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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
    모퉁이다방 2018. 10. 25. 21:38



        언제 고백을 했더라. 열렬한 야구덕후라고. 뭐라고 고백을 했더라. 시작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시즌이 시작되면 첫 경기는 꼭 보러 가자고 했던 말은 생각난다. 고척에서 하는데, 돔구장이라 미세먼지도 없고, 춥지도 않다고. 물론 생맥주도 있다고. (야호) 내가 예매를 했는데, 야구장 좌석을 잘 몰라서 엄청난 중간 자리로 했더니 들어갈 때 고생해서 살짝 얼굴을 찡그린 것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맥주덕후인 내게 더 곤혹인 자리였다. 맥주를 마시면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 나 화장실 가자고 옆 사람들을 다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 뒤로 좌석 예매는 그 아이 전담.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거다. 몇 년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자신은 한화 팬이라고. 어릴 때부터 줄곧 팬이었다고. 아버지도, 동생도 한화 팬이고, 친구들도 한화 팬이라고. 그러니 저 유니폼을 사줄게, 입어보자, 라고. (사지 않았다) 그리고 만날 때 야구 결과를 슬쩍슬쩍 보게 되더라도 화내지 말아달라고 했다. (화 냈다) 그렇게 함께 고척에 가고, 잠실에 가고, 대전에도 갔었다. 한 사람은 야구를 보러, 한 사람은 야구장 맥주를 마시러. 야구장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맥주맛이 좋았는데, 우리가 갈 때마다 지는 바람에 그만뒀다. (한화를 위해서) 그렇게 야구장 맥주에만 관심이 있고, 던지고 치고 달린다, 1루와 2루와 3루가 있다, 운동선수지만 살이 있는 선수들이 있다, 식의 발야구 경험 정도 밖에 몰랐던 내가 병살타, 불펜, 직관 등의 야구용어를 익혀가고 있다. 집에서 9회말까지 야구를 본다고 저녁 내내 티비를 차지하고 있어 동생을 괴롭게도 했다.  


       그애는 프로 야구도 보고, 사회인 야구도 직접 하는데 어느 날 이런 고백을 했더랬다. 이십대 때 아주 많이 힘들었을 때,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웠을 때, 그때 자기한테 야구가 있었다고, 야구 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보고, 하고 있다고. 힘들 때 함께 해 준 아주 오랜 친구라고. 그전에는 만나서 몰래 야구를 보고 있으면 구박했는데, 그뒤로는 함께 본다. 함께 결과를 궁금해하고, 걱정하고, 좋아라 한다. 한화팬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는데, 마침 올해 십 여년 만에 좋은 결과들이 나와 그동안 한화팬들이 홍길동과 같은 존재였다는 걸 알게 됐다. 팬이어도 팬이라고 말할 수 없는 존재. 너무 못해서 좀 부끄럽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존재. 언젠가 잘 할 거라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믿고 응원하는 존재. 마음 속 깊은 곳에서만. 세 번의 직관(하하)에서 그 아이는 그래도 응원은 한화가 제일 멋있어! 라고 뿌듯해하며 육성응원에 동참했다. 육성응원은 (내가 보기에) 경기 후반부 한화에게 힘이 필요할 때, 모두들 일어나 뒷짐을 지고 뱃속 깊이에서부터 무언가(이를테면 한 같은 것)를 끌어내, 그리하여 허리가 뒤로 꺽일 정도로, 또박또박 한 글자 한 글자 끊어가며 구호를 외치는 것이다. 다같이 오로지 육성으로. 최강 한화, 이런 거. 우연인지 내가 (그에게는) 행운의 여신인지 올해 한화는 포스트시즌까지 진출했다. 비록 포스트시즌에서 잘 하진 못했지만. 포스트 시즌에서 잘못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옆에서) 몇마디 하니, 그애가 그런다. 그러지마. 못해도 우리팀이야. 마지막 경기까지 다 보고, 내가 댓글을 보니 막판에 감독이 잘 하지 못했다는 말이 있던데? 그러니 또 그애가 그런다. 그런 애는 진정한 한화 팬이 아니다. 우리팀 잘했다. 정말 잘했다. 내년에 더 잘하면 되고, 더 잘할 거다. 우리팀인데. 내년에도 야구장 맥주는 맛나겠지. 올해 맥주보이가 쏴주는 생맥은 못 마셔봤는데, 내년에는 꼭 마셔야겠다. 내년 직관 때는 그애 팀이, 아니 우리팀이 이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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