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from 모퉁이다방 2007.07.24 02:40

어떤 날은 중랑천가에서 맥주를 마십니다.
홀짝홀짝 술을 넘기고 있으면 주위는 어두워지고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집니다.
밤하늘의 별과 같아요.
그러면 나는 이곳에 지금 이순간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해집니다.

어떤 날은 환한 편의점 파라솔에서 맥주를 마십니다.
요즘 새로 나온 맥주가 꽤 깔끔하고 부드러워요.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비스듬히 앉아서 맥주를 목에 넘기면
이 세상에서 나만 굉장히 행복한 사람인듯한 착각이 듭니다.
그러면 또 마구마구 행복해집니다.

어떤 날은 헤어질것만 같은 연인들 가운데 있습니다.
정말로 헤어져버리는거 아닐까 걱정스러워요.
그러다 가만히 가운데 앉아 예전의 나를 생각합니다.
매일매일 싸워댔던 나를, 그런 나를 지겨워했던 너를.
나를 이내 서글퍼집니다. 우린 서로에게 좀 더 좋은 사람들이 될 수 있었을텐데.

어떤 날은 TV버튼을 누르자마자 케이블에서 '번지점프를 하다'가 방영되고 있는 걸 봅니다.
저런 지독한 사랑이 있었지, 생각합니다. 현생을 뛰어넘은 사랑.
그러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던 때를 생각합니다.
극장에서 두 번 이 영화를 봤는데, 두번째는 세 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심야 영화였어요.
술에 취해 들어간 극장 안에서 첫 영화를 내내 자버려 놓쳐버렸어요.
그리고 정신차려 눈을 뜨니 이병헌이 이은주 운동화 끈을 매어주고 있었어요.
왜 이리도 생생한지요. 벌써 7년 전 영화잖아요.

어떤 기억은 너무나 쉽게 잊혀져서 아련합니다.
어떤 기억은 너무나 생생해서 눈물이 납니다.
난 단지 당신도 어떤 날엔 나를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바램뿐이예요.
아련하고 눈물나는 기억이 우리 사이에, 너와 나 사이에 존재했다는 걸
당신이 잊지 않아주길 바랄뿐입니다.

오늘은 문득 당신 생각이 납니다.
아주 문득이예요.
당신이 내 얼굴에 산산조각 난 유리조각을 박은 이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