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에 해당되는 글 15건

  1. 우리의 20세기 (4) 2017.10.31
  2. 아이 앰 히스 레저 (4) 2017.10.30
  3. 지난 여름 (2) 2017.10.29
  4.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2) 2017.10.28
  5. 조림이 (2) 2017.10.27

우리의 20세기

from 극장에가다 2017.10.31 23:26



    간만에 아네트 베닝을 봤다. 나는 여전히 아네트 베닝하면 <러브 어페어>다. 우아했던 미소와, 낮은 허밍 소리. <우리의 20세기>의 아네트 베닝은 많이 늙었는데, <러브 어페어>에 비하면 주름이 아주 많아졌는데, 여전히 멋지더라. (물론 분장을 했겠지만) 민낯같이 평범한 일상의 얼굴도 자연스럽고, 클럽에 가기 위해 잔뜩 꾸몄을 때는 여전히 아름답더라. 저렇게 자연스럽고 멋지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꿈은 책을 읽고, 맥주를 마시는 할머니. 아네트 베닝이 맡은 역할은 늦은 나이에 아들을 낳고, 이혼을 한 뒤 혼자 사춘기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역할이다. 다음 달에 죽는다는 진단을 당장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줄담배를 피운다. 사춘기 아들이 온전히 커 나가는데 자신 혼자만으로 부족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아들의 성장에 필요한 여러가지를 가르쳐 달라고 집에 함께 사는 애비와 아들의 친구 줄리에게 부탁을 한다.


    여러 캐릭터가 나오는데, 나는 아네트 베닝과, 애비와 잠은 잤지만 영화의 초반부터 아네트 베닝과 잘될 것만 같았던, 윌리엄이 함께 나오는 장면들이 좋았다. 두 사람이 마음이 있는 듯, 없는 듯 아주 천천히 마음을 키워나가는 그 몽글몽글한 기운이 좋았다. 아네트 베닝은 일하는 시간 말고는 주로 자신의 방이나 집에 박혀 있는 사람이었는데, 어떤 계기로 자신의 삶을 제대로 즐겨보려는 결심을 한다. 멋졌다. 나이 들어서 못한다고, 안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고, 실패하고, 때로는 성공하는 삶. 그런 중년의 삶. 영화를 보며 멋진 중년이 되자고 결심했다. 어떤 기회가 다가오면 놓치지 말고 열성적으로 실패해보자고 생각했다. 실패하지 않으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삶보다, 실패로 점철되는 한이 있어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 되자고. 내년 다이어리에 적어둘 거다. 아네트 베닝이 용기를 낸 것처럼 그러하게 살아가야지. 그나저나 나이가 들어 빨간색에 끌리는 건지, 그녀가 아름다워 그런건지, 아네트 베닝의 새빨간 립스틱은 정말 예쁘더라. 나도 빨간색 립스틱을 발라야겠다.




  1. 2017.11.01 10:2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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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ddress  modify / delete 2017.11.01 20:11 신고 BlogIcon GoldSoul

      오늘 휴가였는데, 오후에 조금 울적한 기운에 <베스트 오퍼>를 봤어요. 아, 너무 슬펐어요. 그렇게 모든 걸 다 당해버리다니요. 주위에 내 편이 한 명도 없었던 사람인 거잖아요. 그래서 혼자인 집에서 좀더 울적해졌다는 후기를 전합니다. 오늘 저의 우울한 기운에 영화의 반전이 더해져서 그런 것 같아요. 그 일 전의 그 방은 정말이지 무척이나 훌륭해서 그 방에 앉아 한바탕 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아, 사람들 나빠요. ㅠ.ㅠ

  2. 2017.11.02 13:3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address  modify / delete 2017.11.05 08:01 신고 BlogIcon GoldSoul

      사람도 그림도 다 잃은, 나이 든 사람의 참담한 표정. 저는 그것이 가장 남았어요. 나중에 다시 보게 되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겨울나그네님 덕분에 좋은 영화 잘 보았습니다. 사실 개봉했을 때 볼까 했는데, 왠지 땡기지 않아 보지 않았던 영화였거든요. 좋았어요. :) 제가 영화를 착각하고 있어서 클레어 데인즈가 나오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그녀의 모습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왠걸 엄청 창백한 얼굴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는 후기도 전합니다. 흐흐-



    퇴근할 때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는데, 김주혁이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에, 그 김주혁이? 말도 안돼. 네이버를 켰더니 기사가 있었다. 얼마 전에 그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싶다고,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세상은 정말이지 모르겠다. 이렇게 허망할 수 있나. 당장 내일의 삶도 장담할 수 없으니,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사랑할 수 밖에. 나는 김주혁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을 좋아했다. <싱글즈>도, <광식이 동생 광태>도 여러 번 봤었다.


    시월의 어느 금요일 밤에는 히스 레저를 보러 극장에 갔다. 나는 이제 히스 레저보다 그의 부인이었던 미셸 윌리엄스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가 좋은 작품을 고르고, 좋은 연기를 할 때면 어김없이 그를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훌륭한 여자를 좋아했구나, 역시 사람 보는 눈이 있구나. 다큐 속의 히스 레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활동적이고 역동적이었다. 그는 에너지가 넘쳤고, 사람들을 좋아했고 믿었다. 언젠나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그는 자신과 친구들을 직접 찍으면서 연기와 영화를 알아나갔다. 언제나 재미있는 무언가를 찾았고,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베풀길 좋아했고, 일회성이 아닌 깊고 짙은 좋은 연기를 하고 싶어했다. 자신이 청춘스타로써 소비되길 원하질 않았다. 아내과 딸을 무척이나 아꼈다. 어느 날은 친구에게 그랜드 피아노를 선물하며 딸을 위한 자장가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자신이 그렇게 일찍 죽을 것을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 잠이 없었고 언제나 새로운 무언가를 생각해냈다. 그렇게 달려나가다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시간이 멈췄다. 그의 친구는 그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았고, 하던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며칠을 그와 함께 지낸 어린시절을 떠올렸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본 이베어의 '퍼스'라는 노래가 탄생했다. '퍼스'는 히스 레저의 고향이다. 연평균기온 18℃, 여름 평균 기온 32℃, 겨울 평균 기온은8℃, 지중해성 기후에 속하여 살기에 좋은 곳.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가 해변에서 신나게 파도를 타며, 배우의 꿈을 키워 나갔을 시간들이 상상이 된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내내 그의 딸아이를 생각했다. 그가 살아있었을 적 딸과 함께 찍힌 파파라치 사진들을 봤을 때 깜짝 놀랐다. 너무 히스 레저 판박이여서. 나중에 그가 죽고 나니 이해가 됐다. 아이가 아빠를 꼭 빼닮은 이유가. 아이는 잘 클 것이다. 아빠도, 엄마도, 훌륭한 배우이니, 아이도 좋은 예술가가 될 지도 모른다. 영화에 이안 감독 인터뷰가 나오는데, 감독은 미셸 윌리엄스를 두고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했다. 언젠가 그 아이가 우리에게 들려주지 않을까. 길지는 않았지만, 아빠와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들에 대해서. 아빠와 함께 한 놀이들, 말들, 표현들. 언젠가 그것을 듣거나, 읽게 된다면 정말 좋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구년이란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엊그제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아주 먼 옛날 일 같기도 하고. 구년 씩의 나이가 든 친구들이 카메라 앞에 앉아, 역시 구 년의 나이가 든 나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때로는 행복해하며, 때로는 슬퍼하며, 그를 기억해냈다. 나이를 먹지 않은 건 그이 뿐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 서른여덟의 나이에 생각해보니 너무 아까운 것이다. 너무 좋은 나이에 가버린 거다. 스물 여덟이라니. 그런데도 그렇게 많은 걸 이뤘다니. 오랜만에 <브로크백 마운틴>이 보고 싶어졌다. 이안 감독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주먹을 꽉 쥐고 몸에 잔뜩 힘을 준 채 웅얼거리며 대사를 했는데, 정말 신기한 건, 그렇게 많은 대사를 했는데도 사람들은 그가 연기한 배역이 무척이나 과묵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고. 히스 레저가 그렇게 보이게 해낸 거라고. 신이 그의 재능을 질투한 거라고 했다.




  1. 앤셜리 2017.10.31 21:32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눈물이 날 거 같아 언니...히스 레저 나도 참 좋아하는 배우거든

    •  address  modify / delete 2017.10.31 22:51 신고 BlogIcon GoldSoul

      역시 소윤이도 좋아했어!
      지금 생각해보니, 영화가 요노스케 같았어. 일찍 떠난 멋진 친구를 저마다의 기억으로 추억하는.
      아쉽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정말 더 멋진 연기들을 보여줬을텐데. ㅠ.ㅠ

  2. 2017.11.01 15:4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address  modify / delete 2017.11.01 20:14 신고 BlogIcon GoldSoul

      정말 그래요, 새봄씨.
      저 그 경계에 대해 요즘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읽고 있는 책에서도, 오늘 본 영화에서도.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아요. 새봄씨도 감기 조심하세요! :)

지난 여름

from 모퉁이다방 2017.10.29 21:02









































 


























 
























 









  

그래 혼자이면 뭐 어때 싶다.

늘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니니깐.

어쨌든, 여름이 갔다.





  1. 앤셜리 2017.10.31 21:35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금령언니 사랑해요-



    8시 20분 영화였다. 어젯밤에 확인을 하고 잤다. 7시 30분 즈음 일어났다. 귀찮았지만, 주말 아침 자전거를 타고 가 조조영화를 보는 뿌듯함을 알기에 세수를 하고 크림과 선크림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도착하면 표를 끊고, 투썸에서 따뜻한 라떼를 사먹어야지 생각하며 룰루랄라 자전거를 타다가, 커브길에서 반대편에서 오던 자전거를 피하지 못했다. 아직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지 못해서 사람들이 별로 없는 직진의 길에서만 신나게 탈 수 있는데, 그래서 다리로 진입하는 커브길에서는 내려서 걷거나 소심 운전을 하곤 하는데, 다리 위에 자전거가 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심하지 못해 아저씨와 부딪혔다. 아저씨가 왜 그러냐고 하셔서, 아직 잘 타지 못해서 그렇다고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를 드렸다. 어디 다치는 데 없으시냐고 물어보니 몸은 괜찮다고 그냥 가려고 하시다가 브레이크를 잡아보고 고장이 난 것 같다고 하셨다. 계속 고장이 났다고만 하셔서, 지금 현금이 없으니 계좌번호를 알려주시면 수리비를 이체해드린다고 했다. 아저씨는 지금 출근길이라 고치러 갈 시간도 없는데 하시면서 계좌번호를 바로 불러주셨다. 전화번호도 알아야죠, 하면서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셨다.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나도 수리를 해봤어야 알지, 하시면서 고민하시다가 우선 삼만원을 보내주고 만일 남으면 다시 이체를 해 준다고 하셨다. 극장까지 다시 직진의 도로를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나쁜 생각을 했다. 아저씨의 자전거가 낡았었거든. 자전거를 반납하고 바로 삼만원을 보내드렸다. 죄송하다는 문자와 함께. 상암 CGV에 8시 30분에 도착했는데, 무인발권기에서 발권이 되질 않았다. 10분 지나서 그런가 하고 번호표를 뽑아 직원에게 갔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서 발권 자체가 안된단다. 내가 10분동안 광고를 하지 않나요? 하니 시작하고 15분 뒤엔 발권 자체가 되질 않거든요, 해서 지금 10분밖에 안 지난 걸요, 하면서 어젯밤에 확인한 시간표를 핸드폰으로 보여줬다. 직원이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 손님, 이건 불광이네요. 아아. 오늘 아침은 다 망했구나.


   보려고 했던 영화의 첫 시작이 10시가 넘는 시간이라 마포구청 쪽의 투썸으로 갔다. 커피집은 한산했고, 원래 영화를 보면서 마시려고 했던 따뜻한 라떼를 시켰다. 창가 자리에 앉아 이번 달 시옷의 책인 <애도 일기>를 펼쳤다. 책은 반쯤 읽었는데, 마음에 든다. 언젠가 마주하게 될 나의 상황에 대입해서 읽으면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 문장들이 있다. 10시가 되어 머그컵을 반납하고 나오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아메리카노 두 잔을 앞에 두고 (한 잔은 비어있다) 줄이 그어진 조그만 수첩에 볼펜으로 무언가 신중하게 적고 계시는 걸 봤다. 상체를 테이블에 바짝 숙인 채로. 커피집을 나와서 핸드폰에 '마음이 움직였던 순간들'이라는 메모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상암까지 걸어가 영화를 봤고, 조금 울었다. 영화를 보곤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왔던 불광천 길을 걸어 왔다. 접촉이 있었던 커브길에서 브레이크를 둘 다 잡지 않은 걸 후회하면서. 응암역 근처에 일본라멘집이 새로 생겼는데, 동생이 알려준 블로그에 의하면 손님들이 많다고 했다.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손님이 거의 없어 들어가볼까 하다가 그냥 집에 왔다. 집에 와서 냉동실에 있는 제육볶음을 해동시키고 국수를 삶아 함께 먹었다. 동생이 칭따오에서 사다 준 칭따오 맥주도 한 병 마셨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오늘 사만원짜리 영화를 보았다. 티비를 보고 뒹굴거리고 있는데, 저녁에 문자가 왔다. 아침의 아저씨였다. "자전거 수리비가 남았습니다. 계좌번호 주시면 보내드릴께요. 15,000원입니다." 영화는 유치했지만, 마음에 들었다. 나는 잘 살아보자고 말하는 이야기들이 언제나 좋다. 영화를 보고나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제목이 완전히 달라진다. 글자는 그대론데, 정말 달라진다.




  1. 2017.11.02 13:5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address  modify / delete 2017.11.05 08:05 신고 BlogIcon GoldSoul

      아아, 우리 모두 토요일의 영화를 잘 예매하는 걸로요.
      네, 만오천원도 무사히 제 통장에 들어왔어요. 하지만 지금 제겐 허벅지에 영광의 상처가. 하하하-

조림이

from 모퉁이다방 2017.10.27 22:59




   사실 조림이가 모임에 얼마 나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 날, 조림이가 온 날 비가 많이 왔었고, 내가 선정한 책을 읽고 이야기했었다. 줌파 라히리의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우리는 노잼 멤버를 결성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중간에 소윤이가 왔는데, 내가 데리러 나갔다. 소윤이에게 어쩌면 이제 안 나올 것 같아, 라고 이야기했었다. 소윤이가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라고 말했던 것 같다. 새벽까지 술자리가 이어졌고, 3차를 가기 전에 조림이가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내일 아침 일찍 강아지를 데려 와야 한다고 했다. 유기견을 입양하기로 했다고. 강아지 이름은 '마리'가 되었다.


   그 때 조금 얇은 겉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으니 가을 즈음이었나 보다. 그리고 다음해 봄에 우리는 전주에 가기로 했다. 같이 가기로 한 봄이가 먼저 내려가고, 조림이랑 내가 같이 버스를 타고 가게 됐다. 사실 긴장했었다. 둘이서만 있는 시간은 처음이었다. 어색하지 않을까, 불편해하면 안될텐데. 이른 아침 출발이라 여유있게 나오지 못해서 지하철 역에서 내려 서둘렀는데, 조림이가 늦게 출발했다고 출발 시간에 딱 맞출 수 있겠다고 다급하게 연락해왔다. 표를 찾고, 생수도 사두고, 조림이를 기다리는데 정말 출발시간 전까지 나타나질 않았다. 어쩌지. 영화제 기간이라 다음 버스 자리도 없는데, 조마조마 하고 있는데 조림이가 딱 출발 직전에 나타났다. 숨을 헐떡거리며. 그렇게 함께 버스를 타고 두 시간 넘게 갔는데, 왠걸. 둘다 말이 많은 편도 아닌데, 끊기지 않고 대화를 잘 해나갔다. 아, 조림이는 '패피'답게 그날도 화려한 색의 꽃무늬 가방을 메고 왔더랬다. 요즘에 이런 사람이 있어, 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조림이가 어머어머,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하면서 잘 받아줬다. 휴게소에 들러 간식도 사 먹었는데, 그때 조림이가 자기는 평소에 무언가를 받기만 하는 것이 왠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에이, 그러면서 바삭어포를 사줬다.

    이야기하다, 잠들었다, 차가 막혔다, 하는 사이에 도착 시간을 훨씬 넘겼고, 조림이가 예약해둔 영화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첫 영화를 포기했다. 택시를 타고 극장으로 가서 볼 영화가 없나 찾아보다 늦은 오후 영화 한 편을 같이 예매했다. 영화를 보고 있는 봄이를 기다리며 극장 한 켠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때 조림이의 남자친구 이야기도 들었고, 결혼관도 들었다. 언젠가 조림이의 남자친구를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밥 먹고 헤어진 뒤 늦은 오후에 다시 만나 예매해둔 영화를 맨 앞자리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나란히 앉아서 봤다. 끝나고 좋았다, 보길 잘 했다,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고 이야기했다. 낮은 산 같은 높은 곳에 주인공이 살았는데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도심의 야경이 근사했다. 그걸 나란히 앉아 같이 '올려다'(하하) 보는 느낌이었다. 바람도 불어오는 것 같고. 그러네. 조림이 말처럼 전주에 다녀와서 우리가 깊어지기 시작했네. 그 시간들이 있어서 이렇게 가까워졌네.

   그런 조림이가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니카라과로 간다. 니카라과는 처음 들었는데, 듣고 오랫동안 아프리카의 어디 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미였다. 그곳에서 2년 동안 일을 하고 온다. 조림이를 당분간 모임에서 보지 못하는 것이 무척 아쉽지만, 그녀가 보여줄 그곳의 풍경들이 무척 기대가 된다. 그러니 힘들어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2년을 꽉꽉 채우고 왔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잘 먹고, 안전하게 조심히 잘 돌아다니고, 좋은 생각과 좋은 풍경이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왔음 좋겠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그 날의 버스에서처럼, 그 날의 극장 한 켠에서처럼, 정답게 들려줬음 좋겠다. 조림이는 어여쁜 미모를 지닌 쿨-걸인데, 얼핏보면 시크한 것 같지만, 참 따뜻한 사람이다. 내가 바르셀로나 여행 갈 때도 날짜를 챙겨 잘 다녀오라 인사를 건네 주었고, 엽서를 보내기 전이었는데 언니가 엽서를 아직까지도 보내지 않았을 리가 없어, 엽서가 분실이 된거야, 하고 먼저 답장을 보내준 사람이다. '패피'인 그녀가 니카라과에서 입을 패션들도 기대가 되고.

    이제부터 2년동안 조림이가 보고 싶을 때는 니카라과 원두 커피를 마시겠다. 그녀가 그곳에서 보내 줄 첫 엽서가 무척 기대가 된다. (이것은, 유언의 압박-) 화이팅, 장조림!



  1. 바로 그 조림이 2017.10.30 17:09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뭐야 언니..... 잠이 안와서 언니 블로그를 켰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첫 출근을 앞둔 나에게 큰 힘이 되었음을 알리며 유언의 압박도 잘 접수하였음. graicias!

    •  address  modify / delete 2017.10.30 21:24 신고 BlogIcon GoldSoul

      헤헤- 바로 그 장조림이닷! 지금 거기 6시 21분이네. (나 세계 시계 마나과 방금 추가했어!) 이제 첫 출근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출근 잘하고 거기 사람들이랑도 잘 지내. 룸메이트랑 특히- 언젠가 도착할 니카라과의 첫 엽서를 기다립니다. 장조림, 아니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