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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월
    모퉁이다방 2021. 8. 17. 01:05

     

      팔월도 벌써 반이나 지났다. 아가는 오늘로 태어난지 칠십구일째가 되었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백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루하루 쑥쑥 자라고 있다. 아마도 보이는 게 선명해지면서부터 인 것 같은데, 잘 웃는다. 오늘은 엄마아빠동생과 영상통화를 했는데 화면에 엄마-동생-아빠 순으로 나타나자 웃기 시작하더라. 팬클럽 1호 엄마는 그 모습에 엄청난 함박웃음을 띄고.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엉덩이를 토닥거려주면 칭얼댄다. 일어서서 돌아다니기 시작해야 조용해진다. 새로운 걸 눈으로 계속 보고 싶어하는 듯 아직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바삐 움직여댄다. 산책이 아가의 시각자극에 좋다더니 이제 정말 산책을 시작해야 될 때가 왔나보다. 유모차를 꺼내뒀다. 

     

      남편과는 대부분 사이가 좋지만 (우린 육아동지) 가끔 다툴 때도 있다 (역시 육아동지이기 때문에).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듣는 당시에는 마음 속에 이런 생각 뿐이다. 자기만 힘든 줄 아나. 내가 말을 안해서 그렇지 이것도 힘들고 저것도 힘들고. 온갖 힘듦을 모조리 총집합해서 생각하고 생각한다. 분이 풀리진 않지만 어찌어찌 잠을 자고 아침을 맞이하면 옆사람의 마음을 조금 생각하게 된다. 그래, 어제의 그 부분은 진짜 힘들 수 있겠다. 나도 많이 힘들지만 그때의 내 표출방식은 잘못된 거였어. 반성도 하게 된다. 밥을 먹다가 슬그머니 건넨다. 나의 미안한 마음을. 그러면 남편도 건넨다. 자신의 미안한 마음을. 그리고 남편이 힘들다고 한 상황이 오면 이전와는 다르게 행동하려 노력한다. 사실 남편은 정말 잘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며 내가 칭찬을 너무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더라. 마음 속에는 고마운 마음이 가득한데 그걸 잘 꺼내질 않았더라. 그런데 한두번 섭섭한 순간이 오면 그건 엄청나게 빨리, 그리고 강하게 표출하는 거다. 반성한다. 

     

      요즘 아가는 단둘이 있는 낮에 잘 자고 혼자서도 잘 누워 있고 그런다. (물론 승질 낼 때도 있지만) 그래서 아가가 자는 시간에 설거지도 하고 밥도 먹고 책도 읽는다. (한숨 푹 자고도 싶은데 이걸 하다보면 하루가 끝나있다) 토요일에는 수유를 하면서 최백호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좋은 말들이 정말 많았는데 이 말은 오래 기억하고 싶어 저장해뒀다. "마흔 중반이 넘어서 '낭만에 대하여'를 만들었습니다. 그건 30대에 만들 수 없는 노래죠. 그래서 저는 나이가 들수록 더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정말정말 간만에 페이퍼 잡지를 읽었다. 여름호 주제가 '여름과 맥주'. 다름아닌 맥주여서 샀는데 맥주가 아닌 홍진경 인터뷰 기사가 좋았다. 홍진경은 남동생이 인정하는 다독가이고 싸이월드에 일기를 썼던 것을 보면 글을 참 잘 쓰는 사람이다. 인터뷰어가 묻는다. "그래도 진경 님을 사람들이 단순히 웃긴 사람으로만 생각한다면 좀 섭섭할 것 같은데요..." 홍진경이 답한다. "아니에요. 전 제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사람에게 웃음을 준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보고 사람들이 웃거나 기뻐하면 희열을 느끼는 전 천생 예능인이에요. 내가 실제로 우스운 사람이 아니면 되는 거죠 뭐." 실제로 내가 우스운 사람이 아니면 되는 거죠 뭐. 이 문장도 저장해둔다.

     

      오늘은 오전시간에 에어컨을 끄고 집 안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뒀다. 창문에 걸어놓은 풍경소리가 날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가는 처음 듣는 풍경소리에 흠칫 놀라더라. 나를 닮아 겁이 많은 모양이다. 아, 이 시간에 혼자 깨어있으니 너무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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