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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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념일모퉁이다방 2021. 9. 28. 00:17
남편이 말했다. "우린 지금 살얼음판이야." 육아를 시작하고부터 우리에게 여러 인내의 순간들이 찾아왔다. 남편이 참는 경우, 내가 참는 경우, 둘다 어찌어찌 참고 넘어가는 경우, 둘다 정말 못참겠는 경우. 물론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로 인해 행복하고 충만한 순간이 더 많다. 어쩌다 이런 말까지 하게 되었는지 그 시작조차 생각나지 않는 살얼음판의 순간이 오면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내가 이러려고, 로 시작하는 생각들. 남편도 그럴 것이다. 그 밤이 지나고 나면 (어떨 때는 밤이 지나기도 전에)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예민했었다 생각이 들곤 하지만 그 순간에는 내가 세상에서 최고로 불행하고 힘든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정말 육아는 녹록치 않다. 마음과 몸이 동시에 지치니 평소 같으면 지나쳤을 말 한마디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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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모퉁이다방 2021. 9. 7. 01:17
계절에도 성격이 있을까. 계절 앞에 '초'라는 글자를 붙이면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그 중 제일은 초여름. '초'라는 글자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이런 뜻이다. 어떤 기간의 처음이나 초기. 그러니까 여름의 처음이나 초기를 생각하면 괜시리 가슴이 두근거린다. 포르투갈에 가기로 한 건 영화 때문이었다. 동생과 영화를 본 뒤 배경이 되는 곳을 찾아보니 포르투갈 리스본이었다. 여행 프로그램 리스본 편을 죄다 찾아봤다. 노란 전차가 좁은 골목길을 덜컹거리며 오르내리고 있었다. 근사했다. 오래되었고 낭만적이었다. 그 다음해, 휴가날짜를 결정해야 할 시기에 동생이 말했다. 언니, 우리 포르투갈에 가자. 우리는 초여름에 출발하는 일정으로 예산을 무리해 준비를 했고 어이없게도 동생이 출발 일주일을 앞두고 우연한 사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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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를 베다서재를쌓다 2021. 9. 7. 00:32
(...) 네번째로 자동차키를 잃어버린 날, 나는 자동차 바퀴를 걷어차며 화풀이를 했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는데 실패한 기분이 들었다. 실패를 한 적이 없어서 실패한 기분이 들었다. 언니한테 가봐야겠어. 그제야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 62쪽, 날씨 이야기 (...) "손바닥에 적은 그 단어 스펠링 틀렸어요." 여학생이 말했다. "i가 두 개여야 해요." 그는 한 달만 더 학원을 다녀보자고 결심했다. 이번에는 정말 버스에서 졸지 않겠다고. 학원에 갈 때 스무 개. 돌아올 때 스무 개. 보란듯 외우리라고. 결심대로 그는 정말 버스에서 졸지 않았다. 그러자 평소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학원까지 가는 길에는 시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가 있었다. 나무가 얼마나 큰지 나무 그늘 아래 집 한 채는 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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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모퉁이다방 2021. 9. 2. 12:51
어제는 동생이 회사창립기념일이라 오전 근무만 한다고 오후에 놀러왔다. 서울 동쪽에서 경기도 아래쪽으로 오는 거니 거리가 꽤 되는데도 와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요즘엔 누가 와주면 그렇게 고맙다. 이번주에 지안이가 지금까지 나름 규칙적이었던 흐름을 깨고 자주 울고 계속 안고 걸어달라고 해 힘들었는데 잠시라도 놀아주고 나와 말상대 해 줄 사람이 와준 것이다. 남편은 부랴부랴 육아책을 찾아봤는데 지금이 새로운 도약의 시기란다. 약 2주동안 지금까지와 달리 신생아 시기로 돌아간 것처럼 아이가 변할 수 있는데 정상적인 성장의 과정이라고 되어 있었다. 다행이긴 한데 또 힘들기도 하겠다 싶었다. 그래도 2주니까. 새벽에 어김없이 한번씩 깨서 다시 잠들지 않고 울어댄다. 남편은 다시 아이를 데리고 거실 소파로 나가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