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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인 오버 미 - 우리도 그들처럼
    극장에가다 2008. 9. 10. 22:46
      축구때문에 한 시간 앞당긴 MBC 9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저녁을 굶은채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는데 이런 뉴스가 나왔다. 카메라가 포착한 돌고래 집단 장례의식 같은 거다. 빛나게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돌고래 녀석들이 떼지어 화면에 나타났다. 한 녀석이 새하얀 배를 보였다. 죽어가고 있었다. 다른 녀석들이 죽어가는 녀석을 살리기 위해 힘을 모아 바다 속으로 가라 앉으려는 녀석을 바다 위로 띄우고 있었다. 새하얀 배와 회색의 등이 무리지어 바다 위에서 반짝거렸다. 그러기를 1시간. 결국 녀석이 죽었다. 녀석은 가라 앉았다. 바다 속 깊이깊이. 바다 속이 얼마나 깊은지 나는 모르니까, 녀석이 얼마만큼 깊이 가라 앉았는지 알지 못한다. 아마도 아주 깊이, 아주 천천히, 한 마리의 매끄러운 돌처럼 사뿐히 바다 끝에 닿았을 것이다. 죽은 녀석의 친구들이, 그러니까 녀석을 살리려고 1시간 넘게 꼬리를 흔들었던 친구들이 녀석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러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뉴스의 마지막, 바다를 비추는 화면 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이런 감동적인 뉴스를 보았다. 역시 뉴스에서 감동을 주는 건 이런 의리있는 동물들 뿐인가 보다. 다시 바닥에 대자로 뻗으며 변비로 고생하는 퉁퉁한 내 배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자연스레 떠오른 이 영화. 얼마 전에 <레인 오버 미>를 봤다. 아담 샌들러와 내가 좋아하는 돈 치들이 나오는 영화. 작년 가을에 개봉할 때 극장에서 꼭 보고 싶었는데 1년이 지난 이제서야 봤다. 이 영화에는 9시 뉴스의 돌고래를 닮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새하얀 배를 보이는 녀석이 아담 샌들러다. 아담 샌들러는 죽어가고 있다. 비행기 사고로 행복했던 가족 모두를 잃은 후로 그는 과거따위 기억하고 싶지 않다며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잊고 산다. 그런 그의 앞에 회색의 등으로 그를 열심히 바다 위로 띄우는 돈 치들이 나타난다. 그는 아담 샌들러의 오래 전 친구이자, 한 때 가장 행복했으나 지금 이 땅 위에는 없는 자신의 가족에 대한 기억이 없는 친구다. 그러니 그에겐 안성맞춤인 친구. 아담 샌들러는 지금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싶은데, 돈 치들과 함께 있으며 그럴 수 있다. 다른 성가신 친구들과는 다르게. 

       어쩌면 세상에는 이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픈 사람과 그 상처를 낫게 해 주고 싶은 사람. 지금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과 지금 너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 아프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과 힘껏 아파야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 돈 치들이 회색 등에 아담 샌들러를 태우고 바다 위에 있기를 여러 날. 뉴스 속 죽은 녀석과는 달리 아담 샌들러는 숨을 쉬기 시작한다. 매끄럽고 탐스러운 회색의 피부가 빛나기 시작한다. 모두가 '함께'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담 샌들러가 과거따위 모두 잊고 자폐 생활을 시작한 것도 한 때 '함께'였던 가족을 잃었기 때문이고, 다시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민 것도 그를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영화가 어찌 따뜻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았던 장면은 오프닝 씬. Graham Nash의 'Simple Man'이 흐르면서 아담 샌들러는 세상의 소리를 다 막아주는 아주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한 사람 타기에 딱 적당한 고패드 위에 올라탄 채 텅 빈 도로 위를 달린다. 그가 혼자서 그렇게 달리는 동안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아침이 오고, 밤이 깊어진다. 그 수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가 하는 일은 단지 헤드폰을 쓰고 달리는 것. 그게 전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었다고. 혼자서 텅빈 도로 위를 낮이며 밤이며 달린 시간들이 있었기에, 돈 치들을 만났고, 미친듯이 화를 냈고, 그래서 다시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볼만 하게 되었다고. 나는 이 '간단한' 오프닝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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