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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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맛의 사과서재를쌓다 2020. 3. 30. 22:05
많이 보는 게 중요하지 않아질 때가 오지. 오래 전, 여행 선배들이 말했다. 그 말은 신묘한 점쟁이의 예언처럼 딱 맞았다. 많이 보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시간 들여 천천히 보고 싶다. 먹는 것과 머무는 곳에 좀더 돈을 쓰고 무엇을 보기 위해 조바심을 내거나 안달 내지 않고 싶다. 전전긍긍과 근심걱정은 돌아가면 차고 넘치게 할 수 있다. 우선은 아침을 든든히 먹는다. - p. 64-65 아비뇽에서 묵은 곳은 오래된 작은 호텔이었다. 호텔을 선택한 이유는 '아침마다 주인 할아버지가 내려주는 커피가 정말 맛있어요' 라는 리뷰 때문이었다. 어떤 결정을 할 때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작고 사소한 것일 때가 많다.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잊힌 채로 선반 위에서 담담히 익어가는 과일이나 빛이 미처 닿지 않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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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아와 라떼모퉁이다방 2020. 3. 21. 10:43
매번 혼자 남겨지는 사람에게 마음이 쓰였다. 고등학교 때는 혼자 있는 아빠에게 그랬고, 최근에는 동생에게 그랬다. 대학교 때 나도 혼자였는데 그건 괜찮았다. 지난 주에는 치과 때문에 하루 연차를 냈다. 남편이 동생집이 치과와 가까우니 하루 자고 바로 가면 어떻겠냐고 그래서 그러겠다고 했다. (그는 내 아침 출근길 지하철 역까지 운전을 안해도 되는 것이다! 역시나 술약속을 잡았더라!) 마침 그날 휴가자가 많아 야근을 했고 동생집에 느즈막히 도착했다. 지하철 역에서 나오자 통닭을 파는 트럭이 보였다. 나는 세상의 모든 전기구이 통닭트럭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최고는 응암역 길 건너에 있던 할아버지 통닭이다. 아주 바삭하고 아주 부드럽고. 포장해주실 때도 세심하게 까만봉지를 묶어 꽉 조여주신다.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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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통모퉁이다방 2020. 3. 4. 23:30
주말부터 왼쪽 이가 욱신거렸다. 낮에는 아무 이상도 없는데, 밤에 자다가 너무 아파 깨곤 했다. 치아 상태가 엉망일 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이런 치통을 느낀 적은 없어서 주말 내내 불안했다. 다니는 치과에 전화를 했는데 화요일 야간진료 예약이 꽉 찼다고 했다. 아파서 잠을 못 잔다고 하니 와보란다. 얼마나 아픈가, 온도에 따라 통증이 있는가, 음식을 씹을 때도 아픈가 등등의 질문이 이어지고 결국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 씨티를 찍었다. 왼쪽 윗쪽 사랑니 앞의 이가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뿌리에 염증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고. 아무래도 신경치료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흑- 치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또 후회된다. 정말이지 치아가 튼튼한 것은 복이다. 큰 복- 평일 오전에만 가능하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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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바다여행을가다 2020. 3. 3. 18:58
지난해 시월에는 태안을, 십일월에는 주문진을 다녀왔다. 여럿이서 갔다. 나의 교우관계는 늘 나의 지인들, 조금 더 넓히면 친구의 지인들까지였는데 이제 남편의 친구들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남편과 내가 다른 사람이듯 내 친구들과 그의 친구들 역시 무척 다른 사람들인지라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만남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조금씩 친숙해지고 있다. 어떤 조심의 끈은 놓지 않으려고 하고 있고. 관계란 좋지만 어려운 것이기도 하니까. 실컷 보지는 못했지만 두 군데 다 바다가 있었다. 서해와 동해. 올 상반기에 어딘가 놀러 갈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의 장거리 항공권 예약취소가 이어지고 있다. 오랜 고민 끝에 날짜를 정하고 돈을 지불한 건데. 집순이라 집에 있는 게 좋지만, 강제적인 거라 답답하기도 하다. 사진들을 돌이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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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모퉁이다방 2020. 3. 2. 22:07
남기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아무 것도 쓰지 못한 채 삼월이 왔네. 어느 날, 출근길인가 퇴근길에 가산디지털단지역 지하철 문이 열렸는데 순간 깨달았다. 이 역이 연애시절 남편네 동네에 왔다 돌아가는 길에 어쩔 수 없이 정차했던 역이었다는 걸. 주말 오전의 열차는 가산디지털단지에서 멈췄다. 이곳까지만 운영하는 열차라고 했다. 곧 기다리면 또다른 열차가 올 거라고. 그 열차는 멀리까지 갈 거라고 했다. 날씨가 흐렸다. 역사 바깥인지 안인지 그 경계선 즈음에 커다란 벚꽃나무가 있었다.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모두 그 벚꽃을 찍어댔다. 흐렸는데도 가득했던 벚꽃 때문인지 환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매일 지나는 역인데도 핸드폰을 보느라 잠을 자느라 그 흐린 봄날의 기억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핸드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