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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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모퉁이다방 2018. 6. 20. 22:23
지난 주부터 아침 저녁 식단을 조절하고 있다. 대충 많이 먹던 것을 신경써서 적당히 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퇴근하고 와서는 몸을 움직이려고 한다. 동생이 추천해 준 초보 홈트 영상을 보고 30분간 따라하거나, 집까지 11층을 걸어 올라오거나 하는 등. 체중을 줄이기 위한 몸부림(!)은 타의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진작부터 실천해야 하는 것이긴 했다. 지금까지의 엄청난 다이어트 실패들을 교훈 삼아, 이 식단과 운동을 오래오래 지속할 수 있도록 무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밥도 여러가지 만들어 보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친구집에서 이유식 책을 봤는데, 거기에 남은 이유식 재료로 만든 성인요리가 있었다. 두 가지를 유심히 봤는데, 계란오이볶음과 렌틸콩마늘볶음. 계란오이볶음은 해먹어 봤는데, 아주 맛났다. 얼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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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모퉁이다방 2018. 6. 9. 21:51
유월이 되고, 저녁 바람이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일년 전 생각을 하고 있다. 일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두 주 가까이 혼자 지냈던 기억들을 이곳에 정리해놓아야겠다. 더 늦어지면 영영 꺼내놓지 못할 것 같다. 가 케이블에서 하면 채널을 돌리다가 멈추고 본다. 1시즌은 이소라 때문에 보았고, 2시즌의 처음 팀은 김윤아 때문에 보았다가, 역시나 로이킴에 푹 빠졌다. 이번 두번째 팀도 첫번째 팀에 이어 포르투갈. 첫번째 팀은 포르투에서 시작했고, 두번째 팀은 리스본에 있다. 저번에 본 방송에서 두번째 팀이 파두하우스에 갔는데, 파두는 '침묵'에서 비롯된 음악이라고 했다. 모두들 그 침묵에서 비롯된 음악을 경건하게 들었다. 아, 나는 내 유럽 여행의 시작이 포르투갈이어서 참 좋다. 오늘은 박정현이 라이브 바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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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모퉁이다방 2018. 5. 18. 23:47
어느 날은, 시골에 가서 소 키우며 살래? 라고 물었다. 나는 잡아먹힐 소를 어떻게 애지중지 키우냐며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시골에 가 소 키우고 밭 가꾸며 사는 조용한 삶에 대해서 상상해봤다. 일찍 일어나 몸 움직여 일하고, 오후부터는 내 삶이 있는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 오후 볕이 있고, 달콤한 낮잠도 있고, 느긋한 저녁 시간이 있는 삶. 물론 그렇게 달달한 삶만이 아니겠지만, 그 속에 놓여 있는 나를 상상해봤다. 어느 날은, 친구가 미국으로 이직을 한다며, 영어 잘해? 라고 물었다. 나는 다 그만두고 미국에 가는 상상을 해본다. 빠듯하게 일해서 집렌트비 내고, 생활비 내고, 술집에도 가지 않고, 저녁에 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삶일 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 외롭겠지? 외로울 거야.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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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모퉁이다방 2018. 4. 25. 21:32
월요일 저녁에는 소윤이에게 전화가 왔다. 요가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고 했다. 집까지 30분 정도 걸린다며, 생각이 나 전화를 했다고 했다. 서로 별일이 없는지 안부를 물었고, 최근의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셔틀을 타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니까 어둠이 가볍게 깔린 그 시간의 시내 버스 풍경을 근래에 떠올려 본 적이 없는데, 소윤이 덕분에 그려 봤다. 소도시의 한적한 저녁 버스. 창밖으로 펼쳐지는 느긋한 풍경.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 있는 버스 좌석. 운동을 끝내고 봄바람에 가만히 내 생각이 났을 아이. 그렇게 조곤조곤 마음으로 이어진 서울과 전주. 소윤이는 버스를 잘못 탔다고, 내려서 다시 잘 탔다고 했다. 서로 월요일 하루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고 통화를 끝냈는데, 마음이 고요하고 따스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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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모퉁이다방 2018. 3. 13. 23:53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달큰하게 취한 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일주일 뒤에 너는, 사실 그 말은 참고 참은 말이라고, 그날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불쑥 튀어나와 버렸다고 했다. 나는 너의 머리카락을 뒤적거리다 흰머리들을 발견하고 말했다. 우리는 이렇게 흰머리가 나버린 뒤에 만났네. 친구를 만날 때나, 혼자 영화를 볼 때, 곁에 있던 니가 훅하고 납작해져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친구와 헤어지고, 영화가 끝났을 때, 니가 훅하고 자라는데 이렇게 되어버린 내 마음이 신기하다.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녹초가 되어 테이블 위에 불편하게 엎드려 자는 모습을 두 번 사진으로 찍어뒀다. 보고 싶다는 말이 무척 애틋한 말임을 새삼 깨닫고 있는 날들. 항상 어딘가를 같이 가자고, 누군가를 같이 만나자고 말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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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모퉁이다방 2018. 2. 26. 22:28
지난 목요일의 일. 보경언니가 강연을 함께 듣자고 했다. 오랜만에 셋이 만나서 맥주도 마시자고 했다. 엄마 찬스를 쓴다고 했다. 한때 우리 셋은 한달에 세 번 이상은 맥주잔을 부딪치는 사이였는데 (한때는, 이 말을 요즘 자주하네) 이제는 반년에 한번 모이기도 힘들게 됐다. 요즘 사무실이 너무 건조해서 가끔 속이 미식거리는데, 이날이 유독 심했다. 나는 늦어서 강연은 못 듣겠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넓직한 테라로사로 갔다. 넓직한 테이블 가장자리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핸드폰도 하면서 저녁시간을 보냈다. 평일 저녁 테라로사는 제법 한가하더라. 한 시간이 넘자 언니에게 전화가 와서 케이티 건물 앞에서 만났다. 강연이 별로였다고 했다. 친구는 언니가 설문지를 내러 가서 패널 선정이 잘못된 거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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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모퉁이다방 2018. 2. 18. 21:18
사촌동생은 일월 첫째주 주말에 삼척에서 결혼식을 했다. 덕분에 밤버스를 타고 삼척에 갔고, 쏴아쏴아 소리가 커다랬던 삼척바다를 다시 보았고, 바다를 곁에 두고 하룻밤을 잤다. 졸린 눈을 비비고 아침 해도 봤다. 사촌동생은 내내 싱글벙글이었는데, 이번 설에 보니 살이 두둑하게 올라 있더라. 선물이라고 건네주는 와인 두병을 그 자리에서 땄다. 새식구와 함께 두런두런 앉아 와인을 나눠 마시면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내가 물었다. 뭐가 좋아요? 사촌동생의 아내가 된 새식구는 방긋 웃더니 말로 딱 나열할 순 없는데 그냥 좋아요, 라고 우문현답을 했다. 사촌동생에게도 똑같이 물었는데, 사촌동생이 엄청난 대답을 했다. 모두 그 자리에서는 막 놀렸는데, 그 말을 각자 곱씹어보고 곱씹어봤다. 동생은 새식구가 나를 나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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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모퉁이다방 2018. 2. 1. 17:04
영화 에는 남자와 여자가 차 앞좌석에 앉아 있는 장면이 자주, 그리고 오래 나온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서울인가 경기도 어딘가의 여자의 집에 가고, 강원도에 있는 남자의 집에도 간다. 여자는 남자에게 네비게이션이 말해주는 길을 알려주고, 남자는 이 길이 정말 맞는지 여자에게 물어보곤 한다. 마지막 장면에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광화문 광장을 걷는다. Y씨의 차에 처음 탄 건 강변에서 영화를 보고 근처 역에 내려준다고 하길래. Y씨는 의정부 쪽에 있는 동생네 집에 가는 길이어서 강변역에서 헤어지는 게 맞았는데, 그냥 탔다. Y씨가 말했다. 이 차 앞자리에 처음 탄 여자야. 얼마 전에 고모를 태웠는데, 그건 뒷자리였다고 했다. 그 밤, Y씨는 결국 응암까지 데려다 줬다. 강변에서 응암까지 가는 길이 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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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와 독일할머니모퉁이다방 2017. 12. 26. 23:06
연휴 이틀 동안 XTM에서 을 연속방송해줬다. 일요일에 우연히 발견하고 종일 보고 있었다. 케이블이라 광고가 길어서 광고 할 동안 마트에 다녀오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했다. 다시 봐도 좋더라. 오해영이 잔디밭에 가만히 앉아 울적한 마음을 지워보려 애쓰는 장면. 해영이는 주문을 왼다. "마음이 울적할 때는 행복한 것을 떠올려보아요." 에릭이 여자 혼자 사는 티 내지 말라며 현관 앞에 자신의 커다란 구두를 무심하게 가져다 놓던 어떤 밤의 기억. 오늘 나는 오해영의 주문을 생각해냈다. 마음이 울적할 때는 행복한 것을 떠올려보아요. 커다란 구두 같은 로맨틱한 기억은 최근에 없으므로, 어제 오후 친구와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 오후를 떠올렸다. 우리는 이대역에서 만났다. 반대 방향으로 타는 바람에 걸어가도 충분한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