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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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서재를쌓다 2016. 8. 6. 00:50
한번도 안 가봤지만 숲님이 추천해 주셔서 언젠가 가 보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동네 북카페가 있다. 한번도 안 가본 주제에 블로그를 즐겨찾기 해 놓았는데, 어느 날 소규모의 일본어 스터디를 진행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일본인이 가르쳐주고, 수업 속도도 빠르지 않고 천천히 진행하려고 한다는 설명과 함께. 이거다 싶었다. 공부도 하고, 새로운 사람도 사귀고. 전화로 문의를 했는데, 설명을 해주시는 분의 목소리와 말투가 좋았다. 목소리 만으로 좋은 사람이구나 신뢰감이 느껴졌다. 카페 스텝인데, 스터디에서 함께 공부를 할 거라고 했다. 일본여행을 가면 서점에 가곤 하는데, 무슨 책인지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서 공부를 할 결심을 했다고. 여러 가지로 좋았는데, 수업료가 비쌌고, 히라가나부터 수업을 시작한다고 해서 망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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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서재를쌓다 2016. 7. 27. 23:00
이런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몸 속 어딘가에, 아니 마음 속 어딘가에 누군가가 내게 했던 말들을 보관하는 장소가 있는 것 같다고. 전혀 잊고 있었던 말인데, 어느 순간 문득 떠올라 나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때의 그이는 이런 마음이었던 거구나. 그때의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그 마음을 백프로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거다. 그 말들은 아주 소소한 말들부터 의미심장한 말들까지 다양하다. 따뜻한 말도 있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말도 있다. 얼마 전 만난 남희언니는 친구 얘기를 하며, 그즈음엔 술을 마시면 신이 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어, 신이 나는 게 미안했어,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이 어느 저녁 친구네 집으로 가는 지하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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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불어넣기서재를쌓다 2016. 6. 16. 21:59
이 책의 본래 제목은 이었다. 나는 일 때 이 책을 샀다. 누군가 추천해 준 책, 이라고 기억한다. 아니면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해서 따라 읽은 책, 일 수 도 있다. 이 책을, 아니 정확히 말해서 단편 '혼 불어넣기'를 오키나와에서 다시 읽었다. 세상에, 오키나와에서 이 단편을 다시 읽다니. 나는 이 단편을 다시 읽기 전, 오키나와 북부 버스 투어를 했다. 우리는 뚜벅이었기 때문에 북부로 가려면 투어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투어에서 갔던 장소들은 나를 감동시키지 못했지만, 버스 안에서 가이드에게 들었던 오키나와와 오키나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가이드가 말한 오키나와 사람들의 성향은 분명 일반화의 오류일 거다. 모두가 똑같을리가 없지. 그렇지만 나는 상상해봤다. 좋은 게 좋다고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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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서재를쌓다 2016. 2. 28. 22:38
이렇게 남쪽 나라에서 보낸 나의 겨울은 따뜻했다. 그 200일 동안 긴장을 풀고, 서두르지 않고, 마치 현지인이라도 된 듯 슬렁슬렁 돌아다녔다. 매일 산책을 했고, 책도 많이 읽었고, 제법 글을 쓰기도 했다. 만날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적다 보니 나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고요히 호흡을 고름으로써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필요한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울에서보다 생활비가 훨씬 적게 든 건 물론이다. 일상보다 설레고, 여행보다 편안한 날들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겨울이 오면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가는 삶의 방식을 고수하게 될 것 같다. 여행과 일상의 중간지대에 머물며 덜 쓰고 덜 갖되 더 충만한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은 모두가 같은 곳을 찾아가 같은 것을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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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들서재를쌓다 2015. 12. 27. 19:40
은 그해 읽었던 최고의 소설이었다. 어떤 단편은 세 번이나 읽었다. 그 단편의 어떤 장면이 머릿 속에 계속 맴돌아 다시 꺼내 읽었다. 여자주인공이 늦은 밤 뒷마당에서 혼자 조용히 오열하는 장면이었다. 세 번 읽어도 좋았다. 작가의 이름이 외워두고, 언제 새 책이 나오나 주시하고 있었는데, 지난 9월에 새책이 나왔다. 그것도 장편소설. 출간되자마자 주문해서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 장편은 읽으면서 첫 소설집만큼의 느낌은 없었다. 한 가족의 이야기다.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고, 오빠가 있고, 여동생이 있다. 아빠와 엄마는 오랜 갈등 끝에 이혼을 했고, 오빠는 게이고 시인으로서의 재능이 있지만 미래에 대한 의욕이 없다. 여동생은 폭행사건에 휘말린 남자친구의 도피를 도와주고 있다. 소설은 이들 가족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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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단 한 권의 책여행을가다 2015. 8. 26. 21:44
처음엔 페소아의 를 제본해 갈까 했다. 8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니 7권 정도로 제본을 하고 하루에 한 권씩 들고 다니면 좋을 것 같았다. 고작 서문을 읽었는데, 너무 좋아서 황홀할 지경이었으니. 포르투갈에서 포르투갈 시인이 쓴 글을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봤다. 결국 게으른 나는 제본할 곳을 찾지 못했다. 두꺼운 책은 서울에서 천천히 읽기로 했다. 요시다 슈이치의 를 주문하기도 했다. 혼자 잘 해내가는 이야기를 읽고 싶었는데, 이 소설이 그런 이야기인 것 같았다. 곡예사 언니랑 언젠가 이 책 얘길 했는데, 언니는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중에 이 책이 제일 좋다고 했다. 나는 나 안 읽었나봐요 기억이 안 나요, 하니 언니가 너도 분명 읽었을 텐데, 했는데. 이번에 주문하면서 보니 내가 주문을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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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서재를쌓다 2015. 7. 30. 23:32
동생은 박웅현 빠순이다. 어디서 박웅현을 알아와서는 를 매일 들고 다니며 읽었다. 모든 부분이 좋다고 했다. 밑줄을 얼마나 그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은 박웅현이 나온 팟캐스트를 같이 듣자고 했다. 집에서 둘이서 낮술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술도 들어갔으니, 좋다고 듣자고 했다. 박웅현이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건 우리 둘에게 필요한 거였다. 내가 말했다. 다시 들어보자. 방금 자존감 부분. 다시 들었다. 다시 들어도 좋았다. 다시 들어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거였다. 동생이 물었다. 한번 더 들을까?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해서 듣다가 우리는 그 부분을 녹음하기로 했다. 동생은 무슨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들을 맥주를 마시고 돌아오는 어느 쓸쓸한 귀가길에 들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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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서재를쌓다 2015. 6. 15. 22:14
올해 포르투갈을 못 가게 된다면 마카오라도 가자고 결심했었다. 뭔가를 검색하다가 마카오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알았고, 마카오에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이 여럿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마카오는 카지노가 다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막 열의에 차서 마카오 책을 찾았는데, 마카오만 소개된 책은 없고, 홍콩과 마카오가 함께 소개된 책이 대부분이었다. 이 책은, 여행을 가게 된다면 사람들이 다 가는 곳 말고 좀더 특별한 곳을 돌아다니고 싶어 구입한 책이다. 씨네21 주성철 기자의 책. 이 책을 읽고 홍콩이라는 도시는 물론이고 주성철이라는 사람에 빠졌다. 정말 심한 홍콩영화 덕후인데, 뭐랄까. 그 열정이 부러운 사람이랄까. 영화를 보다 인상적인 곳을 발견하면 크레딧의 장소협찬지를 캡쳐해 두고 그 곳을 검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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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아래 봄에 죽기를서재를쌓다 2015. 6. 5. 08:21
두 번째로 만나는 구도 마스터. 5월에는 술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셔봤다. 두 번씩이나. 한 번은 강남의 엄청 큰 수제맥주집에서. 한 번은 상수의 아일랜드 펍에서. 처음에는 무척 긴장되었고, 두 번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혼자서도 씩씩한 서른 여섯으로 적응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 사이 을 읽었다. 이 책이 시리즈의 첫 권인 것 같은데, 어쩌다보니 나중의 이야기부터 읽게 되었다. 이제 구도 마스터의 이야기는 출간된 책으로는 한 권이 남았고, 또 마지막 한 권이 출간되겠지. 그러면 끝. 아쉽다. 산타마가와 선 산겐자야 역에서 나와 역 앞 상점가를 지나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좁은 골목으로 들어간다. 2백 미터 정도 되는 골목의 끝에 막다른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 바로 앞 왼쪽에 자리잡고 있는 술집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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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서재를쌓다 2015. 3. 29. 20:14
에드가 말했다. "고대의 그리스인들은 죽으면 우리의 영혼이 여행을 떠난다고 믿었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려면 삼천년이 걸리는데 돌아왔을 때 자신의 몸이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남아 있어야 영혼이 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래서 보존이 무엇보다 중요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그 정도로 보존에 신경을 쓰진 않아요." 염색체도, 미토콘드리아도 없는. "삼천년이라, 그리고 돌아온다고요." 그녀가 말했다. "그들에 따르자면 그렇죠." 그가 빈잔을 내려놓고 이제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고마워요." 니나가 말했다. 그리고 서둘러서 물어보았다. "영혼같은 걸 믿나요?" 그는 손으로 식탁을 누르며 잠시 서 있었다. 작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젓더니 그는 "그래요." 라고 대답했다. - p.210 '위안'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