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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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옷과 전주여행을가다 2019. 4. 23. 23:40
남을 쓰고 그리는 일은 언제나 어려웠다. 나는 나만 아니까. 남은 모르니까. 타인에 관해서 쓰는 건 자주 실패로 끝났다. 다른 사람이 되어 보려 시도하고 썼던 대사와 문장들은 늘 어설폈다. 어설프지 않으려면 아주 주의싶어야 하고 부지런해야 했으나 나는 남에 대해 쓰는 일에 성급하고 게을렀다. 내가 얼마나 나밖에 모르는 사람인지 독자들에게 뽀록나며 창피를 당했다. 매 문장에서 밑천을 들켜버린다니 글쓰기란 두려운 일 같았다. - 181-182쪽 누구나 남을 자기로밖에 통과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두 눈으로 확인했을 때 나는 조금 위안이 되었던가, 아니 조금 슬펐던가.- 183쪽 별수없이 각자의 돈벌이는 계속되었다. 대학생과 잡지사 막내기자와 누드모델을 병행하는 동안 나는 틈틈이 글을 썼다. 주로 누드모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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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극장에가다 2019. 4. 17. 21:36
엄마아빠와 한바탕 하고 올라온 날, 더 울고 싶어 극장에 갔더랬다. 아이스 라떼 큰 사이즈를 사고 왼쪽 복도자리에 앉았다. 많이 울었다. 펑펑 울었다. 영화를 보는 중간 아이를 잃은 전도연의 마음이 되었다가,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한 설경구의 마음이 되기도 했다. 또 어떤 순간에는 오빠를 잃은 동생의 마음이 되었다가, 또 어떤 순간에는 옆집에 사는 이웃의 마음이 되었다가 했다. 영화를 본 다음날 저녁에는 운동을 하러 갔는데, 켜놓은 티비에 전도연이 나왔다. JTBC 뉴스였다. 손석희가 그랬다.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울어대는 전도연을 바라보는 이웃들의 다양한 모습이 현실에서 세월호를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인 것 같았다고.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사람의 몸에서 어쩌면 저렇게 큰 소리가 나는가 생각했다.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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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카미노를 걷는다서재를쌓다 2019. 4. 3. 22:30
스페인 순례길에 침대와 식사를 제공하는 이 시작되었다. 재미나게 보기 시작했는데, 마침 S가 이 책을 주고 갔다. 순례길을 걸은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다. 순례길 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꽤 읽었는데 또 읽어도 새롭고 흥미롭다. 똑같은 길이라고 해도 그 길을 걷는 사람과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이번에는 십년 전에 걸은 길을 십년이 지난 뒤에야 정리한 이새보미야 씨의 여정이다. 대학교 3학년 때 2학기 등록금 낼 돈으로 무작정 비행기표를 예매한 젊은 순례자는 잘도 걷는다. 그 긴 길을 별로 힘들어하지 않고 잘 걷는다. 부상만 없었다면 더 잘 걸었을 거다. 의 첫번째 하숙생이 유해진에게 그랬다. 힘든 현실을 뒤로 하고 이곳에 왔는데 매일매일 걷고 걷고 또 걷다보면 고민이 해결되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