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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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모퉁이다방 2020. 12. 30. 05:37
아빠는 주례사에서 너희는 자신처럼 살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커덩했다. 아빠는 딸의 중요한 날, 꾸미지 않고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한 것이다. 커오는 동안 나는 자주 아빠의 외로움과 마주했다. 아빠의 외로운 어깨를 뒷모습으로 마주하면 결혼식장에서처럼 가슴이 철커덩했다. 를 읽으며 가슴이 아리면서도 다행이다 싶었던 건 아빠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아빠, 아빠처럼 외로웠던 사람이 여기 또 있었네. 지금보다 젊은 시절 아빠는 과묵했다. 힘들고 외로워도 그 감정들을 잘 내뱉지 않는 사람이었다. 대신 바둑을 두고 밤시간 사무실에서 혼자 시간을 오래 보내셨다. 요즘의 아빠는 수다쟁이다. 그동안 못했던 말을 다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저 먼 옛날 얘기도 끊임없이 이야기하신다. 그래서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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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거북 수프를 끓이자서재를쌓다 2020. 12. 13. 16:56
추위에도 익숙해졌나 생각했던 어느 아침, 일어나 보니 눈이 오고 있었다. 허겁지겁 창문으로 내다보니 밖은 새하얗다. 이미 4월도 끝나려 하는데 완전한 설경이었다. 깜짝 놀라서 곧바로 딸에게 말해줬다. 딸은 당시 열 살. 겨울을 좋아하고 눈도 무척 좋아하는 딸이다. 몹시 기뻐하며 둘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밖에는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옆집 사람이 이미 스키복을 껴입고 집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웃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눈에 신바람이 난 우리를 보고 "맞다, 잠깐 기다려봐요" 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의 손에는 그릇과 숟가락, 그리고 시럽이 들려 있었다. 그릇은 비어 있었다. 무엇을 하는 걸까 싶어서 지켜보고 있었더니 갓 쌓인 새하얀 눈을 펐다. 그릇에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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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모퉁이다방 2020. 12. 6. 08:37
종로에서였다. 길을 가는데 누군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처음엔 정말 누군지 몰라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려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내 뒤통수에 대고 엄청 섭섭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을 한 번 더 쳐다봤는데 생김새가 조금 달라졌지만 아무개를 닮은 거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냥 지나치려 했다. 아무개가 그동안 무심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무개는 특유의 엄청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옆에 있던 누군가가 나를 쫓아왔다. 그 누군가는 빠른 걸음으로 쫓아오며 나를 혼냈다. 누군지 아시잖아요,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모른 척 하면 안되죠. 나를 훈계했다. 나는 그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했는데 그 사람이 순간 얼더니 맞아요, 하며 울음을 참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순간 서러워져 엉엉 울었다. 그렇게 엉엉 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