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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월
    모퉁이다방 2018. 10. 1. 20:27

     

     

       지난주는 좋지 않았다. 놓쳐버릴까 조마조마한 순간이 있었다. 지난주의 끝, 다짐했다. 시월에는 좋은 시간만 보내겠다고. 단단한 것을 굳게 믿고,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 서늘한 길을 오래 걷겠다고. 시월이 되고 공기가 차가워지니 살 것 같다. 이제 코끝이 바알갛게 시려지는 계절이 오겠지. 두터운 목도리도 하고. 토요일에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울적해하는 내게 평소에는 하지 않던 이야기들을 해줬다. 모든 건 장단점이 있어. 그 이야기들은 내 태도를 바꿔주고, 마음의 여유를 주었다. 우리는 짙은 파란색 두툼한 목도리를 함께 봤다. 추석에 만난 숙모는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마음이 무척 괴로울 때 하던 일을 멈추고 곧장 부엌으로 가서 이것저것 재료를 꺼내 칼질을 하고 불을 지피고 음식들을 볶아내다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고. 나는 탁탁탁 칼질 소리가 나즈막하게 퍼지는 조용한 오후의 부엌을 생각해봤다. 살짝 열어놓은 문으로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와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는 햇살이 좋은 날의 부엌. 음악도 틀어놓지 않고, 그저 음식 다듬는 소리만 나는 부엌. 그 소리를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구월에 접이식 블루투스 키보드를 샀다. 옅은 골드빛인데 속은 하얗다. 오른쪽 문을 열고, 왼쪽 문도 열면 하나의 완벽한 키보드판이 된다. 처음에 한 번 설정해놓으니 그 다음번에는 열기만 하면 핸드폰과 연결이 된다. 고향집에서 나는 오지은의 책을 다 읽고, 좋았던 구절을 키보드를 펼치고 탁탁 소리를 내며 기록해뒀다. 음악도 없었고, 키보드 소리만 가득했다. 구월의 마지막 날 들은 말들은 오래오래 기억해둬야지. 그 말들이 있어 시월을 잘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첫 붕어빵을 함께 먹기 위해 천원짜리 지폐 두 장은 남겨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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