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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이후드
    극장에가다 2014. 11. 11. 21:03

     

     

     

       12년동안 찍은 영화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도 비포 시리즈 감독 영화라는 이야기를 듣고, 에단 호크도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이후드>를 봤다. 지지난주인가 지지지난주인가 주말에 엄마가 올라왔고, 엄마와 축제 마지막 일요일 억새밭을 걸었다. 엄마를 보내고 상암의 극장에 들어가 165분 동안 혼자 본 영화다. 보고 난 다음에 할 이야기가 많았는데, 다 까먹어 버렸다. 이것만 기억에 남았다. 후반부의 한 장면이다. 꼬맹이었던 주인공은 어느새 장성했고, 대학에도 합격했다. 결혼에 세 번 실패한 엄마가 연 대학 입학 축하 파티에 두번째 결혼을 하고 또 다른 꼬맹이를 낳은 아빠도 참석한다. 파티가 끝난 뒤 아빠가 한 공연장으로 주인공을 데려간다. 거기에 아빠가 첫번째 결혼에 실패한 뒤 함께 살던 아저씨가 공연 준비 중이었다. 정말 너니? 니가 그렇게 많이 컸니? 아저씨는 눈이 부셔 눈썹 위로 손을 올려 겨우 주인공을 올려다봤다. 조명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웃었다. 아빠가 그랬다. 자기는 이제 꼰대가 다 됐다고. 니네 엄마가 간절히 바라던 그 꼰대. 그러니 니네 엄마도 자기를 내치지 않고 조금만 기다려줬으면 꼰대가 된 나를 보며 기뻐했을 텐데. 이런 말들을 아빠와 아들은 웃으며 주고 받았다.

     

        그 순간, 괜히 눈물이 났다. 꼬맹이에서 성인이 되는 동안 이 아이가 겪은 일을 조금은 알고 있다. 힘들 때가 많았다. 내가 아는 한 그렇다. 엄마가 고른 남자들은 다 거지 같았다. 처음에만 번지르했지 다들 술주정뱅이에 자격지심에, 자존심까지. 주인공은 엄마를 이해했다. 어른이 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고. 어른이 되어도 방황하게 되는 거라고. 그 엄청난 진리를 진작에 터득했다. 좋아했던 여자애는 운동선수에게 뺏겼고, 선생님으로부터 재능만 믿다가는 결국 아무 것도 될 수 없다는 충고를 암실에서 들었다. 여러 번 이사를 했고, 그때마다 원치 않는 이별을 했다. 그렇게 많은 시간들을 거쳐 '내'가 되었다. 지금의 내가. 이만하면 잘 커주었다. 엇나가지 않았고, 답답하게 꽉 막힌 아이가 되지도 않았다. 순간 아이가 부러웠다. 아이의 젊음이 부러웠다. 이제야 그의 인생은 시작이니까. 그동안의 경험이 그를 더욱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줄 게 분명하니까. 그가 마주할 세상이 부러웠다. 얼마나 팔딱팔딱 뛸지. 얼마나 많은 도전을 할 지, 얼마나 많은 실패를 할 지, 얼마나 많은 사랑을 할 지, 얼마나 많은 이별을 할 지.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을 마주한다. 그건 근사한 시작이었다. 나도 모르게 너는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라고 주인공을 다독거리게 되었는데 그건 나 자신에게 했던, 혹은 하는 말인 것도 같았다. 공연장의 아저씨가 눈이 부셔한 이유는 조명 때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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