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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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9모퉁이다방 2018. 12. 23. 21:41
데이트를 하고, 병원에 다녀오고, 친구를 만나고, 집에서 뒹굴거리는 금요일과 주말을 보냈다.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읽고 있던 책 한 권을 끝냈다. 친구는 최근에 J.D. 샐린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보았다고 했다. 더이상 책을 발표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했는데, 죽을 때까지 평생 글을 썼대, 라고 친구가 말했다. 내가 전철에서 마친 책의 작가도 십년동안 발표할 기약이 없는 글을 꾸준히 썼다고 했다. 이 책을 읽고 엘프리데 옐리네크 소설 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 영화 을 보아야지 생각했다. 친구가 추천해 준 도 꼭 봐야지. 친구는 자신의 깊이가 이 정도면, 그것보다 훨씬 못한 글이 쓰여진다고 했다. 그런데 이만큼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싶으니까, 자신의 깊이를 늘이는 수 밖에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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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2모퉁이다방 2018. 12. 20. 22:03
지금까지 열한 줄을 썼다가 모두 지웠다. 모두 다 쓸데없는 이야기다. 동생은 요즘 수영에 빠졌는데, 잠수함이라고 놀림을 받다가 결국 배영에 성공했다. 오늘부터 평영을 시작했단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보면 역시 성공하나 보다. 이 쉬운 진리를 나는 왜 늘 잊어버리는 걸까. 나는 포기가 쉬운 아이다. 수많은 포기가 있었다. 방금 동생이 크리스마스 때 강습은 없고 자유수영을 하는데, 수영장에 캐롤을 틀어준다고 했단다. 갈 거야, 크리스마스 날에, 라고 방긋 웃는다. 오늘은 혼자 남아 야근을 했다. 칼퇴를 하지 못한 날은 뭔가 깊은 감정이 드는데, 그건 업무시간에 쉴 틈이 정말 1분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삶이 계속되어도 괜찮을까, 가끔 생각한다. 내년에는 포기하지 않는 무언가를 하나 이상 꼭 만들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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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3모퉁이다방 2018. 12. 19. 21:12
미세먼지가 많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 이유는 단순히 일회용 마스크가 없어서. 사기 귀찮고. 미세먼지가 많다는 뉴스를 매일매일 들으면서 마스크 회사가 대박나고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어제 동생이 주문한 원두가 왔다. 경주에 있는 커피집에서 넉넉하게 주문해서 먹는데, 다른집 원두를 먹다가 이 커피집 원두를 내려 먹으면 아,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또 계속 먹으면 심드렁해지고. 그런 면에서 원두도, 일도, 사람도 비슷비슷한 것 같다. 늘 곁에 있음을 감사해하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고 다짐해본다. 드라마를 통 보지 않았는데, 요즘 하나씩 보기 시작하고 있다. 제일 빠져 있는 건 . 최근에 두 회 정도 연속으로 보고 푹 빠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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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음악을듣다 2018. 12. 10. 21:38
동생이 닭가슴살을 한봉지 사가지고 와서 내일 닭곰탕 국물을 후루룩 마시고 갈까 한다. 냄비 가득 물을 담고 닭가슴살 세 덩이를 넣었다. 자그마한 마늘도 꼭지를 따고 열 개 남짓 넣었다. 팔팔 끓다가 탁한 거품이 보글보글 생기길래 숟가락으로 걷어줬다. 가슴살 만으로 국물맛이 나지 않을 게 분명하니까 치킨파우더를 크게 퍼서 한 숟가락 넣어줬다. 마침 쪽파 사놓은 게 있다. 내일 아침에 끓일 때 넣으려고 송송 썰어두었다. 닭가슴살을 갈기갈기 찢어놓으려고 잠시 건져뒀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적당히 식은 살을 먹기 좋게 찢고, 조금 더 국물을 졸여야지. 밥솥이 고장이 나서 고민 중이다. 아주 작은 밥솥을 살지 냄비밥이나 햇반으로 연명해볼지. 곽진언의 노래를 듣다보면 가슴이 철렁하고 해제되는 순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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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모퉁이다방 2018. 12. 9. 20:00
휴가가 끝났다. 내일부터 다시 일상이다. 영화를 세 편 보았고, 계획했던 책은 한 권도 제대로 읽질 못했다. 병원을 두 번 갔고, 담당 선생님이 병원을 옮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허기가 자주 밀려와 이것저것 먹었고, 예능을 많이 보았네. 초대를 받고 딸기와 포도, 아가 그림책을 사들고 친구의 친구집에 가기도 했다. 즐겨보는 예능인 짠내투어의 부다페스트 편을 보다가 그래, 헝가리도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갈 수 있었을텐데, 생각하다 나 돈이 없지, 결론에 다다랐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이것저것 먹으면서 돈을 꽤 많이 썼다는 것이 눈물겨운 현실. 신서유기가 없는 일요일을 보내야 한다. 화이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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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후르츠극장에가다 2018. 12. 7. 14:16
제주에서 귤을 보내줬다. 유기농 귤이라 빨리 먹어야 한다는 메모가 있었다. 며칠 두었더니 상자 아래에 터지기 시작하는 귤들이 있어 어쩌지 하다 귤잼을 만들었다. 히라마쓰 요코의 조언대로 밤에 잼을 만들기 시작했다. 터지고 무른 귤들을 골라내 껍질을 벗겨내고 한 알 한 알 떼어냈다. 인터넷의 레시피대로 믹서에 돌리지 않고 나무주걱으로 꾹꾹 눌러 과육이 나오게 터트렸다. 그렇게 끓이고, 설탕과 꿀을 넣고, 가끔 주걱을 휘저으면서 생애 첫 귤잼을 완성했다. 집안 가득 달달한 냄새가 가득했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먹기 좋게 식어있었다. 사놓은 식빵이 없어 요거트에 넣어 먹었다. 레시피는 를 그대로 따랐다. "중요한 것은 왁스를 칠하지 않은 제철 과일을 사용하는 것. 산에 강한 냄비를 사용하는 것. 그리고 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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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서재를쌓다 2018. 12. 5. 22:55
퇴근 길이었나. 약속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던 길이었나. 몇 주 전이었고, 합정역이었다. 망원방향의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는데, 갑자기 울부짖는 소리가 나서 모두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여자분과 남자분이 있었다. 아주머니, 아저씨 보다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가까웠다. 여자분이 어찌보면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며 남자분의 가슴과 등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있었다.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끊겼다 들렸다 끊겼다 했다. 주위를 의식한 게 아니라 너무 서러워 소리가 끊기는 거였다. 그 순간 남자분의 표정과 소리를 보고 듣지 않았더라면 그냥 여자분이 만취 상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비틀거리며 울부짖는 여자분을 부축하는 남자의 얼굴에 울음이 섞인 절망이 보였다. 그런 절망의 표정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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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리극장에가다 2018. 12. 5. 12:24
휴가 첫날. 늦어서 택시를 탔다. 커다란 횡단보도를 건넌 뒤 모범택시 바로 뒤에 오는 개인택시를 잡았다. 자켓 차림에 머리카락을 반듯하게 넘긴 기사님이었다. 목적지를 말했다. 택시 안은 라디오 소리만 들리고 조용했다. 우회전을 했다. 기사님이 입을 여셨는데, 실은 계속 직진을 할 줄 알았다고 했다.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던 중이었는데, 그곳에서 택시를 잡길래 직진손님인 줄 알았다고. 뭔가 정중하게 이야기 하셔서 나도 모르게 죄송해요, 라고 말했다. 기사님이 아니예요, 라며 영화 보시러 가시나봐요, 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틀어놓은 티비로 예능 프로그램이 나왔고, 한때 이 예능에 출연했던 정치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다. 지금도 그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라고 반문하니, 있지요,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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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모퉁이다방 2018. 12. 4. 22:19
G가 H에게 물었다. 왜 결혼이 하고 싶지 않았어? H는 평생 연애만 할 수 있으면 그러고 싶었다고 했다. 연애는 둘의 관계만 생각하면 되지만, 결혼은 그렇지가 않으니까. 나의 가족과 상대방의 가족, 그 속의 많은 일들을 생각하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G는 그렇지, 라고 대꾸했다. 몇달 전만 해도 그런 현실적인 말들이 서운했는데, 이제는 그 말들을 여러번 곱씹어본다. H의 그 말을 곱씹고 곱씹고 곱씹어 보니 G도 그랬다. G에게도 어려운 일이고, 낭만적이지만 않은 일, 현실적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정말 '그렇지' 였다. H는 한참 뒤에 말했다. 그런데 너랑은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H의 동네에 맛있는 돼지갈비집과 정말 맛있는 마른오징어를 파는 슈퍼가 있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