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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년이 되는, 군인이 되는 너에게
    모퉁이다방 2008. 5. 20. 01:01
       내일, 아니 12시가 지났으니 오늘 사촌 동생이 군대에 가요. 가기 전에 같이 밥이라도 먹었어야 했는데. 미안한 마음에 사촌동생 홈피 방명록에 가서 몇 자 끄적거렸는데, 밤에 전화가 왔어요. 밖으로 나와서 우두커니 입대 전 마지막 전화들을 돌리고 있는 모양이예요. 막내 동생에게 걸려온 전화니 막내 동생이 먼저 받고, 다음에 둘째 동생이 받고, 마지막으로 제가 받았죠. 예의 그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무뚝뚝한 음성으로 그러길 바랄 뿐이지, 그러네요. 이제 군생활이 2년도 안 된다며? 그러니 시간이 금방 갈거다, 그러니깐 그러길 바랄 뿐이지, 그러네요.

       저희는 세 자매니 말할 것도 없고, 친가 친척들 중에서는 제일 먼저 군대를 가는 녀석이예요.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타고, 무뚝뚝해서, 말을 시켜도 몇 마디를 안 해요. 그러더니 대학 들어가고, 같이 술이라도 한 잔 마시는 날에는 열 마디 정도 하더라구요. 그게 기특해서 어이쿠, 하면서 놀려대죠. 다섯 여자가. 친척 누나 다섯 명이 맨날 그렇게 떼거리로 달려드니 무서웠을 거예요. 여자친구 생겼다 그럼 상세하게 보고하라며 꼬치꼬치 캐묵는 통에 징글징글했을 거예요. 암요. 저희들은 또 기 센 경상도 여자들이거든요.
     
       그럽니다. 저보다 한 살 아래인 사촌동생에게 금방 전화를 했는데 그러더라구요. 사촌동생 제대하면 자기는 서른이고, 나는 서른 하나라고. 아, 무슨. 성년이 된 사촌동생이 건 입대 전 마지막 전화에서까지 제 나이 이야기를 들을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뭐. 저는 저의 나이에 만족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지금까지 시간이 흘러왔던 속도 그대로만 시간이 가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눈 깜짝하면 서른, 눈 비비니 서른 하나, 이런 식만 아니라면 좋아요. 그래서 옳거니, 그러고 말았죠.

       밥 못 사 준 거 미안하다고 누나가 면회는 꼭 한 번 이상 갈게, 그러니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그럽니다. 그래서 마음에는 있는 소린데 실천을 못 할 뿐이다, 그러니 두 번 정확하게 껄껄거리더니 그렇나, 하네요. 편지도 자주 써 줄께, 하니 기대 안 한다, 합니다. 네. 저는 나쁜 사촌 누나인 거죠. 맨날 말로만 한다, 한다 하는. 쭈빗쭈빗거리며 잘 갔다온나, 알겠다, 그러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 그 조그마 했던 버섯돌이 머리의, 그래서 우리 다섯 누나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꼬맹이가 성년이 되어 군대를 가는군요. 사촌동생의 미니홈피 다이어리에는 이제 성년이 되었으니 어른스러워지자며, 누구에게 상처를 준다거나, 후회할 짓을 한다거나, 어린 애 같은 짓은 이제 하지 말자고 꾹꾹 적어두었더군요. 그건 성인이 되면 더 하는 짓인데 말이예요.

       아무튼 군대가는 자기보다 우리를 더 걱정하는, 그렇지만 무뚝뚝하고 소심해서 그 마음 못 직접은 못 건네고 가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우리우리 사촌동생. 군대생활 잘 하고 오길 이 밤, 바랍니다. 예전엔 군대 다 가는 거잖아, 라며 심드렁하게 생각했는데 요즘 보니 군대 가서 별별 일들이 다 터지니 그저 무사안일 제대만을 바랄 뿐입니다. 니 말대로 제대하면 한 자리 떡하니 하고 있어서 니가 누나 단물 쪽쪽 빨아먹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되어있을거니까 걱정말고. 몸 건강히. 필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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