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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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조로 - 조승우무대를보다 2011. 11. 13. 22:09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정확하게 기억하질 못하겠지만, 10월의 어느날 내가 한 시인을 만났던 것만은 분명하다. 홍대의 어느 카페에서였다. 시인은 생각했던 것보다 키가 작았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해맑게 웃었다. 소년처럼. 시인에게는 덧니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웃을 때 덧니가 보였다. 어, 웃는다 싶으면 덧니가 보였다. 시인은 그날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기억력이 좋지 않는 나는 다 기억하지 못하고 딱 하나만 기억하고 있다. 이마저도 정확하지 않다. 시인이 말했다. 평소의 자신과 시를 쓸 때의 자신은 조금 다른 사람 같다고. 시를 쓸 때는 평소보다 더 발전된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더 용기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기억력이 나쁜 나는, 시인의 말을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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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여름, 그의 목소리와 기타무대를보다 2011. 8. 21. 21:19
봄이었던 것 같다. 어느 계절에 보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그 드라마 속 계절은 봄이었던 것 같다. 단막극이었고 내가 보았던 부분은 드라마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던 부분. 티비를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거다. 하기 싫어하는 일이지만 방을 닦고 있었다든지, 수첩을 정리하고 있었다든지. 그때 그 음악이 나왔다. 물이 되는 꿈. 물이 되고, 꽃이 되고, 풀이 되는 꿈을 꾸는 노래.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노래를 가만히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게 내가 루시드폴을 들은 온전한 첫 기억이다. 토요일에 소나기가 내렸다. 나는 대학로에 있었다. 소나기가 시작되었을 무렵 아마도 그의 앵콜이 시작되었을 거다. 앵콜곡 마지막 곡이 '물이 되는 꿈'이었다. 참 신기한 노래다. 꿈을 꾸는 대상이 하나하나 차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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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t 아무 것도 아닌 나무대를보다 2011. 8. 6. 20:26
토마스 쿡 - 2집 journey 토마스 쿡 (Thomas Cook) 노래/로엔 동생이 혼자 점을 보러 갔다. 가족들 사주도 조금씩 보아준 모양이다. 언니는 조금 외로운 사주래. 결혼을 못 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조금 외롭대. 금요일에 토마스 쿡 공연을 다녀왔다. 그 공연을 보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동생이 말해 준 사주 생각이 났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 사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외로웠으니 이제 외롭지 않고 싶었다. 어제 버스 안에서 그 사주 생각이 났다. 그리 나쁜 사주 같지 않았다. 나는 예전에도 외로웠고, 지금도 외롭고, 앞으로도 외로울 거고. 외로운 건 이 세상에 나 뿐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자 이 사주가 꽤 근사해졌다. 조금 외로운 사주. 생각해 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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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네번째 봄무대를보다 2011. 4. 3. 00:46
네번째 봄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이소라를 만나고 돌아왔다. 그녀는 조용히 앉아, 때로는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했다. '봄'에서 시작해 '난 행복해'로 끝나는 공연. 그녀가 몇 곡의 노래를 끝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날이 꾸물꾸물해요, 라는 말이었는데 나는 오늘 날이 꿈을 꾸는 것 같아요, 로 알아들었다. 꾸물꾸물. 꿈을 꾸는. 그녀의 말은 내게 늘 그렇다. 기대하던 그녀와 나의 첫번째 봄, 그리고 그녀의 네번째 봄. 어떤 가사들이 또렷하게 들렸다. 아프고, 외롭고, 고독하다는 가사였을 거다. 그 가사들이 또렷하게 들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가 아프고, 외롭고, 고독해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아프고, 외롭고, 고독하지 않았다. 그건 그녀의 말처럼, 그녀가 지은 가사처럼, '올해가 지나면 또 한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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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 또 보자, 멋쟁이무대를보다 2011. 1. 8. 20:13
지난주 목요일,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봤다. 갑자기 예매한 공연. 뭔가 감동받고 싶었다. 너무 무미건조해서. 해서 점심시간에 급예매했다. 혼자 보는 거라, 좋은 좌석도 남아 있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 중에 이 공연을 셀 수 없이 많이 본 분이 있다. 그 분이 엄지손가락 치켜들고 강추하는 공연. 역삼역에 내려 맥도날드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커피 한 잔도 했다. 공연시간도 모르고 왔는데, 세 시간이란다. 시간 가는 줄 모를 거예요, 정말 좋아요. 이 말만 믿고. 평일 공연인데도 자리가 꽉꽉 찼다. 내가 본 공연은 진호빌리. 오늘,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장면을 찾아봤다. 어른빌리가 무대 위에서 비상하는 장면. 빌리가 등장하기 전, 빌리의 아빠와 형의 모습. 이미 눈에 눈물이 가득한 두 사람이 무대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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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낮잠 - 말뿐인 봄인가요무대를보다 2010. 3. 3. 22:52
아직 읽지 못한 소설인 줄 알았다. 허진호 감독이 박민규의 '낮잠'이라는 제목의 단편으로 연극을 만들었다고 했을 때, 내가 아직 안 읽은 소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연극이 시작되니까 알겠더라. 이건 내가 읽은 소설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연극의 결말을 알았다. 해피엔딩. 내가 기억하는 소설의 결말이었다. 내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고 깨달은 순간은, 노년의 영진이 고향에 돌아와 열아홉 시절을 회상할 때. 무대 위에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또 하나의 무대가 보였다. 어디선가 빗소리가 들려왔다. 그 무대, 아니 그 길 위에 코스모스가 그득했다. 남자아이가 뛰어오더니 멈춰섰다. 여자아이도 뛰어왔다. 멈칫멈칫. 결국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에게 우산을 건네지 못했다. 이 장면이 소설에 나왔나. 그렇지 않은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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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는, 루시드 폴무대를보다 2009. 12. 27. 17:29
눈이 내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친구는 분홍색 향기가 솔솔 나는 목욕물을 받아주고는 샤워를 하고 들어가 반신욕을 하라고 했다. 아침에는 김치찌개를 끓여주고, 점심에는 고추장에 밥을 비벼줬다. 함께 쿠키를 만들었고, 달달한 다방커피도 마셨다. 친구 집을 나서는데, 눈발이 날렸다. 물고기 마음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매진되었으나, 기계적 오류로 인해 남은 좌석을 현장에서 판매한다고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연대로 가보기로. 이건 내가 나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그렇게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혼자, 루시드 폴을 만났다. 그리고 다음에도 폴의 공연에는 혼자 와야지, 생각했다. 배를 탄 것 같았다. 무대 위의 하얀 장식에 불이 들어오자 한번도 본 적 없지만 밤의 바다에 떠 있는 오징어 배 불빛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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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시작, 화이트 아웃무대를보다 2009. 12. 14. 22:43
그 날, 첫눈이 왔다고 했다. 늦잠을 잤는데 두 통의 문자가 와 있었다. 모두 지금 눈이 내리고 있다는 내용. 잠깐 흩날리는 눈이었다고 했다. 어쨌든 내가 보지 못한 첫눈이 온 날, 아주 추웠고, 짙은 공연을 보러 갔다. 어찌나 춥던지 어쩜 공연 제목을 이렇게 잘 지었지 싶었다. 그야말로 이 겨울의 시작. 공연장 안도 몹시 추웠는데, 용욱씨(아, 어떻게 불러야 하지. 그와 나는 동갑인데)만 덥다고 했다. 옆에서 형로군(한 살 어리니까. 그래도 이상하네.)은 긴장한 사람은 원래 더운 법이라고 했다. 사실 용욱씨는 덥다고, 긴장했다고 했지만 전혀 긴장한 사람답지 않게 기타를 치고, 멘트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 날, 충무로의 그 겨울에는 용욱씨랑 기타 한 대 뿐이었는데, 이 날, 이 겨울에는 형로군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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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과 손지연무대를보다 2009. 7. 26. 00:50
가 생각나는 밤이다. 내게도 아끼는 영화'들'이 있는데, 가 그 중 하나다. 그 영화'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각이 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전화해주는 사람도 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각나는 영화들도 있다. 봄에는 다가올 초여름의 밤바람이 기대되어서, 여름에는 여름이니까, 겨울에는 와니가 정원에 호수로 물을 뿌리면서 자갈밭 위의 자기 발을 씻어내는 장면이 생각나서. 정말 여러 번 보았구나. 월요일에도 가 생각났다. 그날 나는 오지은을 만나고 있었다. 이름하야 팬미팅 자리. 오지은은 그 말이 쑥스럽다며, '히든 트랙'이라는 이름을 붙여봤다고 했다. 몇 시간을 자리에 앉아서 쉴새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에너자이저' 지은씨의 수다가 끝나고, 그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세 곡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