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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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서재를쌓다 2016. 7. 2. 16:52
어제 시옷의 모임이 있었고, 이건 어제의 페이퍼. [7월에 만나는 6월의 시옷 -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빠져들려면 기슭을 떠나야 한다. 구명대 없이. 뭍에서 팔을 몇 번 젓는지 세지만 말고 말이다.” - p.13 우리는 함께 줌파 라히리의 이탈리아어 이야기를 읽었고, 이것은 나의 이야기입니다.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라면, 나는 일본어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처음은 오다기리 죠였습니다. 나는 그 시절, 일본의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드라마며 영화며. 이야기가 좋아 보다보니, 사람이 좋아졌고, 사는 모습도 좋아보였고, 특유의 억양들도 좋아져 혼자 흉내를 내곤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꽤 있어서 일본의 배우들이 내한을 해 무대 인사나 관객과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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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불어넣기서재를쌓다 2016. 6. 16. 21:59
이 책의 본래 제목은 이었다. 나는 일 때 이 책을 샀다. 누군가 추천해 준 책, 이라고 기억한다. 아니면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해서 따라 읽은 책, 일 수 도 있다. 이 책을, 아니 정확히 말해서 단편 '혼 불어넣기'를 오키나와에서 다시 읽었다. 세상에, 오키나와에서 이 단편을 다시 읽다니. 나는 이 단편을 다시 읽기 전, 오키나와 북부 버스 투어를 했다. 우리는 뚜벅이었기 때문에 북부로 가려면 투어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투어에서 갔던 장소들은 나를 감동시키지 못했지만, 버스 안에서 가이드에게 들었던 오키나와와 오키나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가이드가 말한 오키나와 사람들의 성향은 분명 일반화의 오류일 거다. 모두가 똑같을리가 없지. 그렇지만 나는 상상해봤다. 좋은 게 좋다고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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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서재를쌓다 2016. 5. 18. 07:10
전주에서 이 책이 내게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한옥 숙소에서 불을 끄고 혼자 누워 있다가. 홍대에 있는 카페꼼마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페 앞에서는 흠집이 있어 정상 판매를 하지 못하는 책들을 싸게 판매하고 있었다. 그 책들을 둘러보다 발견했다. 김종관 감독의 책. 그렇게 산 책이었다. 한동안 책장에 고이 꽂혀 있었는데, 를 보고 이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이거나 사랑이 아니어서 죽도록 쓸쓸한 서른 두 편의 이야기'. 서른 두 편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에 대한 김종관 감독의 산문이 있다. 그러니까 예순 네 편 모두 김종관 감독이 쓴 거다. 서른 두 편은 모두 사랑 이야기다. 그것도 섹스에 관한. 끈적끈적한 섹스가 아니다. 촉촉한 섹스이다. 읽는 중에 친구를 만나게 됐는데, 이 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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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서재를쌓다 2016. 4. 27. 22:36
동생은 베트남을 두 번 다녀왔다. 두 번 다 좋았다고 했다. 물가도 싸고, 음식도 맛있고, 사람들도 모두 착했다고 했다. 함께 포르투갈어 수업을 들은 루씨 언니도 베트남을 참 좋아한다고 했다. 베트남어를 배워볼까 진심으로 생각해보았을 정도라고 했다. 이런 좋은 이야기들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베트남은 어떨까 생각해봤다. 이 책은 베트남을 사랑하는 작가가 쓴, 베트남 국수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베트남이라는 나라와 그 속의 사람들을 아끼듯, 베트남 국수도 아낀다. 그래서 250페이지에 가까운 책에 베트남 국수에 대한 이야기만 썼다. 아, 침 나오게. 작가의 국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언젠가 먹었던 국수 한 그릇을 추억하거나, 언젠가 먹을 또 한 그릇의 국수를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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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새벽 세시서재를쌓다 2016. 4. 1. 00:15
겨울 경주여행을 함께 한 책. 오지은의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공연을 보고, 사인도 받고, 팟캐스트도 들으면서 (내 식대로 이해한) 그녀의 바램대로 나는 그녀를 인간적으로 알아가는 것 같다. 어떤어떤 척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오지은. 언젠가 공연에서인가 라디오에서인가 (아니면 책에서인가) 오지은은 무대 위에서도 다름아닌 오지은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어릴 때 동경했던 노래하는 센 언니들은 무대 위와 무대 뒤에서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다고, 자신은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부러 멋있는 척 하고 싶지 않다는 말 같았다. 부러 있는 척 하고 싶지 않다는 말 같았다. 사실 이번 책은 처음 읽기 시작할 때 두근거렸다. 이런 문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짐을 싸서 늦겨울의 교토로 떠났다. 조용하고 쓸쓸한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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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서재를쌓다 2016. 3. 20. 21:38
토요일이었고, 오전부터 합정에 나와 있었다. B에게서 메시지가 왔는데, 메시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이번에 나온 이기호 소설 좋대.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나는 어떤 책에 꽂히면 그 책을 손에 넣기까지 그 책만 생각하는 (그렇지만 손에 넣었다고 단번에 읽진 않는;;) 조금은 집요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이 날도 온종일 이 책을 재빨리 손에 넣어야 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결국 오후에 홍대까지 걸어가 재고 한 권 있는 이 책을 구입했다. 짧은 소설 모음집이라 술술 읽혔다. 어떤 소설은 즐겁고, 어떤 소설은 짠했다. 그랬다. 즐겁고 짠하게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책이 끝나 있었다. 특별히 마음에 남는 한 편의 소설을 꼽을 수는 없겠는데, 한 문장은 꼽을 수 있다. 111페이지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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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서재를쌓다 2016. 2. 28. 22:38
이렇게 남쪽 나라에서 보낸 나의 겨울은 따뜻했다. 그 200일 동안 긴장을 풀고, 서두르지 않고, 마치 현지인이라도 된 듯 슬렁슬렁 돌아다녔다. 매일 산책을 했고, 책도 많이 읽었고, 제법 글을 쓰기도 했다. 만날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적다 보니 나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고요히 호흡을 고름으로써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필요한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울에서보다 생활비가 훨씬 적게 든 건 물론이다. 일상보다 설레고, 여행보다 편안한 날들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겨울이 오면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가는 삶의 방식을 고수하게 될 것 같다. 여행과 일상의 중간지대에 머물며 덜 쓰고 덜 갖되 더 충만한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은 모두가 같은 곳을 찾아가 같은 것을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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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서재를쌓다 2016. 1. 13. 21:56
마스다 미리 책을 모두 사는 친구가 있다. 지금은 너무 많이 나와버려서 친구도 중간 즈음에 멈췄다. 매번 친구에게 빌려 읽었다. 처음엔 무척 좋았는데, 반복되는 이야기들이 많다보니 새 책이 나와도 제목만 보고 이건 안 읽어도 되겠다고 심드렁해질 때가 있었다. 이번에 에세이와 만화책이 함께 나왔는데, 만화책 제목을 보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다 미리 자신의 이야기를 그린 . 매번 빌려 읽어서 친구에게 이번 건 내가 선물해주겠노라고 말했다. 친구는 그러면 먼저 읽고 주라고 했다. 그렇게 읽은 마스다 미리 이야기. 만화가가 되기 전의 이야기, 초보 만화가가 되어 직접 홍보하고 다닌 이야기, 일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던 시기, 그리고 지금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마스다 미리가 만난 편집자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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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들서재를쌓다 2015. 12. 27. 19:40
은 그해 읽었던 최고의 소설이었다. 어떤 단편은 세 번이나 읽었다. 그 단편의 어떤 장면이 머릿 속에 계속 맴돌아 다시 꺼내 읽었다. 여자주인공이 늦은 밤 뒷마당에서 혼자 조용히 오열하는 장면이었다. 세 번 읽어도 좋았다. 작가의 이름이 외워두고, 언제 새 책이 나오나 주시하고 있었는데, 지난 9월에 새책이 나왔다. 그것도 장편소설. 출간되자마자 주문해서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 장편은 읽으면서 첫 소설집만큼의 느낌은 없었다. 한 가족의 이야기다.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고, 오빠가 있고, 여동생이 있다. 아빠와 엄마는 오랜 갈등 끝에 이혼을 했고, 오빠는 게이고 시인으로서의 재능이 있지만 미래에 대한 의욕이 없다. 여동생은 폭행사건에 휘말린 남자친구의 도피를 도와주고 있다. 소설은 이들 가족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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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서재를쌓다 2015. 12. 22. 23:56
함께 책을 읽는 친구가 있다. 먼저 읽으면 좋은 책을 읽었다며 선물해주기도 하고, 좋은 책일 것 같은 예감이 마구 드는 책은 처음부터 함께 읽기도 하고. 그렇게 읽고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지난 가을, 친구가 물었다. 혹시 읽었어? 아니. 다음에 만날 때 선물할게. 친구가 가지고 나온 책은 였다. 하지만 나를 버리지 마, 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복제인간의 이야기를 지금 이 땅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복제인간 이야기지만, 지금의 우리 이야기이기도 한 이야기. 추석 연휴에 이 책을 읽었다. 서울에서 장유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다 읽었다. 좋아하는 음악들이 랜덤으로 이어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낮이었다. 다행히 차는 막히지 않았다. 여러 개의 터널을 지나는 중이었다. 이어폰에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