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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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20세기극장에가다 2017. 10. 31. 23:26
간만에 아네트 베닝을 봤다. 나는 여전히 아네트 베닝하면 다. 우아했던 미소와, 낮은 허밍 소리. 의 아네트 베닝은 많이 늙었는데, 에 비하면 주름이 아주 많아졌는데, 여전히 멋지더라. (물론 분장을 했겠지만) 민낯같이 평범한 일상의 얼굴도 자연스럽고, 클럽에 가기 위해 잔뜩 꾸몄을 때는 여전히 아름답더라. 저렇게 자연스럽고 멋지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꿈은 책을 읽고, 맥주를 마시는 할머니. 아네트 베닝이 맡은 역할은 늦은 나이에 아들을 낳고, 이혼을 한 뒤 혼자 사춘기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역할이다. 다음 달에 죽는다는 진단을 당장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줄담배를 피운다. 사춘기 아들이 온전히 커 나가는데 자신 혼자만으로 부족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아들의 성장에 필요한 여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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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앰 히스 레저극장에가다 2017. 10. 30. 22:16
퇴근할 때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는데, 김주혁이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에, 그 김주혁이? 말도 안돼. 네이버를 켰더니 기사가 있었다. 얼마 전에 그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싶다고,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세상은 정말이지 모르겠다. 이렇게 허망할 수 있나. 당장 내일의 삶도 장담할 수 없으니,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사랑할 수 밖에. 나는 김주혁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을 좋아했다. 도, 도 여러 번 봤었다. 시월의 어느 금요일 밤에는 히스 레저를 보러 극장에 갔다. 나는 이제 히스 레저보다 그의 부인이었던 미셸 윌리엄스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가 좋은 작품을 고르고, 좋은 연기를 할 때면 어김없이 그를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훌륭한 여자를 좋아했구나, 역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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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극장에가다 2017. 10. 28. 20:16
8시 20분 영화였다. 어젯밤에 확인을 하고 잤다. 7시 30분 즈음 일어났다. 귀찮았지만, 주말 아침 자전거를 타고 가 조조영화를 보는 뿌듯함을 알기에 세수를 하고 크림과 선크림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도착하면 표를 끊고, 투썸에서 따뜻한 라떼를 사먹어야지 생각하며 룰루랄라 자전거를 타다가, 커브길에서 반대편에서 오던 자전거를 피하지 못했다. 아직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지 못해서 사람들이 별로 없는 직진의 길에서만 신나게 탈 수 있는데, 그래서 다리로 진입하는 커브길에서는 내려서 걷거나 소심 운전을 하곤 하는데, 다리 위에 자전거가 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심하지 못해 아저씨와 부딪혔다. 아저씨가 왜 그러냐고 하셔서, 아직 잘 타지 못해서 그렇다고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를 드렸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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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림이모퉁이다방 2017. 10. 27. 22:59
사실 조림이가 모임에 얼마 나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 날, 조림이가 온 날 비가 많이 왔었고, 내가 선정한 책을 읽고 이야기했었다. 줌파 라히리의 . 우리는 노잼 멤버를 결성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중간에 소윤이가 왔는데, 내가 데리러 나갔다. 소윤이에게 어쩌면 이제 안 나올 것 같아, 라고 이야기했었다. 소윤이가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라고 말했던 것 같다. 새벽까지 술자리가 이어졌고, 3차를 가기 전에 조림이가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내일 아침 일찍 강아지를 데려 와야 한다고 했다. 유기견을 입양하기로 했다고. 강아지 이름은 '마리'가 되었다. 그 때 조금 얇은 겉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으니 가을 즈음이었나 보다. 그리고 다음해 봄에 우리는 전주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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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를 찾아요서재를쌓다 2017. 10. 24. 22:30
한밤중의 SNS 탐독은 위험하다. 그곳에는 넘치게 잘 사는 사람들 뿐이고, 한밤중의 나는 부족하고 부족한 사람이 된다. 의 김민철 SNS에 올려진 책 추천글을 보고, 저자의 SNS로 넘어갔다. 그곳엔 고운 아내와 귀여운 딸, 자상한 남편, 아름다운 집이 있었다. 모두 따뜻한 사진들에 담겨 있었다. 다음날 그 분위기를 계속 떠올리다가 결국 책을 주문했다. 제목이 . 언젠가부터 현실적인 이유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없어져 버린 오후. 그 오후를 온전히 찾을 수 있었던 여행지에서의 이야기이다. 여행지에서 경험한 이야기가 좀더 많았으면 싶었고, 눈이 엄청나게 쌓인 한겨울의 시라카와고에 가고 싶어졌다. 중간중간 멈칫, 하게 되는 문장들이 있었다. - ... 어제부터 아빠와 따로 살게 되었다고 털어놓던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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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호텔여행을가다 2017. 10. 16. 17:04
우리는 밖에서 맥주 한 캔씩 하고 들어와 차례로 씻었다. 큰 침대 하나와 소파 하나라 잠자리를 정해야 했는데, 모두들 소파에서 자고 싶어했다. 사다리 게임을 했고, 결국 친구와 내가 침대에서 자기로 했다. 나는 꼭 욕조를 이용해보고 싶다고 우겼는데, 친구들이 그러라고 했다. 욕조에 창이 있었다. 낮에는 밖이 훤히 보여 근사했는데, 밤이 되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더라. 욕조용 소금이 있어 잔뜩 녹여 몸을 담궈 보았다. 씻고 나와 소파 위와 아래에 앉아 티비를 보며 맥주를 한 캔씩 더 마셨다. 외국친구들이 한국에 놀러와 여행하는 프로를 하나 봤고, 남자와 여자들이 같은 공간에 함께 머물며 짝짓기 게임을 하는 듯한 프로도 하나 봤다. 운전하느라 피곤했던 s는 두번째 프로가 시작되자 골아 떨어졌다. 나는 막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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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서재를쌓다 2017. 10. 15. 20:28
여행을 좋아하는가. 사실 나는 이 질문에 대해 고민 해왔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많은 여행자들이 돌아오는 날 무척 아쉽다고 하는데, 내 기억을 더듬어 보면 돌아오는 것이 다행인 날들이 많았다. 이만 하면 돌아가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날들이 많았다. 내가 여행지와 진정한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계획을 짜는 중일 때나 (사실 계획도 잘 짜지 않는다) 여행 중일 때보다, 돌아와서 일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돌아와서 그곳의 이야기와 역사가 더 잘 읽히고, 보이고, 들린다. 남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글을 읽어 보면 그렇지 않아서 늘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남들의 여행은 떠나 있는 순간 전부가 늘 행복하고, 축복이며, 즐거워보였다. 나는 늘 그렇진 않았으니까. 많은 순간 행복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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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훼션드모퉁이다방 2017. 10. 12. 22:55
old-fashioned1. 옛날식의, 구식의 2.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구식인 덩치와 달리,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얼마 전 우연히 기사를 보다 알았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단다. 그랬구나. 맥주를 얻고, 초콜렛을 잃었다. 던킨의 도너츠들은 단 것들 천지. 그러므로, 맥주를 좋아하는 나는 던킨을 좋아하지 않는데, 유일하게 좋아하는 도넛이 있다. 그 이름은 촌스럽게도 '올드 훼션드'. 옛날 시장에서 먹을 수 있었던 담백한 도너츠다. 그런데 이 담백한 맛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없는지 (여러분, 맥주를 마시세요) 모든 매장에 있지는 않았다. 달디단 글레이즈드는 어느 매장에나 있지. 나의 일반적인 동선은 응암-합정-파주인데, 세 곳 모두 던킨이 있다. 이중 유일하게 합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