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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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서재를쌓다 2012. 5. 28. 13:07
머리를 자르고 이소라의 공연에 갔다. 머리를 자르러구요. 짧은 단발루요. 그러니까 아, 더워 보여서요? 시원하게? 그랬다. 내 머리 더워보였나보다 생각했다. Y언니랑 이대에서 만나 명란젓 스파게티와 오늘의 초밥을 먹고, 걸어서 서강대까지 갔다. 메리홀 앞의 벤치에 앉아 아이스 커피를 마시면서 서강대 축제소리를 들었다. 쟤네들은 젊어서 좋겠다, 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공연을 보고 투다리에 가서 깻잎말이 꼬치에 맥주를 마셨다. 언니에게서 도쿄에 다녀온 이야기, 새로운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또 쓸데없는 말들을 언니 앞에서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여름이 되면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여기가 전주였음 좋겠다, 언니가 말했다. 걸어서 집에 막 가구요, 내가 그랬다. 아멘, 티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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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다섯번째 봄.무대를보다 2012. 5. 26. 10:41
아멘. 수많은 밤을 남 모르게 별을 헤며 날 위로해 강해지길 기도하고 지나간 이별로 울기도해 날 떠난 그댄 잘 있는지 다가올 만남을 빌기도 해 끝이 없는 미련들 소리없는 바람들 나의 어둠 속에 빛 되도록 날이 가기 전에 별이 지기 전에 나의 방황을 나의 가난을 별에 기도해 다 잊기로 해 나의 욕망을 나의 절망을 다 잊기로 해 나를 믿기로 해 아멘 * 그녀와 나의 두번째 봄. 그녀가 살아주어서 다행이다. 그녀와 사랑하고, 그녀와 이별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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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 여름의 끝자락, 시를 읽다서재를쌓다 2008. 8. 27. 01:29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이성미 지음/문학과지성사 도서관에 들렀다. 시를 잘 읽지도 않는 주제에 시를 읽고 싶은 날이란 생각에 시집을 빌렸다. 이성미 시인의 라는 시집이었다. 집에서 도서관까지 가는 시간은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데, 제일 빠른 길은 이렇게 가는 길이다. 대문을 나서 '오이마트'에서 좌회전해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내가 순간적인 판단으로 '컷트머리로 잘라달라고 한 미용실'에서 좌회전해서 2분정도 걸어가면 도서관이 있다. 4층이 내가 늘 가는 종합자료실이다. 크리스마스 아침 도서관 가는 길에 우리 자매가 종종 이용하는 술집이 즐비해 있다. '황룡성'이라는 중국집을 닮은 치킨집은 얼마 전 '푸닥푸닥'이라는 이름으로 개업하며 떡이며, 머릿고기를 돌렸다. 이 집은 조명이 푸른 색이다. 역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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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허브모퉁이다방 2008. 4. 18. 14:19
요즘 허브가 너무 탐스러워 꽃집 지날 때마다 자꾸 걸음이 느려져요. 그러다 인터넷에 저렴한 가격에 허브 화분을 판매하는 걸 보고 바로 질러주었어요. 허브향이 얼마나 좋은지. 봄바람이 솔솔 불면 허브향이 집 안 가득 그윽하게 퍼져요. 잘 키워서 허브차 마실려구요. 요리에도 넣고. 원하는 바질이 안 와서 안타깝긴 하지만. 봄 햇살과 봄의 허브는 참 고와요. 사이도 좋고. 로즈마리예요. 향이 화분 여섯개 중에서 제일 강해요. 육류 요리에 넣으면 고기 냄새도 없애고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대요. 빈혈, 콜레스테롤, 저혈압, 변비, 불면증, 방광염에 좋대요. 약간 건조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물은 조금씩 주면 된다네요. 고온다습을 싫어하고 해받이와 통풍이 좋은 시원한 곳에서 순풍순풍 잘 자란다는. 레몬 타임이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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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과 봄비모퉁이다방 2008. 4. 9. 19:16
이마트에서 잔뜩 먹을 것을 산 뒤 한강고수부지로 갔다. 가지고 온 돗자리를 깔고 우리는 마주 앉아 카스 2캔과 웨팅어 2캔과 스타우트 패트 하나를 사이좋게 나눠마셨다. 술에 취하는 대신 강바람과 뒤섞인 봄바람에 취했다. 화장실을 세 번씩 다녀오고, 요즘 보는 TV 프로그램을 이야기했다. 친구는 신정환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마치 만나본 사람인 것처럼 말했고, 쾌도홍길동의 성유리 대사를 자꾸 흉내냈다. 난 역시 운이 좋소. 당연히 친구의 얼굴에서 성유리를 떠올릴 순 없었다. 난 역시 운이 좋소. 통통오리배의 페달을 늦은 밤에도 열심히 저어대는 사람들이 있었고, 놀랍게도 통통오리배 옆에 진짜 오리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강바람에 바다 내음새가 났다. 우리는 강물을 바라보며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대학 시절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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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가 살던 곳 - 봄을 만나는 길티비를보다 2008. 3. 24. 12:46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 따닥따닥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습니다. 커피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우산을 펴들고 집 앞에서 거품이 소복히 얹혀진 커피를 사고 들어오는 길에 갑자기 '은어가 살던 곳'이 생각이 납니다. 당장 집에 가서 그 단막극을 다시 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따딱따딱. 우산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엠피쓰리 속의 음악보다 더 훌륭합니다. 아, 요즘 루시드 폴의 '삼청동'을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너무 좋아요. - 컴퓨터를 켜니 샛노란 봄 빛깔의 현미씨가 저를 맞아줍니다. 나풀거리는 롱 스커트를 입고 샛노란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그녀는 하동 터미널에서 내립니다. 높은 샌들은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어째 여행에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다구요. 결국 그 샌들 덕분에 기가 막히게 눈부신 여행을 했지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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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야기 - 친구에게극장에가다 2008. 3. 19. 16:33
이렇게 봄이 찾아와 주셨으니 를 봐줘야 한다. 작년 인터넷 서점에서 DVD를 발견하고는 당장 주문했다. 그리고 책장 안에 고이 꽂아두고는 봄이 오기만 기다렸다. 대학교 1학년 즈음이였던 것 같다. 집에 내려가 있던 여름방학, 우리집은 우즈키를 닮은 내 친구의 동네로 옮겨져 있었다. 친구와 나는 여름 밤에 자주 만났다. 버스를 타지 않아도 금방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우리가 살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나는 자주 복도 창 밖에 고개를 내밀고 수다를 떨었다. 저녁시간에 훌쩍 여럿이서 야자를 빼먹고 학교에서 가까운 노래방에 놀러 가곤 했다. 노래방 언니는 늘 요구르트 하나씩을 줬었다. 의자 위에서 몸을 떨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다 학교로 걸어오는 길에 방금 부른 노래를 흥얼거리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