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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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쿡무대를보다 2016. 12. 29. 22:20
십이월 첫째주 금요일 저녁에는 한강진의 공연장에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리 춥지도 않았는데, 엄청나게 두껍고 엄청나게 긴 목도리를 칭칭 감고 갔다. E와 함께 공연장 제일 뒷자리에 앉아 토마스 쿡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 순간 오늘 낮의 일들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파주의 창문이 없는 사무실 창가 자리에 앉아 모니터 화면만 보며 키보드로 열심히 복사하기 + 붙여넣기를 하고 있었는데, 몇 시간 후에 짠-하고 이런 설레고도 벅차며 느긋한 공간에 앉아 있는 거다. 무대 위를 비추는 조명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관객석의 우리를 막 공격하는 그런 공간에. 어릴 때 쌍둥이 자매가 순간이동을 하는 티비만화를 참으로 좋아해서 아직까지도 그 주제가를 외우고 있는데 (너무 달라 너무 달라, 너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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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의 홋카이도를 떠나며여행을가다 2016. 12. 27. 21:56
삿포로를 떠나는 날. 이른 오후 비행기라 늑장을 부렸다. 좀더 일찍 나왔으면 좋았을 걸. 돗자리를 챙기고 편의점에 들러 도시락과 아침 맥주를 샀다. 숙소 앞에 큰 공원이 있었다. 숙소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반나절 정도는 공원을 둘러보자고 계획했지만, 어느새 마지막 날. 이번 여행에서 못 한 것은 다음 여행 때 하기로 한다. 호수가 보이는 잔디밭 그늘에 돗자리를 깔았다. 도시락을 꺼냈고, 맥주캔을 땄다. 그야말로 모닝맥주. 도시락도 맥주도 맛있었다. 아침이라 한산한 공원 분위기도 좋았다. 이따금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핸드폰을 켜고 최백호의 목소리로 부산에 가면을 들었다. 친구는 갑자기 짱구 춤을 출 수 있다며 호숫가 가까이로 가 생전 처음 보는 춤을 추어댔다. 나는 그걸 또 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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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의 홋카이도, 오타루의 낮과 밤여행을가다 2016. 12. 22. 22:48
오타루 가는 날 아침. 역시 따가운 햇볕이 비치고 (이때 고층예약 후회했다. 더 비쌌는데- 흑), 나갈 채비를 했다. 삿포로 역의 북적대는 카페에서 토스트 + 커피 모닝세트로 아침을 해결했다.친구는 배가 아파 혼자서. 데친(그렇겠지?) 베이컨도 좋더라. 오타루행 기차를 탔다.갈때는 느긋하게 지정석으로, 올때는 저렴하게 자유석으로 오기로 했다. 출발- 창밖을 구경하다보니, 얼마 안 가 바다가 나왔다. 와, 바다다. 오늘도 맑음- 간이 테이블을 내리고 구청사에서 산 엽서를 쓰다보니 어느새 오타루역 도착. 엽서를 마무리하고, 간이 테이블을 올리고 기차에서 내렸다. 관광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역사에서 친구랑 번갈아가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타루에서는 떨어져서 다니기로 했다. 어제 많이 걸은 탓에 친구 다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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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의 삿포로, 둘째날 밤여행을가다 2016. 12. 15. 23:38
삿포로 맥주축제에 왔다. 으아 진짜로 이곳에 오게 되다니. 친구의 휴가 날짜는 팔월 중순으로 정해져 있었고, 날짜에 맞춰 여행지를 정했다. 삿포로로 온 것은 맥주축제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때마침 맥주축제라니, 완전 우리를 위한 축제인 것이다. 삿포로역에서 행사장인 오도리 공원으로 걸어가는데 두근두근했다. 둘이서 완전 들떠 있었다. 오전에 텅비어 있었던 행사장이 꽉 차 있는 게 멀리서도 보였다. 가자! 축제의 현장으로- 우우. 첫번째, 삿포로 부스. 이른 시간이었는데 벌써 만원이었다. 자리가 없다, 친구야. 자리가 없어도 신난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들 맥주를 마시고 있구나. 결국 자리를 찾지 못한 우리는 서서 마십니다. 짠- 구석 테이블에서 나란히 서서 천씨씨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는데, 너무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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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의 삿포로, 둘째날 오후여행을가다 2016. 12. 14. 22:45
홋카이도 대학에 갔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말로 유명한 윌리엄 클라크 박사를 초빙한 대학. 역에서 좀 걸어야 한다기에, 이미 너무 많이 걸었기에 갈까말까 망설였는데 가길 잘했다. 걸어보니 그리 멀지 않았고, 학교 건물과 나무들 뿐이었는데, 그게 좋았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캔맥주를 샀다. 교내에서 마셔도 될지 모르겠지만 나무들 사이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한 캔하면 좋을 것 같아서 일단 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훅하고 시야에 들어왔다. 화장실이 급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건물 안이 고요했다. 유명한 플라타너스 길을 보기 위해 걸어가다, 학교 식당 건물이 있길래 들어가서 메뉴 구경을 하고 나왔다. 배가 부르지 않았더라면 먹어보는 건데. 에 나왔던 전갱이 튀김이 반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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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의 삿포로, 둘째날 오전여행을가다 2016. 12. 13. 22:40
둘째날은 삿포로 시내를 쉬엄쉬엄 돌아보기로 했으나, 이동할 때 왠만한 거리는 걷기를 원했던, 그리고 그에 걸맞게 길을 참으로 잘 찾았던 친구 덕에 엄청 걸었다. 정오가 되자 우리가 벌써 엄청나게 걸었다는 게 다리를 통해 느껴질 정도로 아침부터 잘도 걸었다. 그리하여 2016년 여름 삿포로는 다리의 기억. 아침. 고층이라 햇빛이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오더라. 야경을 본다고 커튼을 치지 않고 잤는데, 해가 뜨면서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깼다. 물론 내가 깬 게 아니라, 친구가. 나란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든 잘 자는 인간. 안쪽 침대에 잤던 친구가 창가로 와서 커튼을 치고 다시 잤다. 하루를 시작해봅니다. 걷다 보니 친구가 가고 싶어했던 거리가 나왔다.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니. 물론 친구는 밤의 거리를 원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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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의 삿포로, 첫날여행을가다 2016. 12. 12. 23:23
지난 일요일에 E를 만났다. E는 이번주 주말에 혼자 삿포로 여행을 떠난다. 몇달동안 주말 없이 열심히 일한 뒤 얻은 포상휴가라고 했다. 우리는 그 전 주에 함께 토마스쿡 공연을 보러 갔는데, 공연을 보고 양꼬치를 안주 삼아 칭따오를 마셨다. E는 봄에 친구들과 함께 칭따오에 다녀왔는데 거기서 마신 칭따오는 정말이지 이곳의 칭따오와 비할 맛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여기서 마시는 것도 이렇게 맛있는데? 라고 물었고, 그러니까 언니가 가봐야 한다니까요! 라는 대답을 얻었다. 언젠가 칭따오에서 칭따오 맥주를 마시고 말겠다. 나는 E가 떠날 삿포로에도 맛있는 맥주들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내게 찢어졌지만 내용은 고스란히 남은 가이드북과 교통카드가 있어 그걸 전해주러 일요일에 만났다. E는 항공권만 예약해 놓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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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수업 후모퉁이다방 2016. 12. 7. 23:37
화요일에는 자존감 수업을 들으러 갔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동생을 만나 40분만에 양꼬치를 구워 먹고, 칭따오 댓병을 나눠 마셨다. 계산해달라고 하니, 주인 아저씨가 아니, 이렇게 빨리 드셨어요? 놀라셨다. 급히 갈 데가 있어서요. 강연은 마감이 되었고, 이미 시작되었다. 흰머리가 무성한, 마르고 얼굴이 선해 보이는 분이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저 분이 작가님이시구나.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많은 자존감 책이 있는데, 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건 머리말 때문인 것 같아요. 보통은 나는 어디서 공부를 했고, 어떤 사람에게 배웠으며 같은 잘난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거든요. 책을 다 읽은 동생에 따르면, 작가님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고, 그걸 어떻게 쌓아 올려나갔는지를 특별하지 않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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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초겨울 원주여행여행을가다 2016. 12. 6. 07:00
이하응이 보내는 편지 멀리서 소식을 몰라 아득히 고니처럼 목을 빼고 남녘을 바라보는데, 버들잎 같은 종이가 눈앞에 너울거리며 도착하니고기뱃속에 들어갔던 편지와 다름없습니다. 편지를 통해 흉년에 큰 탈없이 일상생활이 좋으심을 알았습니다.지금 저는 늙어서 70세가 되어가지만, 날마다 그런대로 먹고 자고 있습니다. 집안의 위아래 노약자들은 모두 평안합니다.다만, 승자의 나이가 삼십이 되어 녹봉을 받을 기약이 없으니바로 그 집안의 혈연이 부족한 때문입니다.이는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가 심사만 낭비한 격입니다. 먹을 갈고 종이를 펴니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편지로는 다 할 수 없습니다.아득한 나머지 사연은 말 없는 가운데 있습니다.그대가 걱정하지 않아도 나는 실로 태평하여기운과 마음을 평안히 하고 있으니 흡사 평지..