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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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여행을가다 2019. 1. 31. 21:33
작년 마지막 여행지는 포천이었다. 스파가 있는 펜션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펜션 홈페이지에 도착 시간을 알려주면 그 시간에 맞춰 스파에 물을 채워 놓는다고 했다. 휴게소도 들리고 한 시간쯤 늦게 도착했다. 그리 친절하진 않았던 주인 아주머니가 스파 사용법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따뜻한 물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입욕제 금지. 사용하지 않을 때는 뚜껑을 덮어 놓을 것. 사용할 때는 뚜껑을 반으로 덮어 스파기 옆에 세워 놓을 것. 버튼 세 개를 가리키면서 1, 2, 3 이 순서대로예요. 끌 때는 3, 2, 1. 이렇게 끄세요. 1, 2, 3. 3, 2 1. 3번이 조명이었다. 스파욕조는 두 번 사용했다. 저녁 밥 먹고 나서 한 번,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이런 욕조는 얼마나 할까 하고 봤는데, 사용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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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모퉁이다방 2019. 1. 29. 23:15
주말에 병규와 한나에게 요즘 낙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나의 요즘 낙은 무엇인지 어제오늘 곰곰이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니 요즘 나의 낙은 뚝배기 밥이었다! 밥솥이 고장난 상태이고, 집에서 밥을 잘 안 해먹고 있었는데, 자주 가는 블로그에 냄비밥 이야기가 계속 올라왔다. 냄비밥을 해먹기 시작했는데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 젊은 부부인데, 그때그때 2인분씩 해서 누룽지까지 알뜰하게 먹는다고 했다. 냄비 브랜드를 알려주길래 찾아봤다. 그 분이 쓰는 냄비는 색이 파란 것이 무척 예뻤는데, 값이 나갔다. 그래서 그 브랜드의 자그마한 뚝배기를 샀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뚝배기(냄비)밥은 흰쌀밥을 할 경우 쌀을 한 시간 이상 불려두고, 쌀과 물을 1:1 비율로 넣는다. 자, 그럼 밥을 해보자. 불을 제일 센불로 두고 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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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때 묻은 나의 부엌서재를쌓다 2019. 1. 24. 22:52
그렇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던 25년 전부터 쭉 이 양철 쌀통을 사용해 왔다. 쌀 씻기 바로 전, 소쿠리를 한 손에 들고 쌀통 뚜껑을 비켜 연다. 계량컵을 쌀 안에 푹 찔러 넣고 평평하게 깍아 두 번, 세 번. 그러고 나서 수도꼭지를 비틀어 쌀을 석석 씻는다. 십 년을 하루같이 당연하다는 듯 반복할 수 있었던 건 새삼스럽지만 행복한 일이다. (...) 새 쌀 한 포대를 사 와서 포대를 끌어안고 입을 벌려 쌀을 쌀통에 쏴아 붓는 때가 무척 좋다. 쌀이 양철에 부딪히며 마른 소리를 내면 그 소리가 또 그렇게 좋다. 내 스물다섯 해, 수백 번을 반복해 온 소소한 집안일이지만, 그때마다 내 살림의 대들보를 확인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0-11쪽) 녹은 긴 세월 쇠가 품어 기른 드라마다. 그곳에 하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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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어빵모퉁이다방 2019. 1. 22. 21:09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왔는데, J씨가 차장님 아버지가 갑자기 위독해지셨다고 했다. 잠시 뒤 들어온 차장님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 택시를 타기 직전까지 차장님은 울고 울고 또 우셨다. 오후내 여러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친구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 이별은 갑자기 찾아왔다. 마지막 인사 따위 차분하게 나눌 새도 없이 그렇게 갑자기 소중했던 사람이 순식간에 떠나버렸다. 일을 하면서 계속 눈물이 나서 모니터 아랫쪽에서 눈물을 닦아댔다. 케이블 채널을 뒤적거리다 이라는 프로그램 재방을 보게 됐는데, 배순탁 작가 편이었다. 배순탁 작가는 밤새 원고마감을 하고 자주가는 순대국집에 갔다. 맛집인 것 같았다. 밥이 따뜻하게 토렴되어 나오는 순대국집이었다. 배순탁 작가는 아버지에게 순대국을 배웠다고 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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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고 싶다면서재를쌓다 2019. 1. 20. 21:40
제임스 설터의 소설은 한 권도 읽지 못했다. 무척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아주 지루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누군가의 평, 혹은 보도자료를 보고 를 사두었었는데, 아직까지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늘 이런식이다) 도 SNS에서 누군가 추천을 했는데, 그 글이 좋아서 샀다. 새해 첫 책으로 뭘 읽을까 고민하다 왠지 이 책이 좋을 것 같았다. 새해 첫 책이니까 끝까지 읽었다. 포스트잇도 열여덟 군데나 붙어두었다. 성실하고 섬세하고 꼼꼼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존 케이시라는 작가가 쓴 '나가며'는 앞의 내용과 중복이기도 했고 지루했다. 없어도 되지 않았을까. 책은 제임스 설터가 소설과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연과 인터뷰로 구성되었다. - (...) 결국 나는 프랑스로 갔습니다. 프랑스는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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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모퉁이다방 2019. 1. 14. 22:23
물이 끓는다. 똥과 머리를 떼어두고 냉동실에 보관해 온 국물용 멸치와 지난해 주문진에서 잘못 사온 황태껍질을 넣고 보글보글 끓였다. 완도산 미역을 잠시 불린 뒤 잘게 잘랐다. 미역국의 미역은 잘게 씹히는 게 좋더라. 냉동실을 뒤져보니 대구포가 있어 잘라뒀다. 멸치황태껍질물이 누우렇게 우려났다. 참기름도 들기름도 없어 잘게 썬 미역을 그냥 냄비에 넣고 다진마늘과 함께 볶았다. 길게 썰어둔 대구포도 넣었다. 쏴아-하고 냄비가 들뜨는 소리가 나자 멸치액젓과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누우렇게 우려난 미역황태껍질국물을 아낌없이 부었다. 이제 맛이 우려날 때까지 끓이면 된다. 미역국은 오래 끓일수록 깊은 맛이 나니까. 이번주 중요한 사람을 만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겨우내 참 많이도 쳐먹고 참 적게도 움직였다.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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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잔상들서재를쌓다 2019. 1. 13. 21:29
12월 15일 토요일이었다. 일찍 일어났고 상암 메가박스 상영시간표를 검색해봤다. 조조 가 있었다. 망설이다 일어났고 세수를 하고 커피를 내렸다. 상암 메가박스에는 맛난 라떼를 파는 커피집이 있는데 조조 시간대에는 문을 열지 않더라. 겉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영화 시작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극장 한 켠에 앉았다. 12월 어느 날,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다정한 추천 메일을 받았더랬다. 작고 단단한 책을 펼치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문장이 있었다. "야근중인 사무실 책상에서, 극장 안에서, 밤거리에서, 새벽녘의 작은 방 안에서 나는 발표할 기약 없는 이 글들을 십 년간 조금씩 써나갔다. 그러면서 차츰 투명한 응시가 과거를 미래로부터 발견해내는 일임을, 다가올 이미지를 기다리며 무언가를 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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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영극장에가다 2019. 1. 9. 21:23
올해 첫 영화. 일찍 일어난 주말, 해가 뜨기 전에 틀었다. 주말, 제일 좋아하는 시간과 행위. 얼마 전에 동생이 보았는데, 너무나 좋았다는 후기를 전해 개봉 즈음 극장에서 봤던 영화를 다시 봤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첫 장에 이런 글귀가 있다. "우리가 글로 쓴 것들은 우리와 함께 늙어가지 않습니다." 이 문장을 보고 고개도 끄덕이고, 친구에게 보내주기도 했는데 을 다시 보고 나니 저 말은 거짓같다. 우리가 쓴 글과 영화는 우리와 함께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는 청년들과 어울리는 중년부부가 유치하고 철없이 느껴졌었는데, 다시 보니 이해가 됐다. 공감이 되다 막 서글퍼지더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을 이렇게 설명하면 무리일까. 아이를 갖지 못하고 있는 중년의 부부가 아이를 막 가진 절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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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집생활서재를쌓다 2019. 1. 5. 06:39
작년에 읽은 마지막 책이다. 마지막 장까지 마치긴 했지만 읽는 내내 의문이었다. 이렇게 소설가가 고심해서 쓴 문장을 어순 정도만 달리해서 카피로 써도 되는 걸까. 그걸 이렇게 이용했다고 책으로까지 만들어 놓아도 되는걸까.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래도 되는건가.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카피라기보다 소설을 그대로 가져다 쓴 카피였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나갔고, 어제 가격 때문에 고심했던 국어사전을 주문했다. 종이 국어사전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구입하지 않았을 거였다. 이 책을 읽은 후 최대의 성과이다.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나는 가급적이면 인터넷으로 빨리 찾을 수 있는 검색사전이 아닌 종이사전을 권한다. 검색을 하면 내가 찾고자 하는 것밖에 알 수 없지만, 종이사전을 뒤적이다 보면 못 보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