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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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여행을가다 2018. 7. 26. 21:58
오월에는 생일을 맞아 함께 제부도엘 갔다. 일 때문에 늦게 출발해서 다음날 일찍 나왔다. 대학교 때 엠티로 와본 적이 있을 것 같은데, 너무 오래되어 다 생소했다. 섬으로 들어가는 길이 근사하더라. 다른 때는 물에 잠겨 있는 길이라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섬에 들어와서 옆으로 지나가는 건물을 보고, 저긴 니가 좋아하는 발코니도 있어서 예약하려고 계속 들여다 봤는데 방이 안 빠지더라는 말로 나를 감동시켰다. 물론 그 감동은 생일선물을 준비해오지 않은 죄로 모두 산산조각 났지만! 숙소에 짐을 놓고 구워먹을 고기를 사러 나왔는데, 조금 걷다보니 눈앞에 드넓은 바다가 나타났다. 속을 다 드러낸 갯벌이긴 하지만 바다는 바다. 사람들은 바다를 앞에 두고 조개를 구워먹고, 술을 마시고. 저 너머 해가 지고 있고,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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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서재를쌓다 2018. 7. 16. 22:15
가끔 회사를 그만두면 무얼 해야할까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게 되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곤 한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다른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나는 왜 기술이 있는 일을 하지 않았을까. 돈은 계속 벌 수 있을까. 지금 너무 낭비하고 사는 게 아닐까. 아끼고 아껴 좀더 모아야 하지 않을까 등등의 생각. 지금까지 해 봤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하면 어떨까. 아니,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일이 좋을까. 책을 좋아하니까 조그만 책방은 어떨까. 어느 월요일, 조금은 울적한 마음으로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다 이 책이 떠올랐다. 장바구니에 오랫동안 담아놓고, 매번 주문 때마다 슬쩍 빼버린 책. 지금이야말로 주문해서 읽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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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모퉁이다방 2018. 7. 11. 23:40
오늘은 기계 위에서 땀 흘리며 걷기 싫어서 불광천을 걸었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촌동생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사촌동생의 외할아버지라고 하면 멀게 느껴지는데, 숙모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의 거리가 엄청나게 좁혀진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이렇게나 잘해주는 숙모의 아빠인 것이다. 나는 엄청나게 습해진 여름밤길을 걸으면서 그날을 떠올렸다. 명절이었고, 숙모와 사촌동생이 고성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 우리를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준 밤. 기약없이 늦어지는 버스를 간이 정류장 벤치에서 기다리던 밤. 인적이 드문 그곳에서 숙모가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나즈막히 이야기했다. 젊은 시절, 숙모의 아버지는 반듯한 분이었다고 했다. 너무 반듯해서 숙모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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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와 함평여행을가다 2018. 7. 4. 15:39
우리 관계가 이랬는데, 그때 니가 가버려 가지구 지금 이렇게 소강상태야. 우리는 비가 쏟아지는 일본식 꼬치집 창가자리에 앉아 있었다. 니가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그래프를 만들었다. 왼쪽 아래에서 시작한 손가락이 미세하게 솟았다 가라앉았다 했다. 전체적으로는 상승곡선이었는데, 어느 순간 상승도 하강도 없이 일직선을 유지했다. 나는 그랬구나, 다시 올려보자, 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러니까, 니가 말하는 내가 가버린 그날 이후로 나는 너를 나의 틀에서 벗겨냈다. 이전의 나는 너를 내 틀 안에 데려다놓고 이것저것 이해하려고 애썼는데, 그게 자주 안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잘못된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 틀이 아니라, 니 틀에서 이해해야 한 거였는데. 그러고 나니 너도, 나도 평온해졌다. 같이 지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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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서재를쌓다 2018. 7. 1. 09:36
아주 멀리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아일리시를 생각한다. 2016년 봄에 보았던 영화를, 2017년 겨울 책으로 다시 읽었다. 2017년 겨울, 내가 아는 한 가장 멀리 다녀온 사람이 아일리시였다. 아일리시는 아일랜드 소도시에서 미국 뉴욕 브루클린까지 간 사람이다. 1950년대에. 똑똑하지만 시대상황 상 그럴듯한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있던 아일리시에게 어느 날 신부가 제안을 해 온다. 브루클린에 가면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기 싫었던 아일리시는 아일랜드를 떠나기 싫어한다. 아일리시를 단호하게 보낸 건 그녀의 친언니였다. 동생의 미래를 위해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별은 힘이 들었다. 향수병도 깊었다. 짙은 향수병 덕에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점점 마음의 안정을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