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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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모퉁이다방 2018. 2. 26. 22:28
지난 목요일의 일. 보경언니가 강연을 함께 듣자고 했다. 오랜만에 셋이 만나서 맥주도 마시자고 했다. 엄마 찬스를 쓴다고 했다. 한때 우리 셋은 한달에 세 번 이상은 맥주잔을 부딪치는 사이였는데 (한때는, 이 말을 요즘 자주하네) 이제는 반년에 한번 모이기도 힘들게 됐다. 요즘 사무실이 너무 건조해서 가끔 속이 미식거리는데, 이날이 유독 심했다. 나는 늦어서 강연은 못 듣겠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넓직한 테라로사로 갔다. 넓직한 테이블 가장자리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핸드폰도 하면서 저녁시간을 보냈다. 평일 저녁 테라로사는 제법 한가하더라. 한 시간이 넘자 언니에게 전화가 와서 케이티 건물 앞에서 만났다. 강연이 별로였다고 했다. 친구는 언니가 설문지를 내러 가서 패널 선정이 잘못된 거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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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모퉁이다방 2018. 2. 18. 21:18
사촌동생은 일월 첫째주 주말에 삼척에서 결혼식을 했다. 덕분에 밤버스를 타고 삼척에 갔고, 쏴아쏴아 소리가 커다랬던 삼척바다를 다시 보았고, 바다를 곁에 두고 하룻밤을 잤다. 졸린 눈을 비비고 아침 해도 봤다. 사촌동생은 내내 싱글벙글이었는데, 이번 설에 보니 살이 두둑하게 올라 있더라. 선물이라고 건네주는 와인 두병을 그 자리에서 땄다. 새식구와 함께 두런두런 앉아 와인을 나눠 마시면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내가 물었다. 뭐가 좋아요? 사촌동생의 아내가 된 새식구는 방긋 웃더니 말로 딱 나열할 순 없는데 그냥 좋아요, 라고 우문현답을 했다. 사촌동생에게도 똑같이 물었는데, 사촌동생이 엄청난 대답을 했다. 모두 그 자리에서는 막 놀렸는데, 그 말을 각자 곱씹어보고 곱씹어봤다. 동생은 새식구가 나를 나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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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딩, 턴서재를쌓다 2018. 2. 15. 00:19
책을 먼저 건넨 뒤, 친구는 내 얘길 가만히 듣더니 말했다. 그 책이 지금 너한테 좋을 것 같아. 잘 읽어 봐. 친구는 두 권을 사서 한 권에는 내 이름을, 다른 한 권에는 자기 이름을 적어달라고 했단다. 어떤 부분은 정말 설레였다.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친구가 한 말이 맞았다. 후반부는 좀 아쉬웠다. 후반부에 내가 한 생각은, 아, 소설이구나. 소설을 읽어도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는 소설이 좋다. 지어낸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소설. 요즘 내가 계속 찾고 있는 소설. 마음에 툭툭 걸리는 문장들이 많았다. 우리가 함께 춤추는 순간들은 정말이지 행복했는데,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그렇지만 춤추는 순간들이 있었기에, 함께 한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 고 생각해 본다. 남자는 여자에게 처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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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무대를보다 2018. 2. 8. 21:24
2017년 마지막 날, 남희언니를 만났다. 우리는 한때 사무실에서 매일 보는 사이였는데, 이제는 일년에 두세번씩만 보고 있네. 그래도 작년에는 세 번 봤다. 원래 마지막 날 만나 이소라 공연을 보려고 했는데, 늦장을 부리다 좌석을 놓치고 말았다. 매진이 된 이소라 공연을 뒤로 하고, 뭔가 함께 볼 수 있는 공연을 찾다가 선우정아가 음악감독이고, 고흐 이야기니까 좋을 것 같았다. 언니와 신당동에서 만나 떡볶이를 먹었다. 언니가 맥주 할래? 라고 물었고, 나는 지금 못 마셔요, 라고 했다.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말에도 생명력이 있는 것 같다. 어떤 말들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 말을 한 사람, 그때의 장소, 그때 공기의 흐름, 그 사람의 표정. 시간이 지날수록 울림이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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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모퉁이다방 2018. 2. 1. 17:04
영화 에는 남자와 여자가 차 앞좌석에 앉아 있는 장면이 자주, 그리고 오래 나온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서울인가 경기도 어딘가의 여자의 집에 가고, 강원도에 있는 남자의 집에도 간다. 여자는 남자에게 네비게이션이 말해주는 길을 알려주고, 남자는 이 길이 정말 맞는지 여자에게 물어보곤 한다. 마지막 장면에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광화문 광장을 걷는다. Y씨의 차에 처음 탄 건 강변에서 영화를 보고 근처 역에 내려준다고 하길래. Y씨는 의정부 쪽에 있는 동생네 집에 가는 길이어서 강변역에서 헤어지는 게 맞았는데, 그냥 탔다. Y씨가 말했다. 이 차 앞자리에 처음 탄 여자야. 얼마 전에 고모를 태웠는데, 그건 뒷자리였다고 했다. 그 밤, Y씨는 결국 응암까지 데려다 줬다. 강변에서 응암까지 가는 길이 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