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레이드> 안 읽으신 분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


퍼레이드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은행나무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하숙을 했다. 내 첫번째 하숙방은 학교에서 최대한 가까운 반지하 하숙방이었는데, 미처 하숙방을 구하지 못한 내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었다.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그이상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던 내 친구의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였는데, 우리가 같은 학교에 같은 학부에 합격했다는 걸 친구에게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너무 활발해서, 그리고 너무 얌전해서 서로를 나쁘다고만 생각했던 우리가 친구가 되던 순간이었다. 친구의 하숙집에 방이 마침 하나 남아 그 곳으로 내가 들어갔다. 내 룸메이트는 약대를 다니는 4학년의 언니였다. 나는 생전 처음 다른 사람과 방을 함께 썼다. 언니는 내게 잘 대해줬다. 신입생인 나를 챙겨주고 걱정해줬다. 심지어 내가 그동안 펜팔을 했던 남자아이를 대면하러 나갈 때에 나에게 처음으로 화장을 해 주었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렇게 세심한 언니가 참 좋았고, 아빠는 우리방으로 전화를 걸어 언니에게 나를 잘 부탁하노라고 부탁했다. 그 뒤였을 거다. 아빠가 우리방에 전화를 한 후부터 언니는 철저히 나의 보호자로 변했다. 그전보다 나를 더 간섭하기 시작했고, 더욱더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호기심 많았던 신입생이었던지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고, 많은 알코올을 섭취했던 시기였다. 언니와 나는 내 친구와 친구의 룸메이트 언니(마침 친구의 룸메이트도 4학년 언니였다)와 자주 어울렸다. 함께 같은 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밖에서 일부러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나는 내 룸메이트 언니의 간섭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프다는 핑계로 땀을 흘리며 친구의 방에서 자기도 하고, 가능하면 늦게 하숙방에 들어가고 일찍 나오곤 했다. 빨리 한 학기가 지나가버렸으면 했다. 길고도 짧은 한 학기가 지나가고, 언니는 하숙방을 나가 집에서 통학을 했다. 우리는 찐한 이별식도 못한 채 헤어졌다.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행동해버린 내 자신이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내 가족도 아닌 누군가가 나를 속박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담스럽고 견딜 수 없었다. 다음학기부터 친구와 함께 지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룸메이트 언니들과 헤어졌다. 그 뒤로도 언니들은 졸업반이라 거의 만나지 못했고, 아주 가끔 어떻게 지낸다는 소식만 들었다.

   아,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그냥 <퍼레이드>를 읽으면서 그 때의 하숙집이 생각났다. 호기심이 많았던 신입생이었던 친구와 나, 그런 내게 보호자 역할을 해주고 싶었던  룸메이트 언니. 그리고 가족이 아닌 남과 함께 한 방, 한 집에서 생활하는 쉽지 않은 일. 사실 <퍼레이드>의 주인공들은 가장 이상적인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적당히 이어지고 적당히 끊어져 있는 동거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는 느슨한 끈이 연결되어 있어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끌어 당길 수 있고, 싫으면 물러날 수 있는 관계다. 그래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꼭 이런 집에서 한번 생활해보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 관계의 동거.

   <퍼레이드>에 사는 다섯명의 주인공들은 굉장히 평범하다. 평범한 대학생 요스케(그가 선배의 여자친구를 뺏긴 하지만), 평범한 백수 고토(하루종일 유명배우 남자친구 연락을 기다린다고 꼼짝도 못하지만), 평범한 투잡녀 미라이(강간 당하는 영화장면만 편집해 놓은 비디오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평범한 방황하는 열 여덟 사토루(몸을 팔아 돈을 벌긴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 나오키(흠...). 다섯편의 옴니버스에 각각 존재하는 인물들이고, 각각 자신의 에피소드에서는 주인공이지만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철저한 조연 혹은 엑스트라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생각없이 살아가는 것 같지만,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는 누구보다 많은 고민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임을 알 수 있다. 고가도로 위를 아무 탈없이 위태위태하게 운전해가는 자동차들이지만,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엑셀을 밟아 언제든 연쇄충돌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아슬아슬한 이십대들이기도 하다. 실제 우리들이 그렇듯이. 지금은 가장 친밀한 그들이지만 언제든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해결되면 바로 집을 떠날 수 있는 짐을 싸놓은 이십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굳이 가깝다고 말하기고 멀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사이인 그들이다.

   이 소설에 반전이 있다고 말해줬으면 나는 이 소설을 어떻게 읽어 내려갔을까 생각해봤다. 읽는 내내 무슨 반전일까, 생각해가면서 읽었겠지. 그리고 마지막에 오라, 이거였구나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그저 평범하게 스쳐지나가며 한 집에서 살고 있는, 느슨해보이지만 실은 단단한 인연의 끈을 잡고 있는 젊은이들의 동거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이 소설의 반전을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 단단하지 않은 거였구나 생각했다. 우연히 이 맨션에 들어온 다섯명의 동거남녀이지만 함께 살아나가면서,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술을 마시고, 함께 비디오를 보고, 각자의 빨래감을 같은 세탁기에 함께 돌리면서, 함께 드라마와 비디오를 보고, 함께 서로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주면서 그렇게 무엇보다 끈끈한 하나의 또다른 대안 가족이 탄생하는구나 싶었지만 책장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척만 한 것 같은 것이다. 몸을 팔며 십대를 보내고 있지만 모르는 척, 아무런 목표없이 대학생활을 하지만 괜찮다고, 그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자친구만 기다리는 건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척. 그리고...  

   때로는 서로를 위해서 말해야 하지만, 또 때로는 서로를 위해서 말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한 다섯명의 동거 생활. 마지막에 나오키가 본 것처럼 두 방과 하나의 거실을 쓰고 있는 다섯 사람이 그 맨션에 존재하지 않는 날이 올거고, 그 날을 위해서 모두들 자신의 이부자리 옆에 단단한 짐을 싸두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제든 이 짐을 들고 도망쳐버릴 수도 있고, 남은 사람들은 또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을 맞이하든지 할 것이라고. 그렇게 우리의 젊은 날들의 인연들은 끊어지고 이어지고 감추고 덮어주려 한다는 거라고. 그게 과연 옳은 것일까, 생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책은 끝나고 날은 머물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라면 그건 내일이나 다음에 다시 생각해보자,라고 넘어가버릴지도 모르지만 그게 과연 옳은 것일까 해가 진 후에도 나는 계속 생각하고 있다.

   지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나 많이 주절거리고 있었다. 금요일 밤이니까 뭐든지 용서되리라 믿으면서. :) 요시다 슈이치 책을 다 읽어버릴테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