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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닭집
    서재를쌓다 2019. 11. 14. 22:46



      제주도에서 온 친구와 위례에 사는 친구, 파주에서 퇴근을 한 나. 이렇게 셋이 금요일 밤에 양재에서 만났다. 검색을 해보니 양재에서 집 근처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다. 거의 끝과 끝이었지만, 버스를 한 번만 타면 된다. 우리는 우리의 오래전 아지트 양재닭집에 갔다. 한때 이곳에 정말 자주 왔었다. 바삭바삭한 옛날 통닭에 양도 푸짐하고 장사가 잘되서 그런지 생맥주도 맛났다. 시원하고 톡 쏘는 맛. 여기만 오면 얼큰하게 취했더랬다. 시장 한 켠에 자리잡은 닭집은 여전했다. 맛도 그대로였고, 인기 있는 것도 그대로였다. 우리는 후라이드 치킨 하나와 닭똥집 튀김 하나를 시키고, 맥주와 사이다를 마셨다. 이날 방광염 약을 먹는 바람에 그 시원한 맥주를 마시지 못했더랬다. 간만에 셋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게 오랜만인 것도 같고,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도 같았다. 예전에 비해 양이 지나치게 많아진 닭똥집을 남기고 일어났다. 맥주를 마시지 못하니 막차가 끊기기 전에 일어나는 이런 날도 있는 것이다. 제주에서 온 친구는 코엑스 근처의 숙소로 지하철을 타러 갔고, 위례에 사는 친구와 군포로 가야 하는 나는 길을 건너 중앙차선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정신이 또렷했던 나는 버스앱을 켜고 정류장 이름을 확인해가며 내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가늠해봤다. 버스는 양재에서 출발해 과천을 지나 산본으로 갔다 군포로 왔다. 늦은 시간이라 차는 막히지 않고, 버스 안도 한산했다. 바깥 풍경도 근사했다. 도심의 불빛이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도로를 달리기도 했는데, 그 순간에는 마치 어딘가로 여행을 온 것 같았다. 버스의 종점이 집 바로 전 정류장이었는데, 종점에는 서지 않는다고 안내되어 있어 전전 정류장에서 내렸다. 버스노선을 보니 집으로 가는 버스가 없어 당황해하고 있는데 익숙한 번호의 버스가 정류장에 섰다. 집앞 정류장을 말하니, 좀 돌아서 가죠 뭐, 타요, 하신다. 아저씨는 집앞 정류장에 나를 내려주시고 유턴을 해 차고지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조금 지나있었다. 이 정도면, 금요일 밤에 친구를 또 불러내 우리가 애정하던 양재닭집에서 닭을 양껏 먹고, 시원하고 쏙 쏘는 생맥을 양껏 마시고, 어쩐지 용기가 나는 수다를 양껏 떨고 들어올 수 있겠다 싶었다. 버스를 타고 여행온 듯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집에 도착하겠지. 아, 이 날 단풍잎이 흥건했다. 한밤에도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게 환히 보일 정도로. 다시 가야지. 기다려라, 양재닭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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