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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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는 밤티비를보다 2009. 4. 29. 00:21
집에 들어와서 손이며 발이며 얼굴이며 깨끗이 씻고, 동생이 돈들여 사온 화장품들을 꼼꼼하게 바르고 (생색녀), 오늘 내가 산 아이크림도 아껴 바르고 (피부 나이는 일 년씩 나이드는 게 아니니까) 뽀송뽀송한 얼굴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지하철 안에서 엠피쓰리 플레이어로 옮겨 놓은 '유희열의 스케치북' 첫 방송을 보다 말았다. 이소라가 나왔는데, 첫 곡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였다. 이소라 옆에 기타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아무도 연주하지 않는데, 그 기타에서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소라의 노래가 시작됐다. '너에게 편지를 써 모든 걸 말하겠어.' 아침의 지하철에서 이 노래를 듣고 먹먹해졌던 때가 있었다. 나는 편지를 쓸 너도, 모든 걸 말할 무엇도 없는 사람인데도 그랬다. 그냥 갑자기 누군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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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회 아카데미 시상식티비를보다 2009. 3. 9. 23:41
나는 눈물이 많은 사람인 게 확실하다. 예전에도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았나 떠올려보면, 흠.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이 정도는 아니였던 것 같기도 하고. 내 안에서 언제든 샘 솟을 수 있게 출동 준비중인(아리수 광고처럼!) 물들이 이리도 많다니. 어떤 날은 울고 있으면서도 놀라울 지경이다. 아무튼 이건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확실해지는 '병'인것 같다. 내 나이 마흔이 되면 이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러댈 게 분명한데. 그 꼴을 어떻게 보나 싶다. 지하철 안이었고, 퇴근길이었다. 씨네21을 읽고 있었다. 귀여운 박보영이 표지로 나온 호였는데, 아카데미 관련 기사를 읽고 또 울컥 눈물이 솟아지는거다. 얘들아, 지하철 안이란다. 사람들이 많잖니! 타일러봐도 소용없는 일. 나를 울린 기사는 케이트 윈슬렛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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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세상티비를보다 2009. 2. 8. 02:11
우리는 짧은 지름길을 걷고 있었다. B가 말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그렇게 헤어질 수 있느냐고. 어제까지만 해도 사랑한다 말했던 사람이었다고. 그런데 갑자기 어떠한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서는 바이바이, 해버렸다고. 우리는 그래도 두 사람의 이야기를 알고 있으니 그렇지만, 송혜교는 어떻겠느냐고. 얼마나 힘들겠냐고. 얼마나 답답하겠느냐고. 이건 B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의 송혜교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B는 말했다. 왜 현빈이 송혜교랑 헤어진지 알겠어요? 왜 내가 그 자식이랑 헤어지게 된 건지 알겠어요? 나는 그 때 술 마시는 일에, 사람 만나는 일에 바빴던 월요일과 화요일을 보내느라 애청하던 를 여러 회 놓쳤다. 나는 B에게 내가 안 본 사이 그렇게 사랑했던 둘이 어떻게 그렇게 한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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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 2006년과 2008년의 서울티비를보다 2008. 8. 5. 16:25
아직도 이따위 일에 가슴이 먹먹해지다니. 서둘러 익스플로어 창을 닫고 냉장고를 열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달콤한 나의 도시'를 펼쳐놓고 통통 튀어다니는 문장들을 때려잡아 머릿 속에 꾸역꾸역 집어 넣었다. 결국 은수는 김영수를 떠나보냈다. 서른 둘, 다시 혼자가 된 은수는 내리는 비를 맛 보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서울의 맛이라고 했다. 때마침 책을 다 읽은 이 곳의 서울에도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창 밖으로 손을 뻗어 비를 맛보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서울의 맛. 이건 2006년 8월의 나의 흔적. 2006년 8월의 나의 말이다. 2006년. 이런 말도 덧붙였다. 그 아이는 또 다시 연애를 시작하고, 나는 여전히 연애를 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 사이에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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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검시관과 CSI티비를보다 2008. 8. 1. 23:06
종신검시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사실 난 의 구라이시가 별로였다. 모두가 칭송해마지않는 그야말로 종신검시관, 구라이시였지만 내게는 독불장군이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이 책에는 8가지 사건들이 들어있다. 모두 종신검시관, 구라이시가 등장하는 단편들. 구라이시는 현장에 소리없이 쓰윽 나타나 단번에 사건의 진상을 알아차린다. 그는 길게 말하는 법이 없다. 이 사건은 자살이네. 이 사건은 타살이야. 이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지. 그는 사생활에서는 난잡하지만 일에서는 완벽하다. 완벽주의자. 실수는 절대 없다. 의미를 담고 일부러 실수하지 않는 한. 그는 독보적이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질투하거나, 존경하거나 둘 중 하나다. 같이 일을 한다거나, 힘을 합치고 머리를 합쳐 사건을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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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달콤한 인생, 안녕티비를보다 2008. 7. 22. 02:17
나는 이 드라마를 아주 열심히 봤다. 주말 밤, 집에 있을 경우 꼬박꼬박 챙겨 봤다. 거의 대부분의 주말 밤에 집에 있었기때문에 거의 다 본 셈이다. 그건 전적으로 드라마의 초반, 오타루에서의 화면들 때문이었다. 언젠가 혼자, 혹은 누군가와 단둘이 홋카이도를 여행하고 싶은 소망이 내게 있다. 그건 영화 탓도 있겠지만 내 마음을 더 움직이게 만든 건 윤대녕의 때문이었다. 오래전에 읽어서 이 소설의 배경이 정확하게 어디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눈이 아주 많이 왔고, 이미 눈이 아주 많이 쌓였던 곳. 소설 속 소설가는 어느날 그 곳으로 떠나고, 그 곳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거품 많은 일본 맥주를 마셨다. 아니,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내 기억이 완전히 잘못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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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이 유우, 여름의 한 권티비를보다 2008. 4. 7. 16:21
어느 블로그 메인 화면에서 한 장의 캡쳐 사진을 봤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마치 땀 흘리며 열심히 찾아내고는 나몰라라 쳐박아 두고 지냈던 보물을 찾은 것만 같았다. 어디서 봤더라. 분명히 어느 영화 끝에 나왔었는데. 끝난 줄 알고 끄려고 하다가 튀어나온 이 화면에 마음이 콩당거렸었는데. 야오이 유우가 나왔던 영화 중에 내가 본 게 어떤 거였더라. 기억에 기억을 더듬고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 뒤 찾아냈다. 야호. 슈에이샤(집영사) 서점의 여름에 책 한 권 이상 읽자는 나츠(여름)이치(1) 광고. 반복해서 아주 찬찬히 어루만지듯 이 보물을 감상해주셨다. 그래, 유우가 무라카미 류의 를 읽고 있었지. 그래, 하늘하늘한 원피스와 파아란 하늘. 그래, 다케모토. 맞아, 뒤에 나오던 영상이였어. 그래, 촬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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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최고의 약속 - 히말라야 바람 소리티비를보다 2008. 3. 30. 01:43
눈이 하얗게 뒤덮은 히말라야 정상을 오른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 중 두 사람은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입니다. '생애 최고의 약속'이라는 다소 상투적인 재목의 특집 오프닝을 보고 심드렁했던 마음을 가졌던 것이 금방 미안해져 버렸습니다. 얼마나 게으르고 나약한지 한 시간여의 다큐멘터리 앞에서 나는 또 작아져 버립니다. 짝짝짝. 고맙습니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어서. 그리고 그 속에 강한 당신들이 있어주어서. '생애 최고의 약속'에는 세 사람의 시각 장애인이 히말라야 6476m의 메라피크 등반에 도전합니다. 등반에 앞서 여러 건강 검진과 고산증을 대비한 합숙 훈련까지 마친 세 사람의 각오는 대단했습니다. 장애인이라서 안 된다는 편견을 없애고 싶다, 무엇보다 그 곳에 다녀오면 뭐든 해 낼 수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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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 보이스 앤 로보 - 우주에서 나 자신뿐이니까티비를보다 2008. 3. 28. 03:15
고백하건데 나는 10화의 어떤 부분을 술에 취해 열 번 이상 되돌려봤다. 한 때는 꿈과 희망만 가득했던 만화가와 그의 부인이 있었다. 만화가는 성공했고 돈도 많아졌지만 점쟁이의 말을 맹신해 자신은 곧 죽을 것이고 다음 생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걱정한다. 그의 부인은 꿈과 희망과 사랑이 가득했던 과거를 그리워한다. 정전이 찾아온 순간, 도시는 어둠에 휩싸인다. 성공한 만화가도 과거가 그리운 부인도. '우린 아직 어두운 길을 둘이서 걷고 있어'라고 만화가가 말하는 순간,도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길 위의 사람 앞에 마법처럼 스르르 불을 밝힌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 성공한 만화가는 탄성을 낮게 내지른다. 그리고 자신의 눈에 비친 네모난 창문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꿈과 희망과 사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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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가 살던 곳 - 봄을 만나는 길티비를보다 2008. 3. 24. 12:46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 따닥따닥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습니다. 커피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우산을 펴들고 집 앞에서 거품이 소복히 얹혀진 커피를 사고 들어오는 길에 갑자기 '은어가 살던 곳'이 생각이 납니다. 당장 집에 가서 그 단막극을 다시 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따딱따딱. 우산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엠피쓰리 속의 음악보다 더 훌륭합니다. 아, 요즘 루시드 폴의 '삼청동'을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너무 좋아요. - 컴퓨터를 켜니 샛노란 봄 빛깔의 현미씨가 저를 맞아줍니다. 나풀거리는 롱 스커트를 입고 샛노란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그녀는 하동 터미널에서 내립니다. 높은 샌들은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어째 여행에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다구요. 결국 그 샌들 덕분에 기가 막히게 눈부신 여행을 했지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