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에 해당되는 글 13건

  1. 애도일기 (2) 2017.11.29
  2. 힘빼기의 기술 (2) 2017.11.28
  3. 문어카레 (2) 2017.11.25
  4. 빌리 진 킹 (4) 2017.11.22
  5. 한밤 중에 잼을 졸이다 (4) 2017.11.19

애도일기

from 서재를쌓다 2017.11.29 22:48






    한나는 롤랑 바르트의 일을 겪었다고 했다. 몇달 만에 나타나 그동안 별일이 없었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말했다. 나는 힘들었겠다, 말했다. 눈가가 촉촉해진 한나가 이제 괜찮다고 했다. 십일월의 시옷의 책은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였다. 십일월 시옷의 모임에, 우리는 셋이서 만났다가, 잠시 넷이 되었다가, 다시 셋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넷이 되었다. 셋일 때 책 이야기를 했는데, 둘이 하진이가 왜 이 책을 골랐을까 읽으면서 궁금했다고 했다. 나는 생각보다 책이 그렇게 우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나는 반쯤 읽었다고 했는데, 끝까지 롤랑 바르트가 이런 마음이냐고 물었다. 나는 극복하고 다시 일어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해설에 있던 그의 죽음에 대해 말해줬다. "1980년 2월 25일 바르트는 작은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지만 심리적으로 치료를 거부했다. (...) 한 달 뒤인 3월 26일 바르트는 사망했다."


   이 책은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를 여의고 슬픔에 겨워 그녀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써내려간 작은 일기들이다. 1977년과 1979년의 기록들이다. 모임이 있기 전, 이번에 참석하지 못한 봄이와 소윤이는 읽고 있는데 너무 우울하다고 말했다. 한나는 자신의 경우, 힘들었지만 추스릴 수 있었다고 했다. 더 잘 살아나가야지 생각했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변함없는 그의 절망에 나도 생각했더랬다. 얼마나 사랑이 깊으면 이럴까. 왜 그는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는가. 기석이가 롤랑 바르트를 좋아했던 것 같아, 망원의 제주도 음식점 오라방에서 제주고기를 먹으며 말했다. 그리고 홍대로 옮겨 기석이를 만났고, 이야기해줬다. 롤랑 바르트에 대해. 그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었는지, 어떤 사랑을 했는지, 엄마에 대한 사랑이 얼만큼 깊었는지. 홍대 지하의 소굴에서 무알콜 칵테일을 마시며 그 이야기를 듣는데, 단번에 이해가 됐다. 그가 마주한 세상이 얼마나 험난했을지. 그에게 어머니라는 존재가 어떠했을지. 어쩌면 어머니 만이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않았을까 하고. 아, 그날 넷이 된 우리는 다시 셋이 되었다가, 둘이 되었다. 그리고 롤랑 바르트가 그러했듯,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 결국 하나가 되었다. 


-

   이건 이 책을 읽으라 하고, 멀리 가버린 하진이가 궁금해한 나의 포스트잇들.


 10. 29

애도의 한도에 대하여.

(라루스 백과사전, 메멘토) :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18개월이 넘으면 안된다.

- 29쪽


10. 31

   나는 이 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결국 문학이 되고 말까 봐 두렵기 때문에. 혹은 내 말들이 문학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다름 아닌 문학이야말로 이런 진실들에 뿌리를 내리고 태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 33쪽


11. 1

   기분이 즐거워진 "방심" 상태들이 있다. 물론 정신은 여전히 말짱하지만. 그럴 때 나는 얘기를 하고, 어느 때는 농담도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격렬한 감정 상태에 빠진다. 눈물 흘리고 말 정도로.

- 39쪽


11. 4

   오후 여섯 시경 : 집 안은 따뜻하고, 편안하고, 밝고, 깨끗하다. 열심히 그리고 정성을 다해서 나는 집 안을 정리한다 (그러니까 나는 쓰라린 마음으로 즐긴다). 이제부터는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나는 나 자신의 어머니인 것이다.

- 46쪽


11. 11

   외로움=대화를 나눌 사람이 집에 없다는 것. 몇 시 쯤에 돌아오겠노라고, 또는 (전화로) 지금 집에 와 있어요, 라고 말할 사람이 더는 없다는 것.

- 54쪽


11. 30

   애도에 대해서 말하지 말자. 그건 너무 정신분석학적이다. 나는 슬픔 속에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슬퍼하는 것이다.

- 83쪽


1978. 1. 22

   나는 외롭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외로움이 필요하다.

- 101쪽


1978. 5. 6

   오늘 - 내내 침울하던 중에 - 오후가 끝나갈 즈음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슬픔의 순간. 너무도 아름다운 헨델의 오페라 <세멜레>(Semele, 3악장)를 듣다가 눈물을 터뜨리다. 마망이 말하던 단어("나의 롤랑, 나의 롤랑")

- 130쪽


1978. 5. 31

   내가 필요로 하는 건 홀로 있음이 아니다. 그건 (작업의) 익명성이다.

   나는 분석적 의미에서의 "작업"(애도 작업, 꿈 작업)을 진정한 "작업" 으로 완전히 바꾸려고 하고 있다 - 글쓰기 작업.

   그 이유는 :

  (사람들이 말하듯) 커다란 생의 위기(사랑, 애도)를 이겨내고자 하는 "작업"은 너무 급하게 끝나서는 안 된다. 그런 작업은 나의 경우 글쓰기를 통해서만, 또 글쓰기 안에서만 비로소 완결될 수 있는 것이다.

- 142쪽


1978. 6. 9

   FW는 고통스러운 사랑 때문에 완전히 망가져 있다. 그는 괴로움을 당한다. 언제나 침울하고, 메말라 있고, 그 무엇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등등. 하지만 그는 사실 아무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 그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죽지 않았으니까 등등. 그의 곁에서, 그가 말하는 걸 귀 기울여 들으면서, 나는 침착한 표정을 잃지 않는다. 그에게 주위를 기울이지만 그의 얘기 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마치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일 같은 건 내게 일어난 적이 없는 것처럼.

- 146쪽


1978. 8. 18

   아직도 나는 마망과 "이야기를 한다"(현재형으로). 하지만 이 이야기는 마음 속에서 나누는 대화가 아니라(나는 마음속에서 그녀와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 살아가는 방식 안에서 존재하는 대화다 : 매일 매일의 일상 속에서 나는 그녀의 가치관을 따라서 살려고 애를 쓴다 : 그녀가 했던 것처럼 식사를 하고, 집 안을 정리하면서. 윤리의 미학이 하나가 되는 삶, 비교 불가능한 생활양식, 그것이 그녀가 일상을 보내던 방식이었다. 그런데 여행 중에는 그런 일상의 가사들 안에서 경험하게 되는 "특별함"을 만날 수가 없다 - 그건 집에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니까. 여행은 그래서 나를 그녀로부터 떨어져 있게 만드는 일일 뿐이다. 그녀가 곁에 없는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 그녀가 바로 가장 친숙한 일상이었으므로.

- 200쪽


1978. 10. 8

   마망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지금까지는 추상적이기만 했던 사실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으므로, 이 논리를 따라서 나 또한 죽어야만 한다는 확신은 어쩐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 216쪽




  1. 2017.12.02 12:3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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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빼기의 기술

from 서재를쌓다 2017.11.28 22:45




    짜증나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면, 가만히 생각해본다. 그 사람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생각했을까. 어떻게 이 상황을 넘겼을까. 내가 상상하게 되는 '그 사람'은 내게 없는 장점들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다.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 이것 따위! 하고 힘든 생각들을 냅다 내다버릴 수 있는 담대함, 무한한 긍정적 기운. 최근에 책도 읽고, 팟캐스트도 듣고 해서인지 긍정 기운을 생각하며 김하나 씨를 생각한 적도 있다. 김하나 씨는 <모든 여행의 기록>의 김민철 씨 인스타에서 처음 얼굴을 뵈었는데, 술을 마시고 찍은 사진들이었다. 포즈들이 굉장히 역동적이고, 코믹하기도 하고, 힘찼다. 긍정 기운이 그득한 분일 거라고 생각했고, 책을 읽고 난 뒤에는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둥실 둥실, 두둥실. 올해의 남은 날들은 힘을 한껏 빼고 유유히 보내고 싶다.



-

두둥실, 포스트잇.


... 여행기를 펴낼 생각으로 쓴 건 아니었는데 가끔 블로그에 들어가 오랜만에 남미 여행기를 읽어보면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남미에서만, 그러니까 이구아수폭포와 파타고니아와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리우데자네이루가 있는 대륙에서만 가능한 글들이었다. 남미에 몸을 푹 담근 그때의 나는 이곳에서보다 훨씬 낭만적이고 물기 어린 사람 같다. 나조차도 이 글을 쓴 사람이 낯설다. 하지만 나는 이 사람이 내 안에 살고 있음을 잊고 싶지 않다.

- 9쪽


   사랑은 처음에는, '빠지는' 듯 느껴진다. 어디론가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이 나를 떠밀고 가는 것 같다. 힘든 줄도 모르겠고 그저 사랑에 몸을 내맡기면 된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잘 유지하려는 서로의 노력과 기술 없이 사랑은 건강하게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끝나곤 한다. 다행인 것은 사랑이 끝나도 사랑한 경험과 넓어진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물론 나의 경우 저주와 눈물 바람, 술 취한 다음 날 통화 기록 보고 경악하기 등등 다양한 활동으로 에너지를 다 소진한 뒤에야 그런 성숙한 감사의 시간이 찾아왔지만.

- 53쪽


... 연대기식으로 시시콜콜 써나가는 여행기는 좀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만 이날에 대해선 그렇게 해보고 싶다. 전등 스위치를 켜듯 한번에 벌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방울 한 방울씩 더해져, 결국엔 또르르 넘쳐흘렀던 하루였으니까.

- 179쪽


   짧은 여행에서는 초보자인 채로 그곳을 떠나게 된다. 장기 여행이라도 짧게 짧게 여러 곳을 다닌다면 초보자인 채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머물러보는 것은 다르다. 당신은 이 도시로 이사를 오는 것이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고 긴장되지만, 당신은 점점 익숙해진다. 처음 운전할 땐 앞차 꽁무니만 따라가는 것도 버겁다가 점점 백미러도 보이고, 나중엔 음악도 듣고 경치도 보고 차선도 바꿀 수 있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엔 어딘가를 찾아가는 것만 해도 버겁지만, 차츰 그곳과 어울리는 시간대도 생각해볼 수 있고, 그곳으로 가는 다른 골목길을 탐색해보기도 하고, 그러다 예상치 못하게 맘에 드는 곳을 발견하고, '다음에 또 와야지' 라고 그곳을 기억해두게 된다. 이것은 대단한 차이다. 당신은 어느 정도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 207-208쪽


   해변은 고급 주택가지만 구두 신은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곳에서 구두는 정말 답답하게 느껴진다. 다들 조리나 운동화에 펄렁한 야자수 무늬 반바지, 아무렇게나 흩날리는 얇은 원피스 같은 걸 걸치든지 말든지. 웃통을 벗은 채 백팩을 멘 청년들이 버스에 올라타고, 셔츠는 언제나 단추를 서너 개 풀어헤치며, 초등학교 교복은 티셔츠다. 해변뿐 아니라 리우 시내도 그리 다를 게 없다. 이 도시는 전체적으로 이지고잉(easy-going) 그 자체. 잘 입는 것보다 잘 벗는 것이 중요하므로 몸만들기에 열심이다. 해변의 근력 기구엔 남자들이 매달려 있고 온통 달리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 240쪽

 

   "고마워, 페르난두. 넌 정말 친절하구나."

   페르난두가 대답했다.

   "하나. 너를 보고도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었어. 그건 나도, 먼 곳에 혼자 서 있어보았기 때문이야."

   나는 그 말이 어째 먹먹했다.

- 244쪽




  1. 2017.11.30 14:3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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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ddress  modify / delete 2017.12.03 21:12 신고 BlogIcon GoldSoul

      역시 좋은 분이셨어요. 흐흐-
      읽어보셔요. 앞부분이 특히 좋아요. :)
      아, 어느새 12월이 되어버렸어요.
      우리 화이팅해요! 남은 한달이요-

문어카레

from 모퉁이다방 2017.11.25 00:40




   이번 주는 길고, 힘들었다. 많은 생각을 했는데, 무엇 하나 녹록치 않구나 생각했다. 관계란 뭘까. 이번 주의 결론은, 언제든 깨어지기 쉬운 것. 누군가의 노력이 있다면, 다시 이어붙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이전만큼 튼튼해질 순 없을 것이다. 요즘 들어 지난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때 그 사람, 그렇게 힘들었을텐데, 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했네, 하고.


   요즘 저녁을 가볍게 먹으려고 하고 있다. 맥주는 (무척 아쉽지만) 마시지 않은 지 몇 주 되었다. 신기하게 마시지 않게 되자, 별로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언젠가 한 잔을 아주 찐-하고 맛나게 마실 그 날을 기다리며. 겨울이니, 병맥주를 사야지. 깊은 맛이 나는 진한 걸로. 유리컵을 씻어 냉장고에 넣어뒀다 꺼내야지. 삿포로 맥주박물관에서 사온 병따개로 병을 따서 꿀꺽꿀꺽 소리가 나게 잘 따라야지. 적당하게 거품을 만들어서, 안주 없이 천천히 음미해가며 마셔야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잘 마신 뒤, 역시 좋았어, 하고 뿌듯해 해야지. 이번 주 저녁 메뉴에 현미율무시리얼도 있었고, 우울해서 큰 맘 먹고 산 호주산 소고기 안심도 있었다. 그리고 이마트에서 파는 자숙문어도 있었다. 문어는 소금을 넣은 참기름장에 찍어 먹는 걸 제일 좋아하는데, 건강하게 먹는다고 쌈다시마를 곁들여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한번에 다 먹질 못해 냉장고에 남겨뒀는데, 다음날 카레를 만들 때 문어 생각이 났다. 한번 넣어볼까. 그렇게 시작된 냉장고 잔반 처리 카레. 결과는, 무려 인생카레. 3일동안 동생이랑 정말 맛있다고 감탄을 하며 잘 먹었다.


   그래서 힘든 평일을 잊고, 주말을 잘 보내기 위해 루시드 폴이 우정출연한 알쓸신잡을 다 보고, 재빨리 마감 전 이마트에 갔다. 자숙문어는 마감 직전이라 세일할 줄 알았는데, 정가 그대로 팔더라. 브로콜리도 사고, 방울토마토도 샀다. 카레는 백세카레. 저번 인생카레를 만들 때는 '약간 매운맛'을 샀는데, 좀 매운 감이 있어서 이번에는 '순한 맛'을 샀다. 마트 가기 전에 동생이랑 인생카레 맛을 떠올리며 회사 그만두고 카레집을 하자고 계획해봤다. 문어카레에 맥주도 팔자. 카레는 양을 한정해서 팔고, 맛있는 문구들이 그득한 책도 같이 팔자. 커피는 안 될 것 같아. 카레 냄새가 너무 심하잖아. 카레냄새가 책에 배지 않을까. 이딴 고민은 다 필요없었다. 마트가서 일부 재료만 샀는데, 팔기엔 엄청 비싼 재료들임을 깨달았다. 아, 이래서 맛있었던 거구나. 비싼 것들이 듬뿍 들어가서. 회사를 계속, 흑흑-


    만드는 방법은 일반 카레 만드는 것과 똑같다. 아, 친구가 좋은 버터를 많이 줘서 올리브유와 버터를 함께 넣고 볶은 건 평소랑 달랐다. 재료를 볶고, 물을 넣고, 카레가루를 푼다. 문어는 아무래도 오래 끓이면 질겨 질 것 같아 카레가루를 풀고 넣었다. 자글자글 카레의 형태가 될 때까지 끓여주면 완성. 그리고 모두 아시겠지만, 어제(만든)의 카레가 제일 맛나다. 카레는 시간이 더해지면 더 깊어지나보다. 재료는 양파, 브로콜리, 완두콩, 방울토마토, 자숙문어. 문어는 잘게 썰어서. 마지막에 우유 조금. 요거트를 넣어도 된다. 내일 만들어 먹으려고 브로콜리를 식초물에 담가뒀다. 아, 기대되는 주말 카레 되시겠다. 카레에게 다음 주를 버틸 용기를 달라고 하는 건 무리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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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은 역시 카레입니다. 거기에 보태고 싶은 것은 카레우동!

   원래 카레우동은 메이지시대 도쿄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하지만, 오사카와 교토의 카레우동도 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교토부청 앞 '야마비코'의 '스지 카레우동'은 최고의 보양식이다.

   "여름이면 일주일에 한 번은 나도 모르게 이쪽으로 발이 움직인다니까."

   "그 집 맛은 중독성이 있어." 교토의 친구들이 말한다. 흐르는 땀도 끈적거리는 여름 교토의 한낮에 '스지 카레우동'의 격렬한 한 방은 통쾌하다. 젓가락으로 들어 올리면 쫄깃한 우동이 튀어 오른다. 삶은 물은 버리고 다시 삶기를 여섯 번, 부드럽고 푹 고은 소의 힘줄이 녹아내린다. 파워풀한 매운맛, 뜨거움이 혀 위에서 기쁨의 춤을 춘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먹고 나면 샤워를 한 것 같다. 참고로 '야마비코'에는 여름 한정 '냉 스지 카레소면'도 있다. 그리고 카레우동 팬이라면 난젠지 근처 '히노데 우동'의 '달콤 카레우동'도 강력 추천하고 싶다. 푹푹 찌는 무더운 교토를 걸을 용기가 솟는다.

- 181-182쪽,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




  1. 2017.11.29 12:5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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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ddress  modify / delete 2017.11.29 22:13 신고 BlogIcon GoldSoul

      문어가 들어가면서 씹는 식감이 좋아져요. :)
      저는 제대로 된 카레우동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저도 다음에 도전해봐야겠어요! 흐흐-
      아, 홍대에 괜찮은 카레스프집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줄이 긴 집이라는데, 한번 가보고 싶어요.

빌리 진 킹

from 극장에가다 2017.11.22 22:12



   오늘 출근 길에 기억해냈다. <헬프>의 그 똘똘한 여자가 엠마 스톤이었어. 어제는 퇴근을 하고 상암에 가서 엠마 스톤을 만나고 왔다. 금색 안경을 끼고, 다무진 표정을 보이던 빌리 진 킹. 나는 빌리 진 킹을 몰라서, 실제 인물과 싱크로율이 매우 높다는 평에 그런가보다 했다. 나는 <라라랜드>에서보다 <빌리 진 킹>에서의 엠마 스톤이 더 예뻐보였다. 컬러풀한 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발랄하게 스텝을 밟으며 춤추지 않아도, '미아'보다 '빌리 진 킹'인 그녀가 더 예뻤다. 화장을 하면 그 큰 눈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는데, 옅은 화장을 하니 더욱 예뻐보였다. 웃을 때 보이던 팔자주름도 자연스러웠고, 민소매 운동복에 드러난 어깨는 건강하게 그을려 있었다. 결국 그녀가 그를 이겼을 때, 그 환희를 곧장 즐기지 않고 잠시의 시간을 혼자서 갖는 것, 가서 승리의 파티를 즐기자는 말에 나는 아직 이런 것 준비가 안 되었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 좋았다. 남편의 에스코트를 받지 않고, 당당히 혼자 걸어간 것도. 엠마 스톤의 나이, 스물 아홉. 나이를 검색해보고, 괜히 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리 진 킹>은 계속해서 나아가자고, 계속해서 힘을 내자고 말하는 영화이다.




  1. 2017.11.27 18:5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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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ddress  modify / delete 2017.11.28 21:52 신고 BlogIcon GoldSoul

      맞아요. 오쿠다 히데오 책은 못 읽어봤어요. 아직 그의 끌리는 책이 없긴 했어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읽어볼게요. :) 추천은, 언제든 감사합니다!
      요즘은 정말이지 개봉주에 보지 않으면 작은 영화들은 금방 내리고 말아요. 서두르는 자만이 작은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 헤헤-
      혹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좋아하세요? 그의 새영화 개봉을 기다리고 있어요!

  2. 2017.11.30 11:2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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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ddress  modify / delete 2017.12.03 21:09 신고 BlogIcon GoldSoul

      아, 저는 이번주에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정말 좋았어요. 좋아하실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도 추천합니다. :)




   퇴근길에 깐밤을 만원 어치 샀다. 오천원 어치씩 포장이 되어 있어서 하나를 살까, 둘을 살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하나는 부족한 거 같아 두 개를 샀다. 집에 꿀도 있고, 우유도 있다. 며칠동안 생각한 밤잼을 만들어 보았다. 깐밤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한번 끓였다. 드문드문 붙어 있는 밤 껍질을 정리해 주고 으깼다. 살짝 식힌 뒤에 우유를 넣고 믹서기에 갈았다. 밤이 퍽퍽해서 잘 갈려지지 않더라. 그렇게 간 밤우유를 냄비에 다시 넣고 끓였다. 꿀을 듬뿍 넣었다. 오래 끓일수록 냄비 밖으로 밤꿀우유가 튀여서 뚜껑을 덮어 뒀다. 그러다 타지 않나 뚜껑을 살짝만 열고 주걱으로 바닥을 뒤적거려 줬다. 또 덮어 두고, 또 뒤적거려 줬다. 잼을 만드는 것은 이 일의 반복이구나 생각했다. 그 시간이 은근히 길어서 그 사이 책도 몇 페이지 읽고, 티비도 보고 그랬다. 티비를 보면 정신이 팔리니, 책을 읽으면서 잼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 한 페이지 읽고, 뒤적거려 주고, 한 페이지 또 읽고, 뒤적거려 주고. 얼추 시중의 잼과 비슷한 농도로 걸쭉해졌을 때 불을 껐다. 집 안 가득 달달한 밤냄새가 가득해서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줘야 했다. 한밤 중은 아니지만, 밤의 잼이 완성되었다. 요즘 빵을 줄이려고 하고 있어서, 다음 날 아침, 우유를 몽글몽글하게 데워 밤잼을 조금 넣어 마셔 보았다. 따뜻하고 적당히 달달한 것이, 배가 든든해졌다.


   밤잼을 만드려고 결심한 것은, 순전히 이 책 때문이다. 몇달 전 박찬일 쉐프의 강연회를 갔다. 음식에 대한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한 강연회였다. 강연회는 생각보다 지루했는데, 그 강연회에서 얻은 건 박찬일 쉐프의 추천책 목록이었다. 박찬일 쉐프는 책 한 권 한 권 설명해주면서, '재미있다'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오래된 고전 소설을 말하면서도 재밌어요, 전공서 같은 느낌의 책을 추천하면서도 재밌어요. 그 재밌다는 말이 참 좋더라. 그래서 나도 '재미있게' 다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책도 그 목록에 있었는데, 제목이 가볍다는 느낌이 들어 사 놓고는 한동안 책장에 꽂아 두었다. 어느 날, 한번 읽어볼까 하고 책장에서 꺼냈는데, 왠걸 첫장을 읽자마자 너무 좋은 거다. 어떤 좋아하는 음식을 떠올려 보자. 그 음식에서 느껴지는 맛을 또 떠올려 보자. 그것을 글로 써보자. 그러면 알게 된다. 음식의 맛을 표현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이 분, 그러니까 히라마쓰 요코는 그걸 아주 잘 해낸다. 단번에 그 음식을 찾아가, 혹은 만들어 먹고 싶게 만든다. 음식과 그에 대한 여러 에피소드가 담긴 책이다. 문장들이 좋다. 책을 읽다 책날개의 작가 소개로 되돌아가 보니, 이런 소개가 있었다.


"유명 레스토랑 음식에 별점 매기는 일보다는 퇴근 후 서둘러 집에 돌아가 해 먹는 밥 한 끼의 매력, 도시 변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매일의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요리사는 아니지만 소박하고 인정 넘치는 밥상을 손쉽게 차릴 수 있는 고유의 레시피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 별거 아닌 식재료도 그녀의 미각과 손길을 거치면 마법처럼 생생한 생명력을 얻는다." 그리고 이런 소개도. "그중 <산다는 건 잘 먹는 것>은 소설가 야마다 에이미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제16회 분카무라 되 마고 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성 짙은 글쓰기는 탄탄한 독서 이력이 밑거름되었다. 독서에세이 <야만적인 독서>로 제28회 고단샤 에세이상을 수상했고."


   나는 이 책을 찬찬히 읽고, 그녀의 책 두 권을 더 주문했다. <산다는 건 잘 먹는 것>은 몸이 힘들 때 읽으려고 아껴두고 있다. <한밤 중에 잼을 졸이다>를 읽으면, 우리가 무심하게 먹던 밥과 소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그것들을 마트에 가서 함부로 고르지 말아야겠구나 생각이 든다. 계절에 맞는 제철음식을 고르고 골라 그 맛을 충분히 느끼면서 먹어야겠구나 생각이 든다. 이제 그만 사먹자는 생각도 든다. 시간을 들여 요리를 하고, 그 요리를 과정들을 충분히 느끼면서 먹는 그 시간들을 되찾고 싶어진다. 내가 포스트잇을 붙여둔 부분에 이런 맛들이 있다. 매일 사용해서 길들이는 옻그릇, 처음 술맛을 보고 바로 따라 버린 고등학교 시절, 여름의 맛 백도, 무엇보다 내가 어떤 밥을 짓고 싶은지 명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한 솥밥, 초여름 6시 반에 짓는 새벽밥, 밤이 열리는 계절에 변함없이 전화를 걸어 주문하는 밤과자, 냄새를 맡으면 언제나 행복한 카레카레카레, 냉장고 안 여름 맥주, 멀리서 들려오는 축제 북소리와 함께 하는 한여름의 아키소바.




  1. 오혜진 2017.11.20 00:24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 책 읽어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읽어봐야겠다.
    나는 얼마전에 무화과잼을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양이 나왔어요.
    주변에 무화과 먹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혼자서 열심히 먹고 있답니다.

    주말 잘 보냈어요?
    엄청 추웠는데...
    이제 겨울이려니...생각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는데,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서
    히트텍을 주문하려고 들어왔다가 금령씨 블로그에 왔어요.
    (하의만 입어왔었는데 올해부터는 상의도 입어야겠어요 ㅠㅠ)

    루시드폴 콘서트는 좋았어요.
    무려 사인회까지 했다는...
    코 앞에서 사인을 받는데 심장이 두근거려서 혼났어요.
    사인을 받은 책은 고이고이 간직해야겠어요. 막 굴리면서 읽지 못하겠는거 있죠 ㅋㅋ

    다시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니
    힘내요 우리.
    따뜻하게 보냅시다!!
    잘자요-

    •  address  modify / delete 2017.11.22 21:31 신고 BlogIcon GoldSoul

      무화과는 샀는데, 금새 흐물흐물해지더라구요. 맛나는데- 그래서 껍질 벗겨서 냉동실에 넣어뒀어요. 주스 만들어 먹을 때 하나씩 갈아 먹으려고 했는데, 계속 잊어버려요. 내일아침에는 하나 넣고 갈아먹어야겠다! 혜진씨가 만든 무화과잼은 어떤 맛일까? 달달하겠죠? :)
      좋았겠다, 루시드 폴의 사인회. 진짜 두근두근했겠어요. 뭐라고 다정하게 말도 걸어주던가요? 흐흐- 오늘은 에세이 한 챕터 꼭 읽고 자야지.
      혜진씨, 벌써 수요일이에요! 나는 요즘 추워도 전철로 두 정거장 정도는 꼬박꼬박 걸어다니고 있어요. 다이어리를 받으려고 아침커피도 열심히 마시고, 살을 빼려고 밥을 조금씩 줄이고. 아, 어제는 열풍 건조한 현미와 율무를 샀는데, 정말정말 고소해서 내일 아침에 우유에 말아먹을 거예요. 그 생각하면서 잠들 예정이에요. 헤헤- 혜진씨의 늦가을, 아니다 초겨울도 괜찮은 거죠? 히트텍 따뜻하게 입고 댕겨요! 좋은 꿈 꾸어요. :-)

  2. 2017.11.22 10:1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address  modify / delete 2017.11.22 21:40 신고 BlogIcon GoldSoul

      사실 맥주는 언제나 맛있지만요. 그렇지만 맥주 중의 제일은 여름 맥주! 헤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맥주는 어디든 따라서 마셔야 더 맛있는 것 같아요. 투명한 유리잔이 최고이구요. 삿포로 클래식 맛있죠? 그렇게 특별한 맛이 아닌 것 같은데, 특별한 맛인 것 같아요. 왜 이런 게 제일 어려운 거잖아요. 평범한 것 같지만, 그래서 더 훌륭한 것. 아, 눈 내리는 삿포로에서의 겨울 맥주도 맛나겠네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칭따오 댓병을 무척 사랑하는 제게 녹색은 하이네켄 것이라고 이야기하시다니요. 아 ㅠ 칭따오 댓병은 사랑입니다. 흐흐- 요즘 사정이 생겨 맥주를 못 마신지 꽤 되었는데, 댓글로 맥주 얘길 하다보니 한 잔 진하게 마신 기분이에요. 캬- 잘 마셨습니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