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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년
    모퉁이다방 2018. 12. 4. 22:19



       G가 H에게 물었다. 왜 결혼이 하고 싶지 않았어? H는 평생 연애만 할 수 있으면 그러고 싶었다고 했다. 연애는 둘의 관계만 생각하면 되지만, 결혼은 그렇지가 않으니까. 나의 가족과 상대방의 가족, 그 속의 많은 일들을 생각하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G는 그렇지, 라고 대꾸했다. 몇달 전만 해도 그런 현실적인 말들이 서운했는데, 이제는 그 말들을 여러번 곱씹어본다. H의 그 말을 곱씹고 곱씹고 곱씹어 보니 G도 그랬다. G에게도 어려운 일이고, 낭만적이지만 않은 일, 현실적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정말 '그렇지' 였다. H는 한참 뒤에 말했다. 그런데 너랑은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H의 동네에 맛있는 돼지갈비집과 정말 맛있는 마른오징어를 파는 슈퍼가 있다. 어느 주말 저녁, 고깃집에 가서 마주보고 앉아 돼지갈비를 맛나게 구워먹고, 맥주를 나눠 마셨다.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오징어와 캔맥주 하나씩을 샀다. 골목길에서 H가 말했다. 이런 게 결혼이라면 하고 싶다고. 평일에는 일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맛있는 음식을 해먹고, 일주일에 한 번은 맛있는 곳에서 외식을 하고. 그때도 G는 그렇지, 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티격태격 싸우고, 애정을 나누면서 맞춰 나가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결이 너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만나고, 얘기하고, 손을 잡다보니 그 사람의 어떤 점이 나를 좀더 밝게 만들어 주고, 힘이 되어주고, 달라지게 만들어 준다는 게 느껴진다. 아직 많이 멀었지만 우리 둘이 어떤 길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게 느껴지는 요즘, 더듬어보니 만나기 시작한 뒤 일년이 되었다. 이맘 때쯤 만나기 시작했다. 만날 때마다 뚱한 얼굴로, 말도 별로 하지 않고, 술도 한동안 못 마신다고 하고, 어색하게 식사와 차를 하던 시절, 그는 이 사람이 왜 자신을 만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매번 저렇게 뚱한 얼굴을 하고서. 그런데 어쩐지 더 만나보고 싶어 이번주에 볼까요? 하면 쌩하게 거절할 것만 같던 그 여자가 매번 그래요, 하면서 나오더란다. 그러다 아, 이 사람은 거절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그러면 내가 말해주는 수밖에 없겠다고 결심을 했던 저녁에 마음이 전달되었다. 느리고, 표현을 잘 못하고, 말하지 않고 다 알아주길 바라던 까탈스런 사람을 일년동안 만나주어 고맙습니다. 


       서른아홉, 마지막 달이 시작되었다. 여름 즈음인가 뭔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는데, 가을이 지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느리게 느리게 지금의 내가 된 것은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부러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것과 느끼는 것을 온전히 감사해하는 사람이 되자고. 그렇게 계속계속 생각을 하니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도 같다. 좋은 십이월을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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