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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에르네스
    여행을가다 2017. 6. 26. 00:52


       슬슬 조식 걱정이 되었다. 이 조식이 12일동안 나올 것이다. 빵을 두 개 주는데 하나는 바게트, 하나는 매일 바뀌는 듯 했다. 금요일은 달달한 도넛을 주었는데, 첫날 빵 두개를 다 먹어 너무나 배가 불렀던 게 생각나 가지고 온 지퍼팩에 싸두었다. (결국 먹지 못하고 버렸다는) 너무 물리면 커피만 마셔야 겠다.

       구체적으로 하루하루의 일정을 짜두지 않아서 일단 걸어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가보기로 했다. 지도를 검색해보니 숙소에서 걸어서 19분 거리이다. 걷다 보니 시장이 나와서 들어가서 구경도 하고, 수박도 사 먹었다. 무척 더웠다. 도착해보니 성당 근처의 공원에도, 성당에도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역시 아침 일찍 오는 것이 좋겠다. 어딜 갈까 고민하다 책을 읽다 궁금했던 근처의 산트 파우 병원으로 가기로 하고, 걷는 시간이랑 똑같이 걸리는 버스를 탔다. 내려서 병원까지 걷는데 나즈막한 언덕 같은 곳이 있었다. 올라가면 시내가 조금이나마 내려다보일 것 같더라. 그렇지만 화장실이 급해 그냥 내려왔다. 산트 파우 병원은 건축가 몬타네르가 지은 것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책에서 읽고 가고 싶어서 검색을 해봤었는데, 가우디가 환자들이 병원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볼 수 있도록 각도를 조금 틀어서 지어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입장권을 사는데, 오늘은 어떤 행사 때문에 이 건물들은 들어가지 못한다고 지도에 표시해줬다. 그래도 괜찮냐고. 둘러보다 보니 준비하는 것이 공연 같았다. 밤에 야간투어 때에 들었는데 아마도 산트 호안 축일 관련 행사였던 것 같다. 

        사실 이곳에서의 로망이 있었더랬다. 정원의 벤치에 오랜시간 앉아 병원을 보며 사색을 하는 것.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더운 것. 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아 있어보았는데, 시원하긴 했지만 사색을 하기엔 너무나 더웠다. 얼마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났다. 건물들과 공원이 참 아름다웠는데, 이런 곳에서라면 저절로 병이 치유되겠다 생각이 들 정도였다. 관광객들은 모두 다 사그라다로 간 것인지 산트 파우 병원은 사람들이 거의 없어 조용했다. 그래서 좋았다. 마지막 건물의 2층에 오르니 사그라다 성당이 멀리 보였다. 몬타네르 건축가에 대한 흥미가 생겨 검색해보았는데, 정보가 그다지 없었다.

        버스를 타고 성희가 꼭 가보라고 추천해준 엘 나시오날에 갔다. 해산물, 스테이크, 타파스 등 4개의 푸드 코트가 있는 곳인데, 무척 핫한 곳이라고. 스테이크가 정말 맛있었다고 꼭 먹어보라고 했다. 일단 맥주를 시키고. 메뉴판을 봐도 잘 모르겠어서, 물어봤다. 친구가 지난 여행 때 여기 왔었어요. (사진을 보이며) 그 친구가 이걸 먹었어요. 그러자 잘 생긴 웨이터가 20유로가 조금 넘는 메뉴를 가르켰다. 이걸로 주문할게요. 이 분이 신입인지, 이 분 옆에 계속 매니저인 듯한 여자분이 따라 붙었다. 그는 잘 생겼으나 나의 정직한 발음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웨이터가 가우뚱하면 매니저언니가 오더니 발음이 구리지만 나는 알아 들었다 하는 표정으로 요청들을 처리해줬다. 맥주를 작은 걸로 시켜 금새 마셔버렸는데, 왠지 스페인에 와서 와인 한 잔 안 마셔보면 안 될 것 같아 레드 와인을 시켰다. (잘생긴 웨이터는 알아듣지 못했는데, 알아 듣는 척 하더니 주문을 넣지 않았다!) 매니저 언니가 한 잔만 시키는 거냐고, 강한 걸 원하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는데, 양도 많이 줘서 마시면서 머리와 속이 핑핑 도는 줄 알았다. 그래도 시킨 거는 다 마시자며 물과 함께 잘 마셨다. 스테이크도 맛있었다. 내가 미듐 웰던으로 시켜서 주인여자가 정말로?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웨이터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잘생긴 얼굴로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챙겨주었으므로 팁을 남겼다. 구린 발음 때문에 영어 울렁증에 빠져 잠시 우울했지만, 푸드 코트를 나오자 알딸딸 한 것이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저녁에 2시간 짜리 고딕뮤지컬야경워킹투어를 신청해놓아서 그때까지 숙소로 들어가서 쉬다 나왔다. 땀을 많이 흘려 씻고 누웠다. 다음에는 어떤 맛집을 갈까 검색해보고 (책을 좀 읽어라. 이 먼 곳까지 몇 권을 가지고 왔느냐.) 약속장소는 가본 곳이나 나는 충분히 헤맬 수 있는 아이이므로 좀 일찍 숙소를 나섰다. 람블라스 거리의 리세우 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20분 정도 걸려 걸어갔다. 헤매지 않고 도착해서 시간이 많이 남았다. 어디 들어가서 뭘 마실까 했는데 번화가라 마음에 드는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다리는 아팠지만, 그리고 앞으로 2시간동안이나 더 걸어야 하지만, 별 수 없이 람블라스 거리를 좀 걸었다. 람블라스 거리는 어제와 느낌이 달랐다. 어제는 첫날이라 긴장해서 그런건지 실망스러웠는데, 오늘은 활기가 넘치고 괜찮더라.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마음의 문제였나. 구경을 하다 2분 정도의 시간동안 가위로 종이를 오려 옆모습을 만들어주는 예술가를 발견했다. 굉장히 신기해서 갈 때 보고 올 때도 또 봤는데, 갈 때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올 때는 한 명도 없어서 비싸지만 돈을 내고 해봤다. 친구가 잘 돌아다니고 있냐고 물어봐서 사진을 보냈는데, 어, 이 사람 너랑 진짜 닮았다, 라고 했다.

       고딕지구는 밤에 여자 혼자 돌아다니기 힘들다고 해서, 그리고 낮과 밤이 무척 다르다고 해서 2시간짜리 워킹 투어를 신청했다. 투어 이름에 뮤지컬이 들어가는데, 이동하면서 가이드님이 선정한 음악을 들려준다. 그게 독특하고 분위기가 좋을 것 같아 여러 야경투어 중에 요걸로 신청했다. 이벤트를 해서 반값이기도 했다. 대부분 낮에 가우디 투어를 한 사람들이 참여한 거더라. 삼삼오오. 나랑 어떤 아저씨 한 분만 혼자서 온 듯 했다. 나름 친해지고 싶었는데, 열심히 걸어다닌다고 기회가 없었다. 리세우 오페라 극장에서 시작해 구엘 궁전 앞에서 설명을 듣고, 레이알 광장에서 가우디의 가로등이 켜지길 기다렸다가, 조지 오웰 광장과 피카소의 아비뇽 골목을 거쳐 산펠립 네리 광장으로 이동을 했다. 중간 중간 맛집과 쇼핑 스팟, 현지인처럼 보이려면 이곳에서 성호를 그어야 한다는 등의 정보 등을 알려주셨다. 왕의 광장에서는 금요일마다 사람들이 연주하고 춤을 추는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날도 공연이 있었다.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신나게 춤을 추는 걸 계단에 앉아 잠시 지켜봤다. 라몽 베겡게르 광장과 대성당을 거쳐 까딸루냐 오페라 극장 앞에서 투어를 마쳤다. 가이드님은 이 코스를 다음날 똑같이 낮에 와서 걸어보는 걸 추천한다고 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 생활을 하다 우연히 오늘 들은 음악들을 다시 듣게 된다면 오늘 이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걸었던 밤을 기억해주었으면 참 좋겠다는 말도 했다. 가우디 투어는 하루종일이고, 책도 읽은 터라 조용히 다녀보고 싶어서 하지 않았는데, 했으면 어땠을까 야경투어를 하면서 생각을 했더랬다. 뭐 각각의 장단점이 있겠다. 아무튼 야경투어는 잘 한 것 같다.

       이날 가이드님이 말해준 것 중에 오늘밤부터 내일 새벽까지 여기 사람들은 밤을 새워 놀 거란다. 산트 호안 축일이기 때문에. 성 호안은 성 요한. 어쩐지 바르셀로나에 온 첫날에도 총소리인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폭죽소리가 계속 들렸는데. 찾아보니 성 호한 축일 2주 전부터 폭죽을 터뜨리면서 축일을 기념한단다. 이 날이 우리의 하지처럼 여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고. (응? ;;;) 가이드님은 지금 바다로 가면 여기 사람들이 어떻게 노는지 볼 수 있어요, 라고 했는데 시간은 이미 11시. 밤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도 거리 곳곳에서 폭죽은 계속해서 터지고 있었다. 물을 사러 슈퍼에 들어갔는데, 귀여운 라벨의 바르셀로나 크래프트 맥주가 있어서 샀다. 계산을 하려는데, (아마도 인도쪽) 11시가 되었는데도 잠을 자기는 커녕 똘망똘망한 눈빛을 빛내며 동생이랑 놀고 있던 주인집 아들은 고 귀여운 얼굴로 밤손님에게 말을 걸었다. 올라! 올라. 께딸? 께딸. (아 귀여워-) 비엔? 씨, 비엔. 동생이 뭐라고 하자 단번에 달려가서 안아준다. 너무나 귀여운 것. 이번에는 내가 먼저 인사했다. 아디우스. 아디우스! 피곤했지만, 꽉 채운 하루를 보내 뿌듯했다. 까사밀라 썸머나잇 예약을 하고 너무나 피곤해 맥주는 한 병만 마시고 잠들어 버렸다. 새벽에 깨서 양치를 하고, 안경을 벗고, 스탠드를 끄고 잤다. 새벽에도 폭죽은 계속 터지더라.


    바르셀로나, 셋째날. - 오늘의 행복했던 일 : 밤의 슈퍼에서 내게 말을 걸어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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