전철을 타고 우메다역으로 갔다. 우메다 역까지는 헤매지 않고 잘 갔는데 (일본 지하철이 은근히 복잡했다.) 역에서 나와 지도를 잘 못 봐 헤맸다. 전혀 다른 길에서 헤매다 편의점에서 나온 여자아이에게 길을 묻는데, 그 여자아이도 잘 몰라했다. 그러다 만난 스나야마 마사키 상. 유창한 한국말로 헵파이브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걸어가다 보니 꽤 먼 거리여서 마사키 상이 아니였으면, 엄청 헤맸을 거다. 사투리를 배우고 싶어 부산에서 1년동안 유학 생활을 한 마사키 상. 일본여행 처음이냐고 해서 동생이 언니는 한번 온 적이 있어요 하니까 어디 갔냐고 한다. 홋카이도요, 하니까 놀라면서 허허 웃는다. 왜요? 도쿄에 안 가구요? 다들 그러던데. 내가 도쿄는 서울이랑 똑같다고 해서요, 하니까 아, 하면서 또 한번 허허 웃는다. 맞아요. 한국의 어디어디를 가봤냐고 물으니 다 가봤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안 가본 데가 없단다. 데려다 줘서 고마운데 대접할 게 없어, 동생이 사진을 함께 찍어도 되냐고 했다. 그럼요. 사진을 찍고 이메일 주소를 받았다. 또박또박 바른 글자로 스나야마 마사키, 라고 적는다. 그는 왼손잡이. 헤어질 때 '잘 놀다 가이소' 사투리로 인사하고 손을 흔든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헵파이브가 무서웠다. 헵파이브 말고 더 큰 대관람차는 바닥이 투명하다는데, 나는 그 관람차 탔으면 기절했을 거다. 헵파이브에는 스피커가 있어, 거기에 핸드폰을 연결하고 가을방학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들었다. 멀리 고베까지 보인다고 가이드북에 나와있었는데, 무서워 내려다보지는 못하고 멀찍하게 밤하늘만 올려다봤다.

 

    일본 지하철은 왜 이름을 같게 만들어 놓았을까. 한큐 우메다 역에서 우메다 역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정말 엄청 걸은 첫 날. 어찌어찌하여 우메다 역을 찾고, 난바역에서 환승, 니뽄바시 역 도착. 계획을 많이 짜지 않아 동생 핸드폰 하나만 로밍해 갔는데, 로밍 안 해 갔음 큰일날 뻔 했다. 길 찾을 때 정말 유용했다. 숙소 앞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과 산토리 하이볼 한 캔, 라멘과 자가비 과자, 발에 붙이는 휴족시간을 사가지고 왔다. 씻고 휴족시간을 하나씩 장딴지에 붙였다. 동생은 바로 잠들었고, 나는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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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이번 여행을 가게 되었을까. 우리는 돈도 없었는데. 3월의 어느 날, 동생이 컴퓨터를 하다가 티몬에 오사카 여행 상품이 저렴하게 나왔는데 갈까 했다. 언젠가 동생이 전해들은, 사실 동생만 전해들은 건 아니지. 젊어서 여행은 빚을 내어서라도 가야한다는 말을 떠올렸고, 우리는 그럼 가볼까 했다. 티몬의 여행상품은 말만 2박3일이지, 온전한 2박3일 상품이 아니었다. 일단 결제해두고 다시 검색을 해보다 결국 하나투어 상품으로 결정. 자매가 둘다 게을러 중간에 가네 마네, 포기할까 말까 이야기가 많았다. 결국 오사카, 교토로 2박3일 봄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정. 진작에 가이드북을 사뒀지만, 몇번 들춰보지도 못했다. 다급해져서야 계획을 세웠지만, 사실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였다. 대신 테이크 웨더라는 어플을 받아두고 매일 오사카에서 올라오는 사진과 교토에서 올라오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 곳의 풍경을 상상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씻었다. 이번 여행에서 싸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리무진 버스를 코앞에서 놓치고 분위기 바로 냉랭. 4시 58분 버스를 놓쳤고, 5시 25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콜밴 택시가 한 사람의 손님을 더해 만원에 공항까지 가준다고 한다. 리무진 버스 가격이 만원이니, 망설임 없이 탔다. 공항에 오는 동안 해가 떴고, 기분이 좋아졌다. 던킨에서 커피랑 샌드위치를 먹고, 동생은 아무래도 돈을 적게 환전한 것 같다고 5만원을 더 환전했다. 출국심사하는데 사람들이 많아, 겨우 탑승시간에 맞췄다. 이스타항공. 오사카행. 8시 45분 비행기. 친구 덕분인지 비행기가 이륙할 때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비행기를 타다 죽게 되면, 내 죽음을 슬퍼할 사람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비행기가 구름 위에 떠 있다. 패스를 뭘 사야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금새 도착한 간사이 국제공항. 처음 계획은 둘째날도, 셋째날도 교토에 가는 거여서 그냥 간사이 스루 패스를 샀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에게 돈지랄했다고 뭐라 하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다니면서 무척 편했다. 비행기 안에서 생각했다. 아, 나 오늘 머리 안 감았구나. 이번 여행에서는 가을방학 노래를 자주 들었다. 4월 13일 토요일의 오사카. 새로 산 분홍색 셔츠와 자주 입는 남색 치마, 오래된 운동화를 신었다.

 

 

 

 

 

 

   서울보다 훨씬 남쪽인데도 바람이 차다. 전철을 타고 난바역까지 이동했다. 전철 안에서 보는 창밖의 일본 풍경은 정갈하고 평화롭다. 떠나는 날, 일본에 지진이 났다는데 뉴스를 보지 않았으면 여행 내내 모르고 있었을 거다. 난바역으로 가는 길. 최근에 새 책을 냈다는 작가의 이름과 같은 역을 지났다. 난카이역. 린쿠다운역. 이즈미사노역. 가이즈카역. 하루키역.

 

    난바역에서 걸어서 도톤보리에 도착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숙소가 도톤보리에서 무척 가까웠는데, 그걸 모르고 난바역 물품 보관함에 짐을 넣어두고 도톤보리까지 왔다. 점심을 먹으려고 미리 알아둔 돈까스집을 찾는데, 무척 헤맸다. 헤매다 도저히 모르겠어서 지나가는 모녀에게 길을 물어봤는데, 말은 통하지 않는데 너무 친절하고 오래 이야기를 해줘서 우리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결국 여기서 가까운 곳인데, 정확한 위치는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 한참을 헤매다 겨우 찾은 돈까스 집은 무척 비쌌다. 그래서 찜해둔 카레집에 갔는데, 옛날 경양식풍의 오래된 카레집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아늑하고 오래된 분위기에 친절한 직원들. 가이드북에 소고기맛이 장난이 아니라고 되어 있었는데, 정말 소고기가 입 안에서 스르르 녹았다. 둘다 배고파서 순식간에 한 그릇 뚝딱했다.

 

 

 

 

 

    카레집을 나와서는 돈까스집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찜해둔 커피집에 갔다. 50년도 넘은 커피집이라 했다. 일부러 바 자리에 앉았다. 나는 브랜드 커피를, 동생은 드립커피를 시켰다. 융드립을 하는 곳이었다. 아주 커다란 융에 따뜻한 물을 가득 따라서 향이 좋은 브랜드 커피를 내리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주 조그마한 잔에 액상크림이 함께 나왔다. 이번 여행에서 액상크림에 반해버렸다. 숙소에서 조식을 먹을 때도 액상크림을 타서 커피를 마셨다. 심지어 마지막 날엔 편의점에서 유씨씨 액상크림 한 봉지를 사가지고 왔다. 왠지 액상크림을 넣으면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달달해지는 느낌이다. 외국영화의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동생과 나는 바 자리에 앉아, 50년도 더 된 커피집의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야구광인 듯한 마스터, 직원이 커다란 융으로 브랜드 커피를 내리는 모습, 직접 반죽해서 두껍고 먹음직스런 핫케잌을 만들어내는 모습까지. (우리가 '방금' 카레를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오지 않았다면 분명 시켰을 정말 맛있어 보였던 핫케잌!) 모든 행동에 정성이 들어가 있었다. 출입문 쪽에 머리카락이 얼마 안 남은 아저씨가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평화로워 보였다. 동생이 시켜서 가이드북의 문장들을 조합해 한 문장을 완성했다. 샤신오 톳데 모이데스까. 직원이 하이, 라고 대답했다. 아, 맞는 문장이구나. 안심했고, 긴장해서 여러 번 연습해본 탓에, 이 문장을 완전히 외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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