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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르투갈, 출국
    여행을가다 2015. 7. 16. 23:28

     

     


       포르투갈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동생과 나는 갑작스럽게 여행을 결정했다. 동생은 휴가기간이 정해져 있었고, 나는 이번에는 혼자 떠나고 싶지 않았다. 동생은 도쿄가 아니면 포르투갈에 가길 원했고, 나는 도쿄는 지난 가을에 다녀왔으니 포르투갈에 가는 수 밖에 없었다. 경비가 걱정되긴 했지만, 어차피 카드 할부다. 다녀와서 열심히 일해서 갚아야 하는 것. 선여행 후결제. 동생이 에어텔로 알아봤고, 결제를 끝냈다. 나는 너무 짧은 것 같았다. 동생은 여름휴가는 이것 밖에 내질 못한다고 했다. 나는 유럽의 호스텔에서 친구도 사귀고 싶었다. 동생은 서운하다고 했다. 이 여행상품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또 티격태격했다. 늘 그렇듯이. 빠르게 화해를 하며, 우리 이번 여행에서는 절대 싸우지 말자고 했다. 우리는 지난 여행에서 싸우고 비행기를 놓쳤으니까. (사실 처음부터 비행기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으니까, 안 싸웠어도 비행기는 놓쳤을 거다) 그리고 정말 약속처럼 이번 여행에서는 싸우지 않았다. 같이 가지 못했으니까,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다. 나는 포르투갈에서 외로울 때마다 오지 못한 동생을 생각했고, 동생은 함께 가주지 못해 외롭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해했다. 동생은 회사에 그런 사례는 없었지만, 해보겠노라고 했다. 결국 기간을 이틀 더 늘렸다. 취소수수료를 내고, 숙박비가 더 들었지만 괜찮았다. 그런데, 어느 날 동생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들어왔다.

     

    - 언니 나 아파. 다리를 접질렀어.

     

       동생의 다음 말은,

     

    - 나 여행 갈 수 있어. 걱정하지 마.

     

        일주일 전이었다. 여행 준비는 허술하게 하고 있었다. 누군가 블로그를 검색하다가 맛집을 찾으면 여기 맛있대, 라고 링크를 보낸다. 그러면 그래, 여기 가자, 이런 식이었다. 둘이니 싸우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좋을 거다 생각했다. 포르투갈은 와인도 맛있다고 하니, 우리 여행은 더욱 근사해질 거다. 매일 포르투갈에서 여행하는 상상을 했다. 다음 날 병원에 간 동생은 골절이고, 당분간 움직이지 말아야 하며, 여름 내내 깁스를 해야 하며,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하니, 유럽 여행 따위는 꿈도 꿀 수 없으며, 당분간 걸어다니는 것도 힘들 거다, 라는 진단을 받았다. 동생은 계속 울었다.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했다. 아프지 않으니 갈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병원에 가보면 진단이 다를 것 같다고 했다. 유럽에서 휠체어 끌어줄 수 있겠어? 동생은 정말정말 가고 싶다고 했다. 결국 한 군데 병원을 더 가 보고, 엄청난 눈물을 더 흘리고 여행은 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지만.

     

        동생은 말했다. 나라면 혼자서 갔을 거야. 나는 이번에 포기해버리면 정말 바라고 바랐던 포르투갈에 가지 못할 것만 같았다. 여행 경비를 각자의 카드로, 그러니까 10개월 할부를 결제를 하고 난 뒤 서로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내가 말했다. 꿈만 같아. 나 정말 포르투갈을 가게 될 줄 몰랐어. 동생이 말했다. 나는 언니가 포르투갈어 학원 다닐 때부터 가게 될 줄 알았어. 나중에 이 말을 여행기에 꼭 써야지 생각했었는데. 나는 포르투갈어를 2개월 배웠지만, 할 수 있는 말이라곤 봉지아, 오브리가다 간단한 인사말 뿐 (선생님은 우리에게 공부 좀 하라고 하셨지), 같이 가기로 했던 동생의 다리를 부러졌고, 결국 혼자서 가는 일만 남았다. 생애 첫 나홀로 해외여행. 그토록 바랬던 포르투갈. 동생은 몇 번을 더 울고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취소를 했고 (그동안 여러 번 문의를 한 탓에 나름 친해진 우리의 담당자는 동생에게 친구처럼 다정하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취소수수료도 깍아줬다), 나는 급하게 이것저것 알아봤다.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유럽은 무서운 곳이었다. 어찌 해야 하나 지금이라도 취소를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번 들던 그 때, 같이 일하는 분이 밥을 먹다 내 얘길 가만히 듣더니 이런 말을 했다.

     

    - 금령씨, 이건 운명 같아요.

     

       점심을 먹고, 오후 일을 하는데 S씨의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맴돌았다.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포르투갈이 그냥 단순한 땅 덩어리가 아니고, 살아있는 생명체 같다는 생각. 다정하고도 수줍고도 연륜이 있는 모습으로 나를 부르고 있다는 생각. 니가 혼자 왔으면 좋겠다고, 혼자 오면 더 많은 걸 볼 수 있을 거고,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이번에는 혼자 오라고. 포르투갈이 미소짓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포르투갈이라는 나라에 불현듯 흠뻑 빠지기 시작한 그때처럼, 그러니까 S씨의 말처럼, 운명 같았다. 그래, 가보자고 결심했다. 혼자 가서, 넓게 보고, 깊게 느끼고 오자고. 포르투갈은 내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곳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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