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
-
메리 크리스마스모퉁이다방 2021. 12. 27. 01:01
크리스마스에는 아이를 재우고 늦은 저녁을 준비했다. 평일에 혼자 점심을 먹을 때 배추와 냉동삼겹살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냄비에서 익혔는데 맛이 꽤 괜찮았다. 조금 더 풍성하게 먹어볼 생각으로 이유식에 넣을 소고기를 사러 갔을 때 옆에 있는 야채가게에서 팽이버섯과 느타리버섯, 콩나물을 사왔더랬다. 크기는 작지만 깊이가 있는 후라이팬을 꺼내 물을 약간 붓고 야채와 고기 탑을 쌓기 시작했다. 이쁘게도 아니고 그냥 조금씩 적당히 쌓았다. 배추도 잘라 넣고 냉동삼겹살도 넣고 팽이 버섯과 느타리 버섯도 뜯어 넣었다. 콩나물도 넣고. 중간중간 소금과 후추도 적당히 뿌리고. 뚜껑이 안 닫힐 정도로 높게 쌓아놓고 뚜껑을 얹였다. 마지막에 맛술을 약간 두르고 가스불을 켰다. 약불에 천천히 익혔다. 익는 동안 남편의 소주를..
-
아이슬란드티비를보다 2021. 12. 12. 00:52
아이는 이제 하루에 네번 혹은 다섯번 밥을 먹는다. 밥을 먹으면 트림을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깨어난지 두 시간 즈음이 되면 칭얼대기 시작한다. 잠이 오는 것이다. 안방의 범퍼침대로 데려가 눕히고 엉덩이를 토닥여주면 잠에 든다. 눈을 자꾸 비비는데도 자지않고 계속 칭얼거리면 안고 등을 두드려준다. 좀 진정이 되면 소파에 앉아 엉덩이를 토닥여준다. 그러면 얼마 안 가 잠이 든다. 그때부터 한시간 길게는 두시간 동안 자유시간이다. 피곤할 때는 같이 자기도 하는데 그렇게 자버리면 하루 중 내 시간이 없어 아쉽고 아쉬워서 깨어있는 상태로 뭔가를 하려고 한다. 주로 밥을 먹는다. (시간이 아까워 간단히, 아주 빨리 먹는다 ㅠ) 달달한 것과 커피를 동시에 섭취하기도 한다. 책을 몇 자 읽기도 하고, SNS에 ..
-
여인초모퉁이다방 2021. 12. 9. 17:26
아이는 이제 안다. 힙시트 꺼내는 걸 보면 자기를 안아줄 거라는 걸. 그래서 울다가도 울음을 멈춘다. 그리고 가만히 올려다보며 기다리고 있다. 오늘 그렇게 아이를 안아주려고 힙시트의 허리 부분을 매는데 갑자기 정인이 생각이 났다. 이제 6개월인 아이도 힙시트를 꺼내면 자기를 안아줄 거라는 걸 아는데, 그 아이도 알았겠지. 자기에게 또 나쁜 짓을 할 거라는 걸. 자기를 또 아프게 할 거라는 걸. 그리고 뉴스의 아이들 생각을 하다 눈물이 날 뻔 했다. 대신 아이를 꼬옥 안아줬다. 남편은 며칠 전 티비에서 시작 부분을 보더니 못 보겠다고 했다. 전에 본 안길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 영상이 생각나 또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우리가 이렇게 부모가 되어가고 있나보다. 아이는 이제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한다. 놀..
-
양꼬치모퉁이다방 2021. 12. 6. 18:19
내일부터 이유식에 소고기를 넣어야 해서 정육점에 갔다. 가까운 정육점과 마트에는 한우를 팔지 않아서 (처음이라 비싼 한우를) 한 블럭 떨어져 있는 정육점까지 갔다. 날씨가 그리 쌀쌀하지 않아 유모차 방풍 커버 지퍼를 잠그지 않고 걸었다. 아이도 간만의 산책이라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유모차에 가만히 있었다. 주말에는 결혼식이 있어 서울에 갔다. 정말 간만의 외출이었고 별다른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마음이 허했다. 이어폰을 가져가지 않아 음악을 듣지 못했고 책은 가지고 나갔는데 읽을 기분이 들지 않아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만 봤다. 아이 동영상을 찾아 가만히 보고 있다 내려서 남편에게 영상통화를 했다. 아이가 나를 알아보고 싱긋 웃어주는 걸 보고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엄마 얼른 갈게, 라고 말하고 전화..
-
아델음악을듣다 2021. 12. 3. 15:01
화요일 아홉시. 남편은 아이를 목욕시키고 동네에 사는 후배와 술 한 잔 하겠다고 나갔다. 아이를 재우고 동생이 알려준 공연 시간에 맞춰 티비를 켰다. 배철수와 오프라 윈프리의 소개로 공연의 막이 올랐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시작해 완전히 밤이 찾아온 뒤까지 이어진 공연이었다. 그리피스 천문대를 배경으로 한 일몰 풍경은 아름다웠고 아델의 목소리는 깊었다. 제일 좋았던 곡은 I drink wine. 번역된 가사를 보며 적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놀고 열심히 일하고 희생 속에 균형을 찾으라 하지. 하지만 진정 만족하며 사는 사람 못 봤어." "날 이겨 내는 법을 배우고 싶어. 다른 누구인 척 그만두고. 서로 대가 없이 사랑할 수 있게. 모두 내게 뭔가를 원하지만 당신은 나만을 원해." "왜 난 ..
-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서재를쌓다 2021. 12. 2. 16:05
어느 후기 때문에 샴푸를 샀다. 로즈마리 샴푸인데 머리를 감을 때마다 숲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는 거다. 재활용할 수 있는 투명한 용기에 연두빛 샴푸액이 담겨 있었다. 사실 향 만으로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대신 샴푸를 쓸 때마다 그 후기글이 떠오른다. 매일 아침 혹은 저녁 머리를 감으면서 숲에 가 있다는 분. 그 후기를 생각하며 머리를 감으면 나도 슬쩍 숲에 한 발 내딛는 것 같다. 김남희 작가님의 새 산문을 읽었다.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시대의 여행작가 글이다. 여행을 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걱정,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겪게 된 경제적인 어려움, 십 년 넘게 산 부암동 집을 떠나는 이야기, 새로 이사한 집에서 시작하는 에어비앤비 이야기, 새집에서는 숲이 무척 가깝다는 이야기, 매일매일 숲을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