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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 디 에어 - 기린님, 나는 괜찮아요 2 2010.03.27
  2. 20세기 소년의 청춘의 빛 6 2008.07.09
      



 
    어떤 외로움은 외롭다는 느낌보다, 말이 먼저 온다. 내가 봤다. 그런 사람. 그이는 자신이 전혀 외롭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혼자가 편하다고 했다. 집을 평생 사지 않겠다 했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 외롭다고 말했다. 실은 외로워요. 그러자 그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혼자가 편한 사람이었는데, 평생 집을 사지 않겠다, 결혼따위 절대 하지 않겠다 결심했던 사람이었는데. 그는 그렇게 외로운 사람이 되었다. 외로운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표정은 꼭 십대에 실연 당한 소년의 것과 같았다. 그래서 나는 손을 뻗어 스크린에 대고 그 뺨을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 라이언,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당신은 외롭지 않은 사람이었잖아. 어떤 외로움은 말이 먼저 온다.

    영화는 결국 '쿨'하지 않은 결말로 끝났다. 인간은 모두 외로운 섬이지만,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다? 그따위의 결말이다. 베라 파미가가 그렇게 뻔뻔스런 엑스라니. 나는 광분했지. 영화의 마지막 장면, 라이언은 언젠가 나탈리가 말했던 계획을 실현하려고 한다. 공항의 전광판 앞에 선다. 출발하고 떠나는 비행기들을 올려다본다. 그 비행기들이 도착할 도시들의 이름을 올려다본다. 곧 그는 그 중 한 곳을 정할 거다. 그리고 무작정 떠날 거다.  

*


기린
                                                      송찬호


    길고 높다란 기린의 머리 위에 그 옛날 산상 호수의 흔적이 있다 그때 누가 그 목마른 바가지를 거기다 올려놓았을까 그때 그 설교 시대에 조개들은 어떻게 그 호수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

    별을 헤는 밤, 한때 우리는 저 기린의 긴 목을 별을 따는 장대로 사용하였다 기린의 머리에 긁힌 별들이 아아아아- 노래하며 유성처럼 흘러가던 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적 웃자람을 막기 위해 어른들이 해바라기 머리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을 때, 나는 그걸 내리기 위해 해바라기 대궁을 오르다 몇 번씩 떨어졌느니, 가파른 기린의 등에 매달려 진드기를 잡아먹고 사는 아프리카 노랑부리 할미새의 비애를 이제야 알겠으니.

    언제 한번 궤도열차 타고 아득히 기린의 목을 올라 고원을 걸어보았으면. 멀리 야구장에서 홈런볼이 날아오면 그걸 주워다 아이에게 갖다 주었으면, 걷고 걷다가 기린의 뿔을 닮은 하늘나리 한 가지 꺽어올 수 있었으면

    기린이 내게 다가와, 언제 동물원이 쉬는 날 야외로 나가 풀밭의 식사를 하자 한다 하지만 오늘은 머리에 고깔모자 쓰고 주렁주렁 목에 풍선 달고 어린이날 재롱 잔치에 정신없이 바쁘단다 아이들 부르는 소리에 다시 겅중겅중 뛰어가는 저 우스꽝스런 기린의 모습을 보아라 최후의 詩의 족장을 보아라

  
 *


     그 순간, 커다란 목을 지닌 기린이 겅중겅중 나타난다. 라이언 빙햄씨, 함께 가요. 기린은 자그만 배낭을 메고 있다. 배낭 안엔 아무 것도 없다. 기린은 아무 것도 필요없다. 라이언은 기린을 올려다본다. 목이 아프다. 기린이 씨익 웃는다. 아프리카 노랑부리 할미새의 비애를 알겠으니. 라이언과 기린은 함께 비행기를 탄다. 아무 것도 없는 기린은 검색대에서도 금방이다. 아시아인 뒤에 설 필요도 없다. 기린이 배정받은 좌석에 가 보니, 비행기 천장이 자그마하게 뚫려 있다. 기린은 자리에 앉고 고개를 쓰윽 비행기 천장 밖으로 내민다. 긴 목과 작은 얼굴이 하늘로 솟는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밤하늘을 난다. 기린의 머리는 별을 훓는다. 라이언은 옆 자리에 앉아 별이 긁히는 소리를 듣는다. 아아아아아-

    어디쯤일까. 세렝게티 초원 근처쯤 될까. 따듯한 풀밭이다. 라이언과 기린은 함께 식사를 한다. 기린은 나무 위의 잎을 잘근잘근 씹어먹고, 라이언은 그 모습을 보고 허허 웃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풀밭 위로 노을이 지자, 라이언은 슬퍼진다. 외로워진다. 이번에도 먼저 말해버린다. 기린님, 저 지금 초큼 외로워요. 금세 실연당한 십대 소년의 표정이 된다. 기린은 조지 클루니의 목에 풍선을 달아준다. 머리에 고깔을 씌어준다.

    그렇게 노을이 진다. 기린의 목처럼 하늘에 별이 쓰윽 떠오르고. 
   
     나는 아직,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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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봐요. 이 노래는 흔한 사랑노래, 로 시작하는 20세기 소년의 '사랑노래'를 듣다가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고, 하루종일 엉엉 소리내어 울었던 그날들이 생각났다. 아주 오랜만에. 밤새 잠을 한 톨도 자지 못하고 친구의 꼭대기 삼각형 방으로 올라가 꾸역꾸역 울음을 삼키며 이야기를 시작했던 아침. 그 때 친구의 표정. 이불을 덮고 엉엉 울고 있는 내 방 문을 친구가 열어보곤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닫았던 밤. 그 날의 실루엣. 이상하다. 이건 들어봐요. 이 노래는 흔한 사랑노래, 로 시작하는 아주 예쁜 멜로디의 예쁜 가사인데. 나는 이제 그 날을 예쁘게 추억하게 된 걸까.

 이 앨범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강(江)'. 특히 이 부분. 저 강물은 흘러가네. 그댄 잊혀지네. 미운 그리운 마음은 덧없이 사라지네. 이 부분이다. 듣고 있으면 오전의 강가에 앉아 조용히 흘러가는 강물 위에 손바닥을 슬쩍 대어보고 있는 풍경이 가만히 떠오른다. 하회마을에는 우물이 없대. 하회마을이 한 눈에 보이는 지도 앞에서 누군가 말해줬다. 하회마을이 이렇게 보면 뱃머리처럼 생겼잖아. 배에 구멍을 뚫으면 어떻게 되겠어. 가라앉아버릴까봐 하회마을에는 우물이 없대. 확실하다. 나는 그 날을 아주 예쁘게 추억하게 된 거다.

이 노래들. 20세기 소년. 만화는 아직 못 봤지만, 왜 나는 20세기 소년하면 우주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20세기라는데도. 하루종일 듣고 있는데. 좋다. 정말. 모래가 있는 강가에 내가 앉아 있는 듯. 강물 흘러가는 소리만 낮게 들리는 듯. 따스한 태양의 기운으로 강물이 끝도 없이 반짝이는 듯. 그 풍경 속에서 이 노래들과 함께 자꾸 모래 속으로 가라 앉는 듯. 기분 좋은 그 날의 기억을 자꾸 들춰낸다. 분명 예뻤던 날.




도서관에서 하진의 '벚나무 뒤의 집'을 읽고 이런 시를 읽었다.


초원의 빛
송찬호


정한아의 '휴일의 음악'을 읽고 다시 한번 시를 읽었다.
복사기로 가서 1540원이 남은 복사카드를 넣고 164페이지를 복사하고 도서관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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