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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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필 프리티극장에가다 2018. 6. 28. 22:02
극장에 가는 중이었다. 집에서 연신내까지는 걷고, 연신내에서 버스를 타고 은평몰까지 가기로 했다. 아직 초여름이고, 아침이었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건너편 커다란 나무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는데, 순간 엄청나게 행복해졌다. 나뭇잎들이 보이고, 그 나뭇잎들이 만들어낸 그늘이 보이고, 그 나뭇잎들을 흔들거렸던 바람이 내 얼굴에 닿는 것이 느껴지고. 어제까지의 나는 조금 불행했던 것 같은데, 오늘의 나는 무척 행복했다. "나는 나!" 얼마 전에 읽은 문구를 떠올렸다. 그래, 나는 나. 이렇게 초여름 아침 바람에 행복해지는 사람. 이 풍경에, 내가 그동안 겪었던 온갖 소소한 행복들이 줄줄이 떠올려지는 사람. 이런 나를 기억하자고, 이런 나를 생각하자고 다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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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모퉁이다방 2018. 6. 20. 22:23
지난 주부터 아침 저녁 식단을 조절하고 있다. 대충 많이 먹던 것을 신경써서 적당히 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퇴근하고 와서는 몸을 움직이려고 한다. 동생이 추천해 준 초보 홈트 영상을 보고 30분간 따라하거나, 집까지 11층을 걸어 올라오거나 하는 등. 체중을 줄이기 위한 몸부림(!)은 타의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진작부터 실천해야 하는 것이긴 했다. 지금까지의 엄청난 다이어트 실패들을 교훈 삼아, 이 식단과 운동을 오래오래 지속할 수 있도록 무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밥도 여러가지 만들어 보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친구집에서 이유식 책을 봤는데, 거기에 남은 이유식 재료로 만든 성인요리가 있었다. 두 가지를 유심히 봤는데, 계란오이볶음과 렌틸콩마늘볶음. 계란오이볶음은 해먹어 봤는데, 아주 맛났다. 얼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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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먹지?서재를쌓다 2018. 6. 14. 22:06
홈플러스에서 야키소바면과 소스를 샀다. 면 세개와 소스 세개가 한 묶음이다. 순한맛과 매운맛이 있었는데, 고민하다 둘다 샀다. 두 번 해 먹었는데, 두 번 다 2인분이었다. 순한맛과 매운맛을 하나씩 섞었다. 마트에서 천원짜리 컷팅 양배추와 붉은색 초생강도 샀다. 컷팅 양배추는 딱딱한 것과 보슬보슬한 것 두 종류가 있었는데, 보슬보슬한 배추로 골랐다. 집 건너편에 야채가게가 생겼다. 자주 애용하는 역앞 가게보다 훨씬 싸다. 거기선 작은 당근 세 개를 샀는데, 역시 천원이었다. 좋아하는 정육점에서 대패삼겹살도 샀다. 대패삼겹살은 늘 이 집이다. 두 번 해 먹고 딱 한 번 더 해 먹을 만큼 남았다. 재료 준비는 끝. 이제부터는 간단하다. 야채는 모두 채썰어두고, 대패 삼겹살을 먹기 좋게 자른 뒤 기름을 두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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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사람에게 다녀왔습니다서재를쌓다 2018. 6. 10. 14:05
루나파크의 웹툰과 글을 열심히 보던 시기가 있었는데, 루나의 친구로 등장하는 노난이라는 특이한 별명의 사람이 이 노란 책을 출간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정한 사람에게 다녀왔습니다. 남유럽에서 열여덟 명의 사람을 여행한 기록. 표지 색깔이며, 길다란 제목이 따뜻한 책일 것 같았다. 바로 주문했다. 읽어보니 역시 따뜻한 책이었다. 노난이라는 별명을 가진 노윤주 씨는 따뜻하고, 용기 있고, 느긋하고, 삶의 순간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작가 소개에 의하면 네 번 회사를 옮겼고, 회사를 자주 그만둔 덕분에 길고 짧은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단다. 겁이 많지 않은 덕분에 낯선 사람들을 따라가 숨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단다. 가장 쓰고 싶은 것은 언제나 일기란다. 나는 이런 여행들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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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모퉁이다방 2018. 6. 9. 21:51
유월이 되고, 저녁 바람이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일년 전 생각을 하고 있다. 일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두 주 가까이 혼자 지냈던 기억들을 이곳에 정리해놓아야겠다. 더 늦어지면 영영 꺼내놓지 못할 것 같다. 가 케이블에서 하면 채널을 돌리다가 멈추고 본다. 1시즌은 이소라 때문에 보았고, 2시즌의 처음 팀은 김윤아 때문에 보았다가, 역시나 로이킴에 푹 빠졌다. 이번 두번째 팀도 첫번째 팀에 이어 포르투갈. 첫번째 팀은 포르투에서 시작했고, 두번째 팀은 리스본에 있다. 저번에 본 방송에서 두번째 팀이 파두하우스에 갔는데, 파두는 '침묵'에서 비롯된 음악이라고 했다. 모두들 그 침묵에서 비롯된 음악을 경건하게 들었다. 아, 나는 내 유럽 여행의 시작이 포르투갈이어서 참 좋다. 오늘은 박정현이 라이브 바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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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일본의 맛서재를쌓다 2018. 6. 8. 22:13
진짜 일본은 어떤 모습일까? 이동하기는 편할까? 그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수정처럼 맑은 계곡과 콘크리트 숲,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정리된 정원, 눈 덮인 산, 고딕 로리타 패션의 소녀, 게이샤....... 이 모든 것이 혼재된 곳에 과연 유럽에서 온 호기심 많고 평범한 가족이 (환대를 받는 것은 고사하고) 비집고 들어갈 만한 작은 공간이라도 있을까?- 26쪽 자욱한 숯불 연기 속에서 아이들이 꼬챙이에 꽂힌 닭 내장을 기분 좋게 우적우적 씹어 먹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콘플레이크와 토스트로 시작한 하루가 이렇게 마무리되다니,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꿈이 아닌가 싶으면서 한편으로 이상하게 흐뭇하고 행복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일본에 연착륙했다. - 4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