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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의 이유
    서재를쌓다 2019. 6. 17. 22:30



      에피소드로 가득한 바르셀로나의 나홀로 놀이동산 체험기를 페이퍼로 써갈 생각이었다. 제목이 <여행의 이유>인 줄 알면서도 나는 이 책에 김영하의 여행체험담이 가득할 거라고 생각을 했더랬다. '추방과 멀미'에는 기대했던 에피소드가 있었다. 중국비자가 필요한 줄 모르고 출국을 한 뒤 바로 추방당한 작가의 생생한 경험담. 이런 에피소드가 그득하면 <여행의 이유>를 절로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튼 여행담이 적어 아쉬웠다. 오월의 시옷의 책은 내가 선정했는데, 제일 큰 목표는 많은 사람들이 읽어오기. 독서모임이면서 그동안 안 읽은 책들이 많았다. 얇고 잘 읽힐 것 같아서 선정했는데, 잘 읽히지 않았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읽은 이가 과반수 이상. 일단의 성공. 김영하 작가가 <대화의 희열>에 나와 여행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들이 좋더라. 이 책에서 제일 좋은 부분은 책을 끝까지 읽어야만 읽을 수 있었다. 작가의 말에 있었기 때문. 


      바로 이 부분이다. 나와 함께 여행했던 여러 동행들에게 직접 써서 건네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고맙고 미안했다고. 앞으로의 동행에게도. 고마울 거고 또 그만큼 미리 미안할 거라고. "이 책에 도움을 준 고마운 이름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여행에서 내가 만난 모든 이들, 돈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간에, 재워주고 먹여주고 태워준 무수한 타인들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특별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들은 있다. 바로 긴 여행길에서 나를 참아준 동행들이다. 가끔은 별 것 아닌 일로 다투기도 하고, 날선 말로 감정을 다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함께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느낌을 공유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었던 이들. 이들이 없었더라면 여행은 그저 지루한 고역에 불과했을 것이다. 눈을 감으면 그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지구에서의 남은 여정이 모두 의미 있고 복되기를 기원해본다." (p.213-214)



    (...)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 18쪽

     

    (...) 인간은 언제나 자기 능력보다 더 높이 희망하며, 희망했던 것보다 못한 성취에도 어느 정도는 만족하며, 그 어떤 결과에서도 결국 뭔가를 배우는 존재다. 

    - 23쪽


    (...) 마이너리그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원래 추구하던 것과 다른 것을 얻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불행했을 리는 없다. 그들은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자기 인생을 살아냈다. 경기에 출전해 최선을 다했고, 사랑하는 파트너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은퇴한 후에는 코치가 되어 후진을 양성하거나 다른 일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래 얻으려던 것('메이저리거 되기')보다 더 소중한 교훈들을 얻었(거나 최소한 얻었다고 믿었)을 것이다. 어쨌든 살아남지 않았는가?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있고, 남 보기에는 보잘것없을지언정 평생을 들여 이룬 작은 성취가 있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 24쪽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 51쪽

     

    (...)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하지 말았어야 할 말부터 떠오르고, 밤이 되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게 된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를 말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 게 상책이나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게 된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 81-82쪽


    (,,,) 그렇다면 그냥 현재를 즐기자. 현재는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과 마주 앉아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 미래는 포기하고 현재에 집중하자고 생각했고 그것은 사실 내가 모든 여행에서 택하는 태도이기도 했다. 

    - 109쪽


    (...) 여행을 거듭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작가는 '주로 어떤 글을 쓰'는지를 굳이 설명해줄 필요가 없는 이들, 즉 그 글을 읽은, 다시 말해 독자에게만 작가라는 것을. 

    - 168쪽


       비슷한 일을 소설이 한다. 부부관계의 파경을 다룬 소설을 읽고 나면 독자 자신의 부부관계도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된다. 탁월한 문장력으로 맥주의 맛을 묘사한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문득 냉장고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그때 마시는 한잔은 늘 경험하던 그 맛이 아니다. 문득 새롭다. 

    -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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