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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치집
    모퉁이다방 2019. 6. 15. 08:26



       요즘 동생은 집 계약 문제로 고민이 많다. 세상 일이라는 건 정말 쉬운 게 하나도 없구나. 퇴근길에 합정역에서 6호선을 타려는데, 상암에서 축구 하는 날이라 사람이 정말 미어터지게 많았다. 그 와중에 누가 잘못 건드린 건지 화재경보기도 울렸다. 이렇게는 도저히 못 타고 갈 것 같아 을 빠져나왔다. 하늘과 바람이 무척 좋은 날이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초여름 날씨. 고민 많은 동생(답답할 땐 수다와 걷는 것이 최고다)과 6호선을 타지 못한 나(그 날의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는)는 마포구청역에서 만나 함께 걷기로 했다. 불광천 길은 올곧아서 옆에서 냄새로 유혹을 하는 고깃집도 없고, 자주 멈춰야 하는 횡단보도도 없다. 그냥 쭉 걷기만 하면 된다. 


       그 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가 동생이 집 건너편에 공사를 하던 집이 일본식 우동집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 집은 예전에 꼬치를 팔았었는데 제일 처음엔 친구부부가 공항 가기 전에 하룻밤 자러 와서 함께 갔었고, 이후에는 만나는 사람과 동생과 함께 갔었다. 친구부부에게는 말을 이쁘게 하는 귀여운 남자아이가 생겼고, 그 날 동생과 만나는 사람은 두 번째 만났는 거였는데 그 사람이 취해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동생이 하고픈 말을 하지 못했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나는 그 날 그 사람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고 말았는데,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사람과의 수다는 여전하다. 


       아무튼 동생이 그 꼬치집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찾아보니 유명한 집의 체인이란다. 주로 우동을 파는데, 꼬치도 파는 것 같다고.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그러면서 다 걷고 거기 가서 꼬치에 시원한 생맥주를 한 잔 하면 그리 살이 찌지 않을 거라 제안했다. 그래, 인생 뭐 있나. 그 집에 가기로 결정했다. 집 고민이 사라졌고,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이 길의 끝에 꼬치와 시-원한 생맥이 기다리고 있다구. 길을 다 걸었고, 고급스럽게 바뀐 우동집에 입성했다. 활짝 열린 창가에 나란히 앉는 넓직한 좌석이 있었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꼬치와 생맥 두 잔을 주문했다. B꼬치 세트에는 닭껍질이 없어 베이컨방울토마토 닭껍질로 바꿔달라고 했다. 


       맛있더라. 꼬치도 생맥도. 생맥은 카스인데 맛있었다. 초여름 날씨가 카스 생맥 맛도 살려주는구나. 숯불에 구운 꼬치도 맛났다. 염통도 쫄깃하고, 베이컨을 두른 아스파라거스도 아삭아삭 짭조름하고, 소스를 얹은 치킨살도 통통하니 맛났다. 고소하고 바삭바삭한 닭껍질은 말할 것도 없고. 짭조름하게 간이 된 것이 어찌 이리 바삭한 것인가. 생맥 한 모금을 하고 닭껍질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면 입 안에서 살살 녹네. 역시 유명한 집이라 다르구만, 생각하는데 어찌 이상하다. 내가 아는 껍질 맛이다. 어째 여러 번 먹어본 맛인데, 닭껍질은 죄다 이렇게 맛있는 것인가. 아닌데. 나는 이 집이 그 집 같다고 말했다. 아직 아이가 태어나지 않은 친구네와 온 곳. 쉴새 없이 말을 쏟아냈던 그 사람과 온 곳. 동생은 그럴리가 없다고 다른 집으로 바뀐 거라고 했는데, 결국 계산을 할 적에 물어봤다. 혹시 전에 그 집....인가요? 사장님은 환하게 웃으며 그렇다고, 전기 등 안전 문제로 리모델링이 꼭 필요했다고 말했다. 알아봐주셨네요오- 동생은 어쩐지 맛있더라구요, 라고 응하며 카드를 받았다. 닭껍질 맛도 몰랐으면서! 


       아무튼 다행이다. 내가 이 집 닭껍질 꼬치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 얇디 얇고 작디 작은 꼬치가 두개에 칠천원이라는 게 너무너무 슬프지만. 그래도 없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바람을 마주할 수 있는 근사한 창가 자리까지 생겨서. 많이 걷고 꼬치 먹으러 또 가야지. 시원한 카스 생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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