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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모퉁이다방 2021. 9. 2. 12:51
어제는 동생이 회사창립기념일이라 오전 근무만 한다고 오후에 놀러왔다. 서울 동쪽에서 경기도 아래쪽으로 오는 거니 거리가 꽤 되는데도 와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요즘엔 누가 와주면 그렇게 고맙다. 이번주에 지안이가 지금까지 나름 규칙적이었던 흐름을 깨고 자주 울고 계속 안고 걸어달라고 해 힘들었는데 잠시라도 놀아주고 나와 말상대 해 줄 사람이 와준 것이다. 남편은 부랴부랴 육아책을 찾아봤는데 지금이 새로운 도약의 시기란다. 약 2주동안 지금까지와 달리 신생아 시기로 돌아간 것처럼 아이가 변할 수 있는데 정상적인 성장의 과정이라고 되어 있었다. 다행이긴 한데 또 힘들기도 하겠다 싶었다. 그래도 2주니까. 새벽에 어김없이 한번씩 깨서 다시 잠들지 않고 울어댄다. 남편은 다시 아이를 데리고 거실 소파로 나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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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서재를쌓다 2021. 8. 29. 23:10
책을 사봐야겠다고 결심한 건 그림 때문이었다. SNS에서 우연히 봤는데 아이를 뒤켠에 두고 잠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는 박완서 작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박완서는 자기 전에 꼭 책을 읽었어요. 작품을 많이 읽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문장과 함께. 책을 읽고 있는 저 따뜻한 불빛이 그때의 내게 위안이 됐다. 그래, 책을 읽으면 돼, 생각을 했더랬다. 그림을 올린 분에게 어떤 책인지 물어봤고 아직 출간 전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얼마 전 불현듯 떠올라 인터넷 서점에 '박완서'라고 검색해봤더니 출간이 되었더라.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었고 짧은 내용이었지만 읽는 동안 뭔가 벅찬 느낌이 있었다. 남의 느낌을 빌리지 말고 정직하게 자기 느낌을 표현하자. 익을 시간. 쓰지 않을 수 없는 순간. 이런 말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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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래놀라모퉁이다방 2021. 8. 27. 09:54
친구는 문래동에서 노들역 가까이로 이사를 했다. 아무리 못 봐도 서로의 생일 즈음에는 꼭 얼굴을 봤는데 코로나 때문에 정말 오래간만에 만나는 거였다. 처음 가는 길이라 네비게이션을 켜고 갔다. 도착지에 가까워졌는데 한강이 보였다. 와, 좋은 곳으로 이사했네. 친구네 집은 길다란 구조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긴 복도가 이어졌고 양 옆으로 방들이 있었다. 그리고 복도의 끝에 두 면이 통창인 거실과 부엌이 있었다. 통창 때문에 거실이 더 넓고 시원해보였다. 친구는 만삭인 내 배를 만지더니 친구야, 이렇게나 배가 나왔네 했다. 친구는 함께 먹으려고 흑돼지소라찜을 주문해뒀다고 했다. 오빠는 언젠가 생각한, 이렇게 먹으면 맛있겠다 조합의 음식을 에피타이저로 만들어왔다. 이제는 의젓한 유치원생 이나는 자다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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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한,가서재를쌓다 2021. 8. 24. 00:51
별것 아닌 나의 기록들이 자꾸만 좋은 사람들을 내 곁으로 데려다 준다. 그래서 계속 쓰게 된다.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라 가감 없이 나를 드러내며 솔직하게 쓴다. 그러다 보면 점점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이 조용히 곁으로 다가와 남는다. 나를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이 이제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어 닿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와 이름 모를 누군가를 향해 편지를 띄운다. 단 한 줄을 쓰더라도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서. - 여름 / 기록, p.57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근처 정류장에 앉아 살짝 벽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여름에는 그늘 아래에서 맞는 바람을 사랑한다. 주어진 계절을 오롯이 느끼려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콧등과 인중에 맺히는 땀을 스윽 닦아내고 다시 눈을 감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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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모퉁이다방 2021. 8. 17. 01:05
팔월도 벌써 반이나 지났다. 아가는 오늘로 태어난지 칠십구일째가 되었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백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루하루 쑥쑥 자라고 있다. 아마도 보이는 게 선명해지면서부터 인 것 같은데, 잘 웃는다. 오늘은 엄마아빠동생과 영상통화를 했는데 화면에 엄마-동생-아빠 순으로 나타나자 웃기 시작하더라. 팬클럽 1호 엄마는 그 모습에 엄청난 함박웃음을 띄고.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엉덩이를 토닥거려주면 칭얼댄다. 일어서서 돌아다니기 시작해야 조용해진다. 새로운 걸 눈으로 계속 보고 싶어하는 듯 아직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바삐 움직여댄다. 산책이 아가의 시각자극에 좋다더니 이제 정말 산책을 시작해야 될 때가 왔나보다. 유모차를 꺼내뒀다. 남편과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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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세요모퉁이다방 2021. 8. 12. 16:53
산후도우미 관리사 업체는 조리원에서 추천받았다. 조리원 원장님은 자기가 추천해주고 나빴던 사람은 없었다며 혹시라도 이상한 사람이 오면 자기한테 연락을 하라고 했다. 조리원 퇴소가 목요일이라 금요일은 어찌어찌하고 월요일부터 출근하시면 일정이 깔끔하겠다 싶었는데 아무 것도 모르니 목요일에도 남편이랑 둘이서 멘붕이겠다 싶어 금요일 출근으로 변경을 했다.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안 그랬음 전쟁같은 금토일을 보냈을 거다. 관리사님이 출근 전에 문자로 연락을 해와 연락처를 추가하고 카톡 사진을 염탐했다. 장성한 아들 둘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인상이 좋아보이셨다.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걱정하는 만큼 관리사님도 걱정스럽겠지. 어떤 산모와 아이를 만날지. 너무 까탈스럽지는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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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티비를보다 2021. 8. 10. 23:11
지금은 지안이가 혼자 누워도 있고 누워서 잘 자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은 날들이 있었다. 온종일 안겨 있으려고만 하는 날들. 저녁과 새벽에는 남편과 어찌어찌 교대하며 하면 되었는데 (하지만 이것 역시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낮에는 나 혼자 밖에 없으니 내가 온종일 안아줘야 했다. 소파 구석에 등을 바짝 대고 앉아 이대로 망부석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정말 영영 이렇게 안아줘야만 할 것 같이 떼를 쓰며 울어댔는데 신기하게도 어느 시기를 지나니 눕더라. 어찌나 기뻤는지. 침대에 누워 잠을 잔다, 는 당연한 사실에 눈물이 날 듯 행복했다. 는 그 시기를 나와 함께해 준 드라마. 수유를 하고나면 트림을 시켜야 했는데, 트림을 잘 하지 않아 소화가 잘 되도록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오래 안아주는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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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얘기를 쓰겠소모퉁이다방 2021. 8. 5. 00:16
어제 오늘 남편이 재택을 하며 지안이를 같이 봐줘서 낮시간이 여유로웠다. 오늘은 낮잠도 잤고 친구가 지안이 잘 때마다 한 편씩 읽으라고 했던 소설집의 소설 한 편도 읽었다. 오늘 읽은 소설이 좋았다. 가끔 주인공 생각이 날 것 같다. 저녁이 되자 남편이 야구를 보며 닭을 먹자며 세탁소도 다녀오고 닭도 찾아오고 간만에 살짝 산책을 하고 오라고 했다. 이어폰을 챙겼다. 얼마 전 유퀴즈에 나온 SG워너비가 부른 노래의 도입부가 무척 좋았는데 혼자 있을 때 이어폰으로 들고 싶었더랬다. '여기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 가끔 그대는 먼지를 털어 읽어주오.'라고 나즈막하게 시작되는 노래를 들으며 집을 나섰다. 떡볶이와 순대, 오뎅을 파는 반찬집 앞 포장마차에 옥수수 삼천원이라고 쓰인 종이가 붙여져 있었다. 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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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만두모퉁이다방 2021. 8. 2. 22:57
군만두를 자주 해먹기 시작한 건 새로 산 프라이팬 세트 덕분이다. 남편은 인터넷광고에 적대적이고 홈쇼핑에 관대하다. 내가 파주로 출근을 하던 시절, 전철역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와 자신의 출근시간까지 어중간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남편은 반신욕을 하거나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곤 했다. 합정역에 도착하면 혹여나 자고 있을까 싶어 전화를 했는데 남편은 여러 번 홈쇼핑 얘기를 했다. 지금 나오고 있는데, 살까살까? 그렇게 산 물건이 소갈비탕, 프라이팬 세트 등등. 주부들이 주고객층인 아침 홈쇼핑 덕분이다. 새로 산 프라이팬 세트는 작은 프라이팬 하나, 큰 프라이팬 하나, 윅 하나, 중식도로 구성되었다. 작은 프라이팬은 윅 정도로 깊이가 깊다. 뚜껑도 있고. 어느 날 뭘 먹을까 고민하다 작은 프라이팬을 보니 만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