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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일본의 맛서재를쌓다 2018. 6. 8. 22:13
진짜 일본은 어떤 모습일까? 이동하기는 편할까? 그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수정처럼 맑은 계곡과 콘크리트 숲,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정리된 정원, 눈 덮인 산, 고딕 로리타 패션의 소녀, 게이샤....... 이 모든 것이 혼재된 곳에 과연 유럽에서 온 호기심 많고 평범한 가족이 (환대를 받는 것은 고사하고) 비집고 들어갈 만한 작은 공간이라도 있을까?- 26쪽 자욱한 숯불 연기 속에서 아이들이 꼬챙이에 꽂힌 닭 내장을 기분 좋게 우적우적 씹어 먹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콘플레이크와 토스트로 시작한 하루가 이렇게 마무리되다니,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꿈이 아닌가 싶으면서 한편으로 이상하게 흐뭇하고 행복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일본에 연착륙했다. - 4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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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PD의 미식여행, 목포서재를쌓다 2018. 5. 23. 21:17
목포 여행 전에 읽은 책. 미식 여행을 하고 싶어서 였는데, 귀찮아서 숙소 근처만 다녔다. 비록 낙지도 먹지 못하고, 한정식 부럽지 않다는 백반도 먹지 못했지만, 그래도 맛난 음식들을 먹고 다녔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함양에서 먹은 오동통한 길거리 소라. 책에 소개된 음식 중에 하나는 먹었다. 목포에서 유명하다는 유달콩물. 어릴 땐 휴일 아침에 시장에서 얼음 동동 띄워진 콩물을 곧잘 사다 마셨는데. 콩국수를 시켜먹고, 콩물은 한 통 사가지고 와서 집에서 아껴 마셨다. 진하고 고소했다. 책은 여행을 앞두고 있어 나름 재미나게 읽었던 것 같다. 포스트잇 붙여둔 페이지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여행지에 가서 주로 보고 듣는다. 관광(觀光)이라는 한자어가 뜻하듯 어디 놀러간다는 것은 그곳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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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여행을가다 2018. 5. 22. 14:30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전주에 여러번 갔었다. 마당이 이쁜 한옥집에서 두 번 잤고, 오래됐지만 깔끔한 시내의 호텔에서 두 번 잤다. 이번에는 지은지 오십년도 넘은 시내의 호텔에서 잤는데, 여기에 여섯명이 한꺼번에 투숙할 수 있는 침대방이 있다고 했다. 심지어 저렴했다. 모과가 전날, 샤워용품과 수건이 있는지 물어봐서 직접 전화를 했다. 전화해보니 친절하기까지 했다. 샤워용품과 수건 모두 있는 걸 확인하고, 정말 그 방에서 여섯 명이서 잘 수 있는지 물어봤다. 다섯 명이 침대에서 자고, 요가 있어 한 명은 바닥에서 자면 된다고, 여섯 명이 충분히 투숙할 수 있는 방이라고 했다. 와, 정말 그런 방이 있다니. 제일 먼저 방에 도착한 건 모과와 나. 우리는 터미널에서 남부시장까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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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모퉁이다방 2018. 5. 18. 23:47
어느 날은, 시골에 가서 소 키우며 살래? 라고 물었다. 나는 잡아먹힐 소를 어떻게 애지중지 키우냐며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시골에 가 소 키우고 밭 가꾸며 사는 조용한 삶에 대해서 상상해봤다. 일찍 일어나 몸 움직여 일하고, 오후부터는 내 삶이 있는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 오후 볕이 있고, 달콤한 낮잠도 있고, 느긋한 저녁 시간이 있는 삶. 물론 그렇게 달달한 삶만이 아니겠지만, 그 속에 놓여 있는 나를 상상해봤다. 어느 날은, 친구가 미국으로 이직을 한다며, 영어 잘해? 라고 물었다. 나는 다 그만두고 미국에 가는 상상을 해본다. 빠듯하게 일해서 집렌트비 내고, 생활비 내고, 술집에도 가지 않고, 저녁에 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삶일 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 외롭겠지? 외로울 거야.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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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맛집산책서재를쌓다 2018. 5. 10. 23:14
히라마츠 요코의 가 무척 좋아서 새 책이 출간되면 때맞춰 읽어야지 다짐했었다. 신간 알리미 신청을 안 해놔서 몰랐는데, 이라는 촌스러운 제목의 책이 히라마트 요코의 새 책이라는 걸 알고 바로 주문했다. 그림이 조금 나오는데, 의 다니구치 지로가 그렸다. 히라마츠 요코가 출판사 편집자 Y군과 함께 맛집을 찾아가 음식을 먹는 내용인데, 흠. 뭐랄까 뒤로 갈수록 기사 느낌이랄까. 딱딱한 글도 있고, 잘 읽히지 않기도 했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나보다. 그래도 다시 일본을 가게 된다면 방문하고 싶은 가게가 몇 생겼다. 중고서점에 팔기 전에 적어둬야지. 그나저나 나는 '비어홀'이라는 단어가 왜 이렇게 좋을까. 비어홀. 듣기만 해도 넓직한 곳에서 왁자지껄하게, 삼삼오오 커다랗고 튼튼한 맥주잔을 부딪히는 풍경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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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서재를쌓다 2018. 5. 8. 20:49
망원의 벨로주에서 친구와 나란히 본 정밀아 공연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곡은 '심술꽃잎'이다. 정밀아는 노래를 부르기 전에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이야기했다. 집안에 사정이 있어 형제 중 자신만 잠시 시골 할머니집에 맡겨졌는데, 그때 서럽고 슬펐던 것이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생각이 났다고 한다. 이 아이를 잘 달래서 노래로 만들어 잘 보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심술꽃잎'은 그렇게 만든 노래라고 했다. 노래 가사에 나오는 큰 나무, 풀잎, 바람 모두 실제의 것이니, 노래를 들을 때 그것들을 직접 눈앞에 그려보라고 했다. 노동절에는 혼자 광화문에 가 와인영화를 봤다. . 와인 영화라고만 생각했는데, 마지막까지 다 보니 아버지와의 어긋난 관계로 집을 떠나 이곳 저곳을 떠돌던 주인공이 집에 돌아와 돌아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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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모퉁이다방 2018. 4. 25. 21:32
월요일 저녁에는 소윤이에게 전화가 왔다. 요가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고 했다. 집까지 30분 정도 걸린다며, 생각이 나 전화를 했다고 했다. 서로 별일이 없는지 안부를 물었고, 최근의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셔틀을 타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니까 어둠이 가볍게 깔린 그 시간의 시내 버스 풍경을 근래에 떠올려 본 적이 없는데, 소윤이 덕분에 그려 봤다. 소도시의 한적한 저녁 버스. 창밖으로 펼쳐지는 느긋한 풍경.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 있는 버스 좌석. 운동을 끝내고 봄바람에 가만히 내 생각이 났을 아이. 그렇게 조곤조곤 마음으로 이어진 서울과 전주. 소윤이는 버스를 잘못 탔다고, 내려서 다시 잘 탔다고 했다. 서로 월요일 하루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고 통화를 끝냈는데, 마음이 고요하고 따스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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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서재를쌓다 2018. 4. 10. 22:16
가 무척 좋아서 기대했는데, 흠. 이 작가의 소설을 두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아마도 꽤 오랫동안 베스트는 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 소개에 의하면, "마흔여덟살, 이혼 후 다시 독신이 된 남자 주인공이 새 동네, 새 집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이야기. 내내 동경하던 단독주택에서의 우아한 삶, 그리고 옛 연인과의 오랜만의 해후."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늙은 뒤에 혼자 혹은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모두가 일찍 세상을 뜨지 않는 한, 언젠가는 늙으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노년의 삶일까, 하는 생각. 어쨌든 소설 속 주인공처럼, 주인공이 세 들어 사는 주인집 할머니처럼, 우아하고 여유있게 살지는 못할 거다. 주인공의 여자친구처럼 병이 들었을 때 헌신적인 자식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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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여행을가다 2018. 4. 4. 21:47
주문진에 다녀와서 대게와 홍게보다 더 생각이 났던 건, 파래전이었다. 심심하게 생긴 전이 기본반찬으로 나왔는데, 무심히 먹다 바삭한 것이 너무 맛나 사장님께 무슨 전이냐고 물어봤다. 츤데레 스타일의 사장님이 말씀하시길, 파래전이래요. 파래로 전도 만드는 구나. 맛나게 먹고 한 장 더 달라고 했다. 두 장째 먹는 데도 맛있더라. 주문진에서 하룻밤 자고 인천으로 왔는데, 인천의 해물찜 식당 티비에서 파래전 부치는 장면이 나왔다. 돌아와서 파래전 만드는 법을 검색해봤다. 별 게 없었다. 파래를 씻어서 다른 재료들과 섞어 전을 부치면 됐다. 인터넷 속 파래전의 재료들은 화려했는데, 주문진에서 먹은 건 파래와 옥수수 딱 두 가지만 들어갔다. 몇 주 뒤에 만나서 무언가를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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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갑니다서재를쌓다 2018. 4. 2. 22:47
'잘'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난해 수술을 하면서 알았다. 수술을 하기 전에 몸을 가볍게 한다고 덜 먹고, 하기 직전에 몸 속의 것들을 모두 빼내고 금식을 하고, 입원을 하면서 먹은 푸짐하고 건강했던 세끼 병원밥, 수술 후에 시간을 들여 챙겨먹은 단백질과 채소와 과일들, 그리고 한동안의 금주, 쉴새 없이 마셔댔던 물과 차. 지금 또 다른 의미로 '잘' 먹고 있으면서 그때 내가 얼마나 건강하고 가벼웠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 그래서 이번주부터 조금씩 그날들로 돌아가려고 걷고, 건강한 저녁을 가볍게 챙겨먹었다. 는 병규가 정한 시옷의 책인데, 모임이 미뤄지고 늦어진 탓에 한겨울에 읽었던 책을 저번주에서야 모임을 가졌다. (손꼽아 기다렸지만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나 ㅠ) 병규가 이 책을 한다고 했을 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