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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잘 지내고 있을까?모퉁이다방 2007. 7. 3. 19:17
여름, 겨울의 버스정류장을 생각하다. 스물 한 살의 늦가을이였나, 초겨울이였나. 그 사람을 만났다. 울퉁불퉁한 골격에 어울리지 않게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웃어대던 그 사람. 이제는 성이 조씨였나, 이씨였나 기억이 희미한 그 사람. 한 가지 또렷한 기억은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그 사람의 뒷 모습이다. 담배를 피웠던 그 사람은 제법 쌀쌀한 버스정류장에 서서는 자꾸만 타야할 버스를 그냥 보냈다. 한 대를 보내고, 두 대를 보내고, 세 대를 보냈을 때, 피우던 담배를 발 끝으로 껐다. 금방 차를 마셨으면서 한번 더 커피숍에 들어가자고 했다. 따뜻한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시킨 그 사람 손이 떨렸다. 찻잔을 잡은 그 커다란 손이 덜덜덜 떨렸다. 담배를 한 대쯤 더 피웠던 거 같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말했다. 그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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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웨잇 - 노르웨이 어디쯤에 있는 우리들 이야기서재를쌓다 2007. 7. 3. 02:51
헤이, 웨잇... 제이슨 지음/새만화책 조심하세요.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당신의 마음에 상처를 줄지도 모르니... -딜런 호록스 을 만나게 된 건 순전히 김영하씨 때문이예요. 어디선가 김영하씨가 이 책을 읽고 너무 좋아서 한 권 더 사서 이우일씨에게 선물하려고 만난 자리에, 이우일씨도 이 책을 가지고 나왔더라는. 얼마나 좋은 만화책이길래 서로에게 선물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까 궁금해서 냉큼 주문을 했어요. 그리고 저도 세 권을 더 사서 친구들에게 선물했어요. 이 책은 소중한 사람에게 권해주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로 제 생애 최고의 만화책이예요. 노르웨이 어디쯤에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예요. 때로는 행복했고, 때로는 꿈이 있었고, 때로는 용기 있었던. 때로는 무모했고, 때로는 무료했고, 때로는 용기 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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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카페의 노래 - 사랑, 등을 돌리지 말아요서재를쌓다 2007. 7. 3. 02:45
슬픈 카페의 노래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열림원 스무살 갓 지났을 때 내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지금에 와서야 사랑이라고까지 할 수 없었던 감정이였다고 말하지만, 당시 내 가슴은 요동쳤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바짝 다가와 내 마음을 온통 흔들어놓던 그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선을 긋고 절대 넘어오지 말라하고 뒤돌아섰다. 나는 '왜 사람들은 항상 등만 바라보는 걸까? 마주 보면 좋을텐데' 라고 말했고, 그 아이는 등을 더욱 바짝 세운 채 뒤돌아서 갔다. 슬픈 카페의 노래에는 서로의 등만 보는 사랑들이 있다. 아득하고 무너질 것 같은 등을 마주하고 사랑한다 말하는, 삼각관계라고 표현해버리기에는 너무나 깊은 사랑. 결코 내 앞의 그 사람이 뒤돌아서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 사랑, 곧 성큼성큼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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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사랑 - 몸이 기억하는 사랑극장에가다 2007. 7. 1. 02:14
니가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가끔 익숙한 냄새가 날 때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럴때마다 조금씩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을 닮은 사람을 본다거나, 우리가 함께 같던 장소에서보다 그 순간에 느껴지는 추억은 뭐랄까 좀 더 진하다. 좀 더 깊다. 그럴때는 정말 그 사람이 보고싶어진다. 익숙한 느낌, 익숙한 체취, 익숙한 시간. 두번째 사랑은 몸이 기억하는 사랑이다. 이야기라인은 진부하고 신파적인데, 그것을 담아내는 감성의 장면들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아이를 간절하게 가지길 원하는 소피와 돈이 필요해서 비즈니스 차원의 관계를 맺기 시작하던 지하, 두 남녀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는 단순한 스토리에 투영되는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들. 제일 좋았던 건 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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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pgirl극장에가다 2007. 6. 26. 20:15
케이블에서 쇼핑걸을 만났다. 원제가 Shopgirl인데 왜 쇼핑걸로 개봉했는지 모를 정도로 제목이랑은 정말 어울리지 않은 이야기다. 가끔 채널 돌리다 보게 되는 케이블 영화 중에서 괜찮은 것들이 있다. 그냥 한번 볼까, 생각했다가 결국엔 마음이 찡해져서 크레딧까지 끝까지 보게 된다. 샵걸도 그랬다. 마지막에 나오던 대사들, 클레어 데인즈와 스티븐 마틴의 표정. 사랑의 감정들에 대한 잔잔하고 소소한 건조하면서 꼼꼼한 이야기였다. Some nights alone. he thinks of her. And some nights alone. she thinks of him. Some nights these thoughts occur at the same moment. "Just so you know, I am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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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 - 깊은 밤, 서머싯 몸서재를쌓다 2007. 6. 9. 16:51
인생의 베일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민음사 어느날 새벽에 잠이 안 와 뒤척거리다 서머싯 몸의 라는 단편을 읽었습니다. 단숨에 단편을 다 읽고나서 멍하니 잠을 이루지 못한 기억기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그리도 아름답고 허망한 묘사라니. 그리고 서머싯 몸의 소설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와 이번 밖에 읽어보질 못했지만요. 아무튼 많은 기대를 안고 책을 읽었습니다. 꽤 두꺼웠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잘 읽혔습니다. 그리고 이번 소설 역시 좋았습니다. 저는 서머싯 몸이 이야기하는 '열정적 사랑이 시간과 명예 앞에서는 언젠가는 차갑게 식어버리고 만다'는 식의 태도가 마음에 듭니다. 어떤 사랑이든 열정적인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는 저의 생각과 맞기 때문인 거 같아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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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예감 - 초여름의 시원한 바람같은서재를쌓다 2007. 6. 9. 16:50
슬픈 예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민음사 결국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집을 떠났던 야요이도, 스무살의 나 자신도. 은 열아홉살의 야요이의 이야기이다. 표면적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그 나이가 늘상 그렇듯 수많은 내 안의 갈등을 겪고 결국엔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말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처음이다. 언젠가 읽어봐야지 생각만 했었는데, 결국 제일 처음 읽게된 그녀의 소설이 이다. 살펴보니 이 소설이 바나나의 첫 장편 소설을 다듬어 다시 재출간한 것이라는데, 이를테면 내가 그녀의 첫 장편작부터 읽으려고 다른 작품들을 미뤄놓은 꼴이 되어버렸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녘에 읽기 시작했다가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일본 소설 특유의 건조한 문체에 순정 만화같은 스토리에 아기자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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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가득한 '판타스틱'의 세계서재를쌓다 2007. 6. 8. 20:26
Fantastique 판타스틱 2007.6 판타스틱 편집부 엮음/페이퍼하우스(월간지) 지난 달에 장르문화잡지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판타스틱'.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서 창간호를 구입했는데 꽤 괜찮아서 이번달도 샀는데, 더 환상적이다. 기발한 상상력 속의 글과 그림들을 보며, 나는 왜 이런 생각들 못하는거야,라며 머리를 탁 내려쳤다. 내 머릿속에도 버튼 하나를 돌리면 작동되는 상상력의 나래, 따위라는 게 있지 않을까? 막 이러고 있다. 우선, 커트 보네거트 특집. 사실 커트 보네거트 소설을 한 편도 읽지 못했는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꼭 읽은 느낌이다. 박찬욱 감독이 제5도살장을 좋아한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5권의 책이 번역되어있다는데, 차례차례 다 읽어버려야지. 그리고 박형서. 벌써 두 편의 단편집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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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 그리고 이어지는 사진들서재를쌓다 2007. 6. 8. 19:30
김영하의 여행자 - 하이델베르크 김영하 지음/아트북스 중학교때 좋아하던 만화책이 있었습니다. 이은혜의 점프트리 에이플러스, 말도 안되는 로망들을 제게 안겨주었죠. 여중을 다니고 있던 제게 남녀공학의 로망을, 오빠가 없던 제게 다정하고 자상한 오빠에 대한 로망을, 짝사랑따위도 하고 있지 않았던 제게 두 멋진 남자선배의 동시다발적인 사랑을 받는 로망을. 새 단행본이 나오는 날이면 한걸음에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사와서는 제 방문을 살포시 잠그고, 가장 좋아하는 음악들을 녹음해놓은 테잎을 방 안 가득 틀어놓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장 한장 아껴 읽으면서 느꼈던 두근거림, 방 안 공기의 흐름, 흘러나오던 음악의 촉감. 무슨 음악이였는지, 무슨 장면때문인지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날의 제 방 풍경은 지금도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